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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니 유명해졌더라는 말이 있다. 내가 그랬다. 첫 회에 밝힌 대로 1983년 당시 2m25의 한국 최장신 유기성씨의 류머티즘 관절염을 고쳐준 것이 보도되자 한의원에 관절염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거기에다 여기저기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쏟아졌다. 덕분에 돈을 좀 벌고 TV에도 여러 번 출연했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가.
그러던 중 갑자기 환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모 일간지가 생활면에 류머티즘 관절염 특집을 보도하면서 내가 유씨에게 해준 치료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실었던 것이다. 기사에는 “3년 정도까지 통증을 다스리는 진통제가 있기 때문에 유씨의 경우에도 3년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한 대형병원 정형외과 과장의 멘트까지 인용돼 있었다.
한 마디로 양방에서도 불치에 가깝다고 여기는 병을 한방으로 치료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유씨는 재발 없이 계속 잘 지냈다. 치료한 지 5년이 지난 뒤 내게 ‘주간여성’에 글을 쓸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과장님, 지금 확인해보세요”라고 의문을 제기했던 분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하나님, 주님께서 제게 관절염 치료에 은사를 주신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그러나 제 능력은 아직 너무나 미흡합니다. 하나님, 이왕 배려해주신 김에 더욱 능력을 주십시오. 관절염만큼은 최병준이가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유기성씨를 치료한 뒤 부쩍 자신감을 얻은 나는 관절염 치료에 더욱 매진했다. 세미나나 학회 등에 빠짐 없이 참석했다. 특히 기도에 더욱 전념했다. 새벽에는 적어도 1시간 이상 일찍 교회에 나가 나만의 기도 시간을 가진 뒤 예배에 임했다. 가족과 교인들도 나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고 중보기도에 나섰다. 그러자 자신감이 배가됐다. 아무리 심한 관절염이라도 내 손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신, 어떻게 치료한 거야? 이상한 약으로 일시적으로 미봉한 거 아냐? 교회에선 신실한 척하며 밖에 나가선 돈벌이에만 미쳐 있는 돌팔이 아냐?”
뜻밖의 전화였다. 그것도 같은 교회에 다니는 여 권사님에게서 호된 원망과 질책이 쏟아졌다. 불과 한두 달 전, 자신의 관절염을 치료해줘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고맙다고 하던 그분이었다. 그런데 관절염이 재발하자 속았다고 단정한 뒤 내 인격까지 매도하면서 막말을 퍼부어댔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혼란에 빠졌다. 잘 치료되는 듯하던 환자가 갑자기 재발하는 경우가 이전에도 더러 있었지만 돌팔이에 사기꾼으로까지 몰리고 나니 차마 견디기 어려웠다. 더 이상 환자를 치료할 자신이 없어졌다. 솔직히 기도할 엄두마저 달아났지만 쉬지 않고 하나님께 호소했다.
“아니, 왜 먹지 말라는 배추를 자꾸 먹고서 속을 썩이는지 모르겠어. 환자가 의사의 말을 듣지 않으니 어떻게 병을 고친단 말이야.”
한 세미나에서 뜻밖의 힌트를 얻었다. 휴식시간에 복도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옆에서 담소를 나누던 한 의사의 말 한 마디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관지염 환자가 배추를 좋아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었다. 순간, 생각 하나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맞아. 배추는 가래를 만들어.” 그리고 잇따라 내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 145:9)
정리=정수익 기자 sagu@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