† 神學 · 敎理· 교회사

제1부 천지만물의 창조/ 2.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영국신사77 2007. 3. 26. 18:29
      제1부 천지만물의 창조/ 2.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출처 블로그 > 쉴만한물가
원본 http://blog.naver.com/mokpojsk/130003809889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고 하셨다.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무 생물도 없는 지구의 원시상태를 말한다.
  혼돈(混沌)하고 라는 말은, 창조된 지구가 무엇인지 분간 못하리만큼 뒤죽박죽이 되어있는 상태로서, 아무런 질서가 없는 것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공허(空虛)하며 라는 말은, 막연한 땅덩어리, 곧 아름다운 것도 없고 기묘한 것도 없는 텅텅 비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흑암(黑暗)이 깊음 위에 있다는 [흑암]은, 보통 말하는 어두운 정도가 아니고, 아주 캄캄한 상태를 말한다. 이 때는 아직 하나님이 빛을 내시기 전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깊음]은 그 때 땅덩어리가 물에 덮여서 밑을 모를 정도가 되었음으로, 깊음이라고 했다. 당시 지구가 물에 덮였다는 증거는, 2절 하반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한 것과, 6, 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는 말씀과, 9절 상반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란 말씀 등을 보아서, 그 때 땅이 물에 덮여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신]은 삼위일체중 제삼위의 성령을 말한다.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씀은, 물이 둘러 있는 지구를 성령의 역사로 붙들고 계심을 말한다. [운행하시니라]의 원문의 뜻은, 새가 알을 품고 있는 상
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 2절을 알기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본래의 땅은 물이 뒤덮여 질서가 없었고, 비여 있어 아무런 아름다움도 없었고 ,빛이 없었으니 어두움이 덮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이 땅을 사랑하사 붙들고 계셨으며 그 품에 안고 계셨다"는 말이다.
 
  이제 본문 강해는 이 정도로 하고, 2절에서 천지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보자.

 

            1) 지구에 관심을 집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본래의 땅이 물에 덮여,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덮인 땅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 최대의 관심을 집
중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는 말씀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왜 이렇게도 땅에 관심을 집중시키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땅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것(소유)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록 만드신 땅이 혼돈해졌고 공허하고 흑암이 덮여 볼 모양이 없
었지마는, 최대의 관심을 기우려 사랑하며 간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것은 사랑한다. 관심이 집중해진다. 그래서 간수한다.
 
 
  불란서 루불 박물관에 훌륭한 조각품이 비치되어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한 것은 누가 만들었는지, 그 이름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물겨운 한 사실이 알려지고 있으니, 그것은 가난한 어느 조각사가 헐벗고 굶주려 가면서 피와 땀을 짜내는 노력의 결과로 훌륭한 조각품을 완성시켰는데, 하루는 몹시 날이 추웠다. 그래서 조각품이 얼어 상할까 하여 자기가 입었던 옷을 벗어 덮어 줌으로 조각품은 보존되었지만, 그 사람은 얼어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도 조각품을 사랑했는가? 그것은 자기가 최대의 노력을 기우려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하여 간수하려고 하다가 얼어죽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만드신 땅이었기 때문에 간수하려고 성령으로 붙드신 것이다.
 
  비록 오두막살이 초가집이라도 자기의 집은 관심이 간다. 남이야 고대광실 화려한 누각을 짓고 산들, 그냥 그 집 잘 지었다는 정도이지 내 집만큼 관심은 없는 것이다. 남의 자식이 아무리 인물 잘났고 재주 있고 훌륭해도, 내 자식만큼은 관심이 안가는 것이다. 비록 내 자식은 병신이라도 좋아한다.
 
  부모님들이 자식을 다 사랑하지마는, 그 중에도 어리고 철없고 병든 자식을 더 불쌍히 여겨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덮인 땅이지만 사랑하고 보호하신 것이다.
 
  이렇게 공허하고 혼돈하고 어둠침침한 지구도, 주님이 사랑하사 관심을 집중하시겠거든, 하물며 피흘려 구속하신 당신의 자녀들을 얼마나 귀히 여기시겠는가! 오병이어로 먹고 남은 부스러기도 아끼고 버리지 아니 했거든, 주님의 백성이야 말할 것 무엇인가!
 
  그러므로 비록 교회가 일시적인 시험에 빠져 혼돈하여 질서가 없고 공허하여, 모든 심령들이 캄캄한 흑암이 덮였다 할지라도, 주님이 돌보실 터이니 실망할 것은 없다.

 

      2) 미(美)가 없는 땅을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의 원문 뜻은, 새가 알을 품에 안은 상태를 가리킨다.
 
  육일간이나 역사하사 창조하신 땅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으니 안을 만한 것이지만, 여기 말하는 처음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덮여 있었으니 아름답지를 못했다. 그러니 사랑하여 안을 만한 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붙들고 품에 안으셨다. 사랑하여 못 견디셨다. 새가 알을 품듯이 폭 안으신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사랑은 천지를 창조하신 첫 시간에 나타난 것이다.
 
  성경의 대강령(大綱領)은 사랑이다. 곧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천지창조의 첫 시간에 나타난 것이다. 미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지구를 사랑하여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이, 온 천하보다 귀한 신자를 품에 안으시지 않겠는가! 생명 없는 지구도 주께서 사랑하여 품에 안으셨거든, 하물며 영원한 생명을 주신 성도를 품으시지 않겠는가!
 
  주님은 택한 자를 품에 안으신다고 말씀하셨다. 사 46:3,4에 말씀하시기를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고 하셨으며' 마 23:37에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한 일이 몇 번이냐"라고 하셨다.
 
  생명 없는 지구도 이렇게 주님이 사랑하여 품으시거든, 당신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여 품으시지 않겠는가!
 
                                       3) 맺는 말
 
  안긴 땅은 얼마 후에 질서가 생기게 되었고, 생명의 창조가 있게 되었다.
이어 생명의 빛이 나타나 어두운 땅이 밝아졌고, 궁창위와 아래로 나누는 상하(上下)의 구분이 생기고, 산과 들에는 초목이 생기고, 공중에는 새, 바다는 고기, 육지는 짐승과 사람이 창조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워졌다.
 
  암탉이 품에 안긴 알은 그 따뜻한 온기로 때가 되면 반드시 병아리 소리가 나는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이 지구를 붙드시며 품에 안으시고 계신다. 이와같이 주님이 신자와 교회를 특별히 품에 안고 계신다. 왜냐하면 시 135:4의 말씀같이, 우리를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