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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서 이후 독도를 최초로 병합

영국신사77 2007. 2. 26. 20:13
의정서 이후 독도를 최초로 병합 [중앙일보]
강압적 체결 … 국제법 효력 없어
키워드로 푸는 역시 <1> 한일의정서와 독도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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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은 지금으로부터 103년 전 일본이 조선을 협박해 '한일의정서'를 체결한 날이다. 러일전쟁이 인천 앞바다에서 발발한 직후인 1904년의 일이다. 이 문서 제4조엔 "일본 정부는 … 군략상 필요한 (대한제국의) 지점을 수시로 수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조선이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길을 터 놓은 것이다.

한일의정서 이후 일본이 최초로 병합한 조선 땅이 바로 독도다. 한일의정서 체결 1년 후인 1905년 2월 22일 일본은 독도가 시마네현(島根縣) 부속 섬이라고 강변하는 이른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발표한다.

이 모두 러일전쟁이 한창인 상황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독도와 울릉도는 남하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함대와 일본의 함대가 마주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 일본은 1905년 7월 서울 용산(현재의 미군기지)을 비롯해 평양.의주 등지의 975만 평을 군용지로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강제수용한다.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난 건 1905년 9월. 두 달 후인 11월엔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러일전쟁→한일의정서→독도.용산 강제 편입→을사늑약…. 이렇게 전개된 근대 한일 관계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 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독도가 조선 영토 가운데 가장 먼저 식민화됐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학계에선 "시마네현 고시 40조 등의 자료들은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국제법적 효력이 없다"고 보고 있다.

독도 문제의 논리적 해법과 함께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러일전쟁 발발 기미를 눈치챈 조선 정부가 1904년 1월 23일 '엄정 중립'을 선언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반도에 이미 군대를 들여놓은 일본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선의 중립 선언이 있은 지 꼭 한 달 만에 한일의정서를 강압해 체결했다. 우리의 준비가 미약했던 상황에서 중립이란 표현이 얼마나 무기력한 단어인지를 실감케 한다.

배영대 기자

※자문위원:국사편찬위원회 장득진 편사기획실장, 구선희 사료조사실장, 박홍갑 연구편찬실장, 박한남 자료정보실장, 최영묵.박대재 편사연구사, 김정수.이승준 역시 담당 파견 교사

 
2007.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