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정법률상담소에서 지난해 상담내용을 분석한 결과 사실혼해소 상담이 작년보다 57%나 늘었다고 한다. 내담자는 혼인기간이 1년 미만인 30대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사실혼해소에는 오랜 탐색기간이 필요없는 모양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알 수 없는 사람의 속을 1년 안에 간파하고 혼인신고도 안한 채 헤어지는 사람이 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시간을 두고 믿음을 키워가기보다는 믿음 없이라도 빨리 결혼하고 문제가 있으면 이혼하는 게 더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업을 크게 해서 돈을 많이 번 친구의 아버지는 평소에 절대로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다고 한다. 아마도 산업화 초기, 여러 가지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옥석을 가리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불행해도 참고 살 수밖에 없었던 부모세대가 자녀에게 배우자가 별 볼일 없어보이면 빨리 이혼해버리라고 쉽게 말한 것은 아닐까.
언젠가 신혼인 주부가 흥분한 친정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이혼상담을 받으러 온 적이 있다. 친정어머니는 자신은 세월을 잘못 만나 어쩔 수 없이 참고 살았지만 딸이 사위에게 당하고 사는 꼴은 못 본다면서 이혼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젊은 주부의 얼굴을 보니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해서 친정어머니를 나가 있게 하고 일대일 상담을 했다.
친정어머니가 상담실을 나가자 젊은 부인은 자신은 이혼을 원하는 게 아니고 단지 부부싸움 끝에 화가 나서 친정에 온 것인데 어머니가 너무 흥분을 하신다며 하소연을 했다. 결국 그들 모녀는 이혼의사를 거두고 상담실을 나갔다.
과거에는 하고 싶어도 이혼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혼을 더욱 쉽게 하기 위해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는다. 결혼식을 해서 사회적 인정은 받지만 혼인신고는 미룬 채 서로 탐색하면서 이혼의 조건을 찾는 젊은 세대. 이혼을 죄악시하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던 부모세대의 상처가 이혼할 것을 전제로 혼인신고를 미루는 자식세대의 모습으로 대물림된 것은 아닐까.
우리네 삶에는 맑은 날만 있는 게 아니고 바람 불어 좋은 날도 있는데 작은 바람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힘써 문을 닫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혼을 각오하며 성급한 결혼을 하기보다는 결혼을 좀더 신중히 해서 비바람치는 날에도 두려움 없이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박미령(수필가,수원대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