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믿음간증歷史

서머나의 폴리캅

영국신사77 2007. 3. 18. 22:26
서머나의 폴리캅  

  69~156년
  2세기로 접어들면서,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외곽 경계선으로 퍼져 나가 소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 팔레스타인을 넘어 메소포
타미아에까지 전파되었다. 그러나 가장 강력했던 신앙 요새 중 하나는 오늘날 터키로 알려져 있는 소아시아에 있던 교회이다. 비
록 지금은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거의 닫혀 있는 상태지만.
소아시아에 교회가 처음 선 것은 사도 바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선교 여행 때마다(세 번) 그곳에 들렀다. 유대인들
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극적인 결심을 하고 복음 전파에 박차를 가한 곳도 실은 비시디아 
안디옥이었다. 그는 주로 남쪽과 서쪽 지방을 돌며 여러 도시에서 설교했는데 거기서부터 인근 시골 지역으로 기독교가 퍼져 나
가게 되었다.
1세기말쯤 에베소 교회는 사도 요한이 그곳에 있음으로 해서 큰 격려를 받았다. 그는 핍박이 일어났을 때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
가 거기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요한계시록을 쓴다. 나중에 에베소로 돌아온 그는 트라야누스 시대까지 살다가 열두 
제자 중 제일 마지막으로 죽는다.
2세기가 되자 로마인들은 기독교가 흥왕하여 너무 널리 퍼지니까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 교회는 비두니아 총독 플리
니우스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불평을 토로할 만큼 확고한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이 전염병 같은 미신이 각 도시
로만 퍼진 게 아니라 시골 마을에까지 퍼져 이방 신전들이 거의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이방 신전에 희생 제
물로 바치는 동물들의 사료가 점점 팔리지 않아 경제 위기까지 야기시켰다!
그러나 어떤 핍박 정책도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을 없앨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소아시아 교회가 확고히 서게 되었다. 그리고 하
드리아누스 황제(117-138)라든가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138-161) 같은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관대하게 다룬 트라야누스의 
태도를 따른 경향이 있어서 죽음을 당한 순교자들의 수가 아주 적었다.
이방인들도 존경한 폴리갑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 통치 기간 중에는 역대의 모든 순교자 중 가장 유명한 서머나의 주교 폴리갑이 순교한다(69-156). 폴리
갑은 단순하지만 아주 깊은 신앙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그는 자기 양떼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목자로 그의 양떼 중  
많은 이들은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의 신발 벗겨 주는 일을 특권으로 여기고 기뻐할 정도였다고 한다. 서머나의 이방인들
마저 그를 존경했는데 그들은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로 사람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거나 예배드리지 말라고 가르치
는 우리 신들의 파괴자!”라고 불렀다.
폴리갑은 교회를 “사도 시대”와 연결시켜 준 마지막 고리였다. 어릴 때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그는 주님을 직접 뵌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과 교제했다. 그는 종종 주님이 행하신 이적과 가르침들에 대해 이들로부터 들은 것을 자기 생도들에게 상세히 들려 
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항상 이 이야기는 주님을 직접 뵌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라는 말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성경을 고
수했을 뿐 아니라 사도 요한으로부터 받은 사도의 전승을 보존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은 그가 155년 로마 주교 아네시투스를 방문했을 때 일어났던 일화 속에 잘 나타나 있다. 한번은 그가 로마 교회 교인
이었다가 이단적 교훈을 가르침으로 인해 144년 교회로부터 추방당한 마르키온과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마르키온은, 창조주 하나
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시된 사랑의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다는 근거에서 구약을 거절했다. 그는 오직 바울의 열 개 서신
과 누가복음의 편집본만 정경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가현설을 주장하던 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나타나신 것은 절
대 참이 아니며 그분은 실제로 죽지도 않았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 마르키온이 “저를 아시겠습니까?”라고 묻자 폴리갑은 
“암, 알고 말고. 사탄의 맏아들인 걸!” 하면서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 치하에서는 교회가 비교적 평온한 시기를 보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관대
한 견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머나에서는 핍박이 일어나 열두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원형 경기장에서 죽음당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순교를 적극 권하던 퀸티우스라는 사람은 막상 사나운 짐승들을 보자 용기를 잃고 로마인들의 
설득에 넘어가 황제에게 향을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열한 명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켜 결국 사나운 짐승
들에게 던져졌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자기에게 달려드는 짐승들을 막대기로 찔렀다고 한다. 이때 그의 용맹을 보고 격분한 군중
들이 “폴리갑을 찾아라! 폴리갑을 찾아 사자 밥이 되게 하라!”며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폴리갑이 무사하기를 바란 성도들은 잠시 시골에 있는 어느 농장에 가서 숨어 있으라고 간청했다. 비록 죽음이 두렵진 않았지만 
그는 양떼들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에게 그의 종말이 가까워왔음을 계시해 주
