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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최병준 장로 (7)~(9) 완치된 관절염 환자 교회 인도

영국신사77 2007. 3. 20. 23:28
  [역경의 열매] 최병준 (7) 완치된 관절염 환자 교회 인도


  류머티즘 관절염은 난치병이다. 이 병이 깊어지면 불구가 되기도 한다. 나는 한의사로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이 병을 특화했다. 내가 이 병의 치료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거나 매달리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

“형님, 10년 이상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었는데도 도무지 낫지를 않습니다. 혹시 한방으로 치료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1976년 12월 어느 날 퇴근 무렵, 광명시 철산동에 산다는 동생 친구가 양쪽으로 부축을 받아 한의원으로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도 증세가 심각한 것 같았다. 이전에도 유달리 관절염 환자들을 많이 대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치료했지만 이번은 달랐다. 시간이 없어 일단 그의 병세를 점검하고 다음날 다시 오도록 했다. 솔직히 치료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하나님, 제게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아시다시피 저의 얕은 의술로는 치료할 자신이 없습니다. 환자는 제게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꼭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펼치신 능력의 조금이라도 제게 부어주십시오.”

나는 퇴근하고 바로 교회로 갔다. 캄캄한 성전 안 강대상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두 손을 모았다. 평소 가슴이 답답하거나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오던 나의 습관이었다. 머릿속으로 예수님이 숱한 환자들을 치유하던 장면들을 연상하면서 두어 시간 진지하고 열렬하게 기도했다. 다음 날 새벽에는 평소보다 한 시간여 일찍 교회에 나가 혼자 기도하고서 예배를 드렸다.

“솔직히 자네처럼 심한 관절염 환자는 처음이네. 그래서 어젯밤과 오늘 새벽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네. 만약 완치된다면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네. 그러면 자네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네.”

동생 친구가 비신자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그러겠다고 응했다. 자신감이 솟았다. 그래서 같이 기도하자고 했더니 역시 순순히 응했다.

다시 한번 환부의 상태를 면밀히 점검했다. 무릎의 염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지식과 그간 경험을 총동원하고 속으로는 계속 하나님을 찾으면서 처방을 했다. 보름치 약을 주고 그 다음에 보자고 했다.

“형님! 저 다 나았습니다.”

보름치 약을 복용한 동생 친구는 상기된 얼굴로 한의원으로 들어왔다. 보름 전 부축을 받아 들어왔던 그가 성큼성큼 걸어서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아, 하나님!’이라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동생 친구는 보름치 약을 더 복용하고는 완치를 확신했다. 그리고 그는 내 앞에서 “당장 교회에 나가겠다”는 맹세를 몇 차례나 했다.

이후에도 성도한의원에는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들이 많았다. 특별한 비방이랄 것도 없는데 치료되는 케이스가 많았다. 나도 모르게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러다 연재의 시작에서 밝힌 1983년 한국 최장신 유기성씨 치료를 통해 졸지에 ‘관절염 치료의 권위자’라는 소리가 나왔다. 하나님의 축복이자 선물이었다.

나는 내 인생을 회고하면서 여러 차례 흐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상승 흐름을 타고 호기롭게 살았던 적이 있는가 하면, 하강 흐름에 휩쓸려 큰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에 재미와 자신을 붙여가던 그때는 대표적인 상승 흐름의 시기였다. 내 입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정리=정수익 기자 sagu@kmib.co.kr

 

 

 

 

 

          [역경의 열매] 최병준 (8) 환자 몰리고 방송 출연요청 쇄도


자고 나니 유명해졌더라는 말이 있다. 내가 그랬다. 첫 회에 밝힌 대로 1983년 당시 2m25의 한국 최장신 유기성씨의 류머티즘 관절염을 고쳐준 것이 보도되자 한의원에 관절염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거기에다 여기저기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쏟아졌다. 덕분에 돈을 좀 벌고 TV에도 여러 번 출연했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가.

그러던 중 갑자기 환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모 일간지가 생활면에 류머티즘 관절염 특집을 보도하면서 내가 유씨에게 해준 치료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실었던 것이다. 기사에는 “3년 정도까지 통증을 다스리는 진통제가 있기 때문에 유씨의 경우에도 3년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한 대형병원 정형외과 과장의 멘트까지 인용돼 있었다.

