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원칙은 원문을 낱말이나 구절 그대로 번역하거나 형식적인 일치를 피하고 내용의 동등성을
취하여 독자들이 원문을 읽는 사람과 같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고유명사는 1) 신구교
가 현재까지 사용하는 명사가 같은 것은 그대로 두었고, 2) 그렇지 않은 것은 사전이나 교과서에서 쓰
는 명칭을 따랐고, 3) 이 두 가지가 다 아닌 경우에는 원어의 발음을 따랐는데 실제 표기를 할 때 어려움
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고유명사는 가급적 원문을 직역하려 애썼으나, 직역이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우
면 의역하기도 했다.
1977년 4월 10일, 구약성서와 제2경전(개신교의 외경)이 완역되어, 1971년 완역한 신약성서와 합해
서 공동번역 성서를 내게 되었다. 신약성서 번역위원은, 가톨릭은 백민관, 허창덕 신부가, 개신교쪽에서
는 박창환, 정용섭, 김진만, 이근섭, 김우규 등이 참여했고, 구약성서 번역위원은 선종완 신부(가톨릭)
와 문익환 목사(개신교)였다.
그런데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서가 왜 다른 것일까? 가톨릭에서는 제2경전(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
서, 바룩, 마카베오 상·하권)까지 포함하여 신구약성서는 총 73권이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가톨릭의
제2경전(개신교는 외경이라고 한다.)을 뺀 66권이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가톨릭과 개신교가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근원적으로 구약성서에 대한 히브리 성서와 70인역 성서의 차이 때문이다(신약은 그
리스말로 쓰여졌고, 이에 대해서는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경전 목록이 27권으로 똑같다). 그러니까 가톨
릭의 구약성서는 마흔여섯 권, 개신교의 구약성서는 서른아홉 권이다.
이스라엘 본토(팔레스티나)에서 사용한 히브리 성서에는 제2경전에 해당하는 일곱 권이 없었고, 외
국에서 사는 유다인들을 위해 히브리 성서를 그리스말로 옮긴 70인역 성서에는 이 7권이 포함되어 있
다. 이 70인역 성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 200-300년 전부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해외
에 사는 유다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된 성서로, 초대교회에서도 주로 이 성서를 사용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신약성서에 인용된 구약성서의 대부분이 바로 이 70인역 성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4세기에 예로니모 성인이 라틴어로 성서를 옮겨 대중라틴말성서를 만들 때 히브리 성서를 참
고하면서 70인역 성서를 대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구약성서 마흔여섯 권 전체를 성서로 인정하는 가톨
릭 전통이 세워졌다.
반면에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히브리 성서를 옮겼기 때문에 서른아홉 권만이 구약성서 경전으
로 여겨져 왔다. 종교개혁을 한 루터는 히브리 성서에만 진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가톨릭 교리 가운데
연옥에 대해 매우 싫어했는데, 제2경전에 해당되는 성서 가운데 마카베오 후서(12,38-45)에 연옥에 대
한 암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