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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목사 성서도시(14)] 고레스의 칙령이 발견된 악메다

영국신사77 2007. 2. 24. 22:31
               [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14)] 고레스의 칙령이 발견된 악메다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에게 해방령을 내린 고레스 왕의 칙령이 발견된 악메다(Achmetha,에6:1∼2)는 메대제국 수도로 헬라어 명칭은 ‘엑바타나’(에크바타나)이다. 후에 페르시아 제국과 파르티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이곳은 현재 이란의 테헤란 남서쪽 약 337㎞ 지점인 하마단(hamadan)으로 알반드(Alvand) 산의 북동쪽 기슭 근처에 있는 평야에 위치해 있다.

 현재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에서 이곳까지는 국내선 비행기가 있으나 일정상 비행기편이 맞지 않아 버스로 일행과 함께 출발했다. 테헤란에서 337㎞나 되는 이곳을 하루에 왕복하기 위해 아침 식사는 중간에 하기로 하고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했다. 국도를 따라 2시간여쯤 달리자 그때서야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잠시 휴게소에 들러 준비해온 음식을 간단히 먹었다.

 이 날이 1월29일 한겨울이지만 우리나라 만큼 춥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2시간 이상을 달려 성경에 악메다로 나오는 하마단에 도착했다. 하마단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성경에 나오는 악메다 궁터였다. 궁터에 도착하자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고 궁터에 세워진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악메다(엑바타나)는 BC 678년 메대 사람인 데이오세스(Deioces)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BC 550년 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에게 점령당했으며,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BC 330년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인 다리오(다리우스) 3세로부터 다리오가 예루살렘 재건을 허용한다는 고레스의 칙령을 빼앗았다. 스6:1∼2에 의하면 다리오왕 때 이 악메다에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락한다는 고레스의 칙령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발견하였다. 이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조서)이 발견됨으로써 스룹바벨 성전으로 지칭되는 제2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수월해질 수 있었다.

 이후 악메다는 파르티아 왕들의 여름 휴양지가 되었으나 사산(Sassan) 왕조 하에서 쇠망하였고 이슬람교도들에게 정복된 후 하마단이란 도시가 들어섰다. 오늘날 이곳 하마단은 옛터 위에 세워져 있어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하마단(악메다)에서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비문들과 1923년 다리오 1세의 이름이 새겨진 금과 은으로 된 2개의 받침쟁반과 크세르크세스(쎌써스,아하수에로) 2세의 기둥 뿌리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이 두 왕이 악메다궁을 세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악메다 궁터에서는 돌사자 또는 상 쉬르(Sang Shir)라고 부르는 사자상이 발굴되었다. 이 돌사자상은 길이 2.5m,폭 1.5m,높이 1.2m의 매우 큰 것으로,마게도냐에서 전사한 헤파에스티온(Hephaestion) 장군을 기리리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석공들이 조각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 사자상은 이곳의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발굴된 석사자상이 있는 가자 공원 역시 눈이 내려 사자상은 그 옛날 영광을 생각하듯 녹는 눈에 눈물이 흐르는 듯했다.

                   압바스 아바드(Abbas Abad) 계곡의 아하수에로왕과 다리오왕의 돌비문
 이어 차를 몰아 악메다 시내에서 서쪽으로 5㎞ 지점의 압바스 아바드(Abbas Abad) 계곡에 있는 아하수에로왕과 다리오왕의 돌비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눈이 내리고 50cm는 족히 쌓인 눈길에 빠지며 비문에 이르렀다. 눈이 너무 많이 오는 터라 우산을 쓰고 비문을 사진에 담은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바위에 새겨진 비문 내용의 영어 번역은 이런 것이었다.

                                            비문 내용의 영어 번역 
  “위대한 하나님 아후라마즈다(Ahura Mazda), 모든 신들 중에 가장 위대하시며, 이 땅과 하늘과 사람을 창조하신 분, 그분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셨고, 그분은 쎌서스(아하수에로)왕을 세우셨다. 많은 왕들 중에서 뛰어난 왕, 많은 통치자들 중에서 뛰어난 통치자, 나는 위대한 왕 쎌서스, 왕중의 왕이며 수많은 거민들이 있는 땅의 왕, 끝이 없는 경계를 가진 거대한 왕국의 왕 아케메니안의 군주 다리오의 아들이니라”

 이 비문 하나를 사진기에 담기 위해 어렵게 찾은 것은 바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아하수에로왕의 비문이요,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나와 다시 악메다 시내에 있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이 있는 곳을 방문했다. 이 무덤이 사산 왕조의 애즈데기르드(Yazdegird,399∼420년)왕의 부인의 묘인 것으로 주장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이다.

 

 어쨌든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더불어 유대인을 몰살하려는 하만의 흉계로부터 구원한 유대인의 영웅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유대인의 가장 중요한 순례지이기도 하다. 나 역시 눈내리는 복잡한 하마단 거리에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이 있는 곳을 보자, ‘죽으면 죽으리라’(에4:16)는 그의 각오가 성지를 찾은 내 마음을 새롭게 감동시키고 있었다.

                                                                                                                                                      (photobib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