한 마디로 양방에서도 불치에 가깝다고 여기는 병을 한방으로 치료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유씨는 재발 없이 계속 잘 지냈다. 치료한 지 5년이 지난 뒤 내게 ‘주간여성’에 글을 쓸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과장님, 지금 확인해보세요”라고 의문을 제기했던 분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하나님, 주님께서 제게 관절염 치료에 은사를 주신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그러나 제 능력은 아직 너무나 미흡합니다. 하나님, 이왕 배려해주신 김에 더욱 능력을 주십시오. 관절염만큼은 최병준이가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유기성씨를 치료한 뒤 부쩍 자신감을 얻은 나는 관절염 치료에 더욱 매진했다. 세미나나 학회 등에 빠짐 없이 참석했다. 특히 기도에 더욱 전념했다. 새벽에는 적어도 1시간 이상 일찍 교회에 나가 나만의 기도 시간을 가진 뒤 예배에 임했다. 가족과 교인들도 나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고 중보기도에 나섰다. 그러자 자신감이 배가됐다. 아무리 심한 관절염이라도 내 손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신, 어떻게 치료한 거야? 이상한 약으로 일시적으로 미봉한 거 아냐? 교회에선 신실한 척하며 밖에 나가선 돈벌이에만 미쳐 있는 돌팔이 아냐?”

뜻밖의 전화였다. 그것도 같은 교회에 다니는 여 권사님에게서 호된 원망과 질책이 쏟아졌다. 불과 한두 달 전, 자신의 관절염을 치료해줘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고맙다고 하던 그분이었다. 그런데 관절염이 재발하자 속았다고 단정한 뒤 내 인격까지 매도하면서 막말을 퍼부어댔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혼란에 빠졌다. 잘 치료되는 듯하던 환자가 갑자기 재발하는 경우가 이전에도 더러 있었지만 돌팔이에 사기꾼으로까지 몰리고 나니 차마 견디기 어려웠다. 더 이상 환자를 치료할 자신이 없어졌다. 솔직히 기도할 엄두마저 달아났지만 쉬지 않고 하나님께 호소했다.

“아니, 왜 먹지 말라는 배추를 자꾸 먹고서 속을 썩이는지 모르겠어. 환자가 의사의 말을 듣지 않으니 어떻게 병을 고친단 말이야.”

한 세미나에서 뜻밖의 힌트를 얻었다. 휴식시간에 복도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옆에서 담소를 나누던 한 의사의 말 한 마디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관지염 환자가 배추를 좋아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었다. 순간, 생각 하나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맞아. 배추는 가래를 만들어.” 그리고 잇따라 내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 145:9)

                                                                                          정리=정수익 기자 sagu@kmib.co.kr

 

 

 

 

 [역경의 열매] 최병준 (9) 몽골 의료 봉사서 첫 복음전파


“권사님, 죄송하지만 한의원에 좀 들러주세요. 제가 다시 치료해드릴게요. 그리고 여쭤볼 게 있는데, 혹시 평소 배추를 많이 먹습니까?”

“아니, 배추김치 없이 어떻게 밥을 먹어요? 배추야 하루 세 끼 꼭 먹지요. 근데 그런 건 왜 물어요? 미안해서 그러는 모양인데, 안 그래도 돼요. 지금 병원에서 다시 치료받고 있으니까.”

류머티즘 관절염이 재발해 나를 거세게 질책했던 권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애원하다시피 해서 다시 한의원으로 나오도록 했다. 그리곤 절대로 배추를 먹지 못하게 하고서 다시 처방을 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배추가 재발의 주범이었다. 예의 처방대로 치료한 뒤 완치될 때까지 배추를 못 먹게 했더니 재발이 없었다.

‘배추를 먹으면 절대로 류머티즘 관절염을 고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후 여러 차례의 임상실험을 통해 이를 분명히 확인했다. 이때부터 ‘배추 먹지 않기’는 나의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수칙이 되었다.