셨다. 폴리갑은 죽기 사흘 전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속에서 자기 베개가 불 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꿈을 예언적인 꿈이라
고 믿은 폴리갑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는 틀림없이 산 채로 불에 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성도들이 더욱 불안
해져 그에게 도망갈 것을 권했으나 그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끝까지 도망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 폴리갑의 하인 중 한 사람이 붙잡혀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그가 주인이 있는 곳을 실토했다. 폴리갑은 자기를 체포하
러 온 로마 관리들이 도착하자 예우를 다하여 아주 극진히 맞이하면서 우리 집 손님이니 편안하게 마음껏 먹고 마시라고 권했
다. 그들 역시 폴리갑을 보자 깊이 존경하는 눈치였으며, 그의 연로함과 대인(大人)다운 거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 같았
다.
그는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도록 한 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 다음, 하나님께 자기 친구들을 보살펴 주실 것과 눈앞에 다가
온 시련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가 떠날 채비를 마치자 로마 관리들은 그를 당나귀에 태워 데리고 갔
다. 그들은 가는 동안 폴리갑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라고 설득하려 애썼다. “도대체 왜 안 하신다는 겁니까? ‘가이사는 주(主)
다’라는 말 한마디만 하면 주교님 생명을 구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힘듭니까?”라며 설득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폴리갑을 죽음에서 구해 주기 위해 그렇게 간청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의 일인자를 굴복시키는 영예
를 차지하자는 속셈에서 그랬던 것이다.
원형 경기장에서 화형당함
폴리갑이 경기가 벌어지고 있던 스타디움으로 들어갈 때, 하늘에서 “폴리갑아 담대하라. 대장부답게 처신하라”는 소리가 들려
왔다. 옆에 서 있던 신자들 중에도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 하나님의 음성이었
을지도 모른다.
원형 경기장에서 벌어진 야생 동물 쇼가 끝나자 군중들은 안절부절 못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폴리갑을 그곳 총독 
앞으로 끌고 가자 총독은 폴리갑에게 신앙을 부인하라고 촉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폴리갑에게 “네 나이를 생각하라. 가이사의 
신성으로 맹세하고 회개한 다음 ‘무신론자들을 없애 버리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러자 폴리갑은 그곳에 모인 이방인 군중들
을 향해 엄숙하게 손을 흔들며 “무신론자들을 없애 버리라!”고 한 총독의 말을 되풀이했다. 총독은 폴리갑에게 다시 “맹세하
라. 그러면 너를 놓아 주겠다. 그리스도를 저주하라”고 간청했다. 이에 대해 폴리갑은 “저는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겨 왔지만 
그분은 제게 어떤 나쁜 일도 행치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저를 구원해 주신 저의 왕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위
엄 있는 자세로 대답했다.
총독이 더욱 간청하면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으면 사나운 짐승과 불에 던져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폴리갑은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마침내 총독은 전령을 불러 “폴리갑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했다”고 세 번 공표하게 했
다.
군중들은 사나운 짐승들을 기다릴 것 없이 폴리갑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결국 그의 예언적인 꿈이 그대
로 이루어진 셈이다. 사람들이 서둘러 화장용 장작더미를 쌓았다. 폴리갑 주교는 망토를 벗고 상의 겉옷 벨트를 푼 다음 구두끈
을 풀었다. 그는 자기를 말뚝에 박지 말라고 하면서 “내게 불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께서 그 화염도 견딜 수 있는 능
력을 주실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마침내 화염에 둘러싸인 폴리갑은 천국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리고 자기를 그리스도의 잔을 마시기에 합당한 자로 여
겨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렸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그의 몸이 불에 타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총독은 검투사 한 명을 
보내어 단검으로 폴리갑의 가슴을 찔러 죽이게 했다.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묻기 위해 타다 남은 뼈를 돌려 달라고 하자 “십자가에 처형된 그리스도를 버리고 이 순교자를 예배
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거절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예배합니다. 순교자들은 다만 주님
의 제자요 주님을 본받은 자들로서 공경할 뿐입니다”라고 답변하자 폴리갑의 뼈를 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신자들은 그 뼈를 무
덤에 묻고 해마다 함께 모여 그의 “생일”을 기념하였다.
폴리갑의 순교로 그 지역에서 일어났던 핍박도 끝이 나고 신자들은 한동안 편히 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으
로 고발당했다 해도 어떤 이들이 하는 것처럼 겉으로 로마의 요구 조건에 응해 주는 척함으로써 죽음을 면할 수도 있었다. 그 방
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러나 성도들은 가이사에게 향을 바치는 의식의 참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삶 속에서 “누가 정말 주인
가”라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주님을 선택할 경우 받게 되어 있는 그 참혹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부인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으로써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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