2005년 초 나는 중앙 일간지 생활담당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들은 배추를 먹는 한 치유될 수 없음을 호소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도 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돈키호테 같은 행동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30%가 넘는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나의 충정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와 함께 지혜가 자라고 연륜과 함께 깨달음이 깊어지는 것 같다. 나는 환갑을 넘기면서 한의사로서 조금씩 눈을 떠가는 것 같다. 늦어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배우고 깨우쳐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신앙인으로서 이 말에 더욱 공감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 신앙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하는 나 자신을 가끔 발견한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지난해였다. 한의원에서 환자가 없는 틈에 성경을 들추는데 이 구절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마치 돋보기로 들이대듯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특히 전도라는 낱말이 유독 크게 보였다. 그리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내 발자취가 너무나 미약하고 초라하다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 하나 믿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물론 한의원을 하면서 혹은 의료봉사나 다른 모임을 통해서 선교한답시고 거들먹거렸던 게 부끄러웠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듯했다.

그러던 차에 나로선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을 만나게 됐다. 아마 내가 나의 참모습을 발견하니 하나님께서 좋은 선물을 주신 것으로 여겨진다. 몽골에서 한의술로 봉사하면서 주님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내가 소속돼 있던 서울 양재기독실업인회(CBMC) 모임에서 몇 분의 회원이 몽골 선교에 대한 의견을 냈다. 특히 정재수 장로님과 안조현 집사님은 몽골 울란바토르대학의 재단이사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랬다. 며칠 전 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던 성경 구절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합시다. 꼭 합시다. 저는 한의사로서 몽골에서 기여할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늦게나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정리=정수익 기자 sagu@kmib.co.kr

 

 

 

 

 [역경의 열매] 최병준 (10·끝) 하나님만 의지하는 길 가겠다


“안녕하세요. 저는 몽골 교육부의 브라이트 국장입니다. 제 무릎에 심각한 고질병이 있습니다. 고치기 어렵겠죠?”

“아닙니다. 고칠 수 있습니다.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하네요. 최선을 다해 고쳐드릴게요.”

지난해 8월, 몽골 의료봉사 현장에서 브라이트 톰벵체치크라는 고위 공직자를 만났다. 그는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병세가 심각했고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려왔다. 내가 치료에 자신감을 보이자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이 입을 열었다.

“제가 의사입니다. 그리고 저희 두 딸도 각각 도쿄대와 베이징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고요. 그런데 저희도 포기한 상태입니다. 제 남편의 병은 러시아에서도 못 고쳤고 한국 큰 병원에서도 완치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그는 2년 전 한국의 큰 병원에서 뇌출혈 수술을 받았고 거기서 류머티즘 관절염은 완치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귀국하자마자 한달치 약을 보냈다. 그리고 한달 뒤 몽골에 다시 들어갔다. 그는 내 손을 잡고 기뻐 어찌할 줄 몰랐다. 병세가 너무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는 그후 한달치 약을 더 복용하고는 깨끗이 완치됐다.

“국장님, 이 병은 제가 고친 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고치신 겁니다. 제가 기도로 예수님의 능력을 빌린 것이죠.”

“예, 알겠습니다. 저와 가족도 예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저희 가족은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됐다. 그밖에도 많은 몽골 사람들이 예수님의 치유 능력에 힘입어 새로운 삶을 얻었다. 심장내막염으로 고생하던 13세 소녀가 두달만에 치유됐고 한 뇌종양 환자도 눈에 띄게 병세가 호전됐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몽골인들에게 보여주게 해달라는 내 기도가 잇달아 응답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8월 이후 매월 한 차례 몽골에 들어간다. 울란바토르대학의 윤순재 총장님과 연계해 대학교회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작으나마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솔직히 내가 이런 사역을 할 거라고는 예전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렇게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가슴 벅차도록 감사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이 돌아가기를 기도한다.

나는 또 국내에서 어려운 목회자들을 돕는 의사들의 모임인 ‘아바연합’에 가입,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제약 때문에 만족할 만한 활동을 벌이지 못해 주님과 회원들에게 미안하다. 그런데 이달초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의료봉사를 갔다가 주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일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최근 들어 나는 모세의 지팡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석에서 물이 솟게 하시고 홍해도 가르시는 그분의 도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크나큰 영광이리라. 하지만 내가 기도하고 노력하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라는 말씀처럼 하나님만을 믿고 온전히 내려놓으면 나뿐 아니라 누구든 그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연재를 마치면서 한마디만 더 하고 싶다. 시작 부분에서 잠시 밝혔지만 우리 인간은 워낙 미약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길지 않은 인생에서 내가 터득한 최고의 진리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정리=정수익 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