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각종 갈등의 기저에는 강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개헌제의에 그 어떤 정략적 의도도 없다고 대통령이 주장해도 야당은 일제히 대선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노림수라 일축한다. 더 이상의 부동산값 앙등은 없을 것이라고 정부가 강조해도 이를 액면대로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새해 벽두에 터진 현대자동차 사태도 뿌리깊은 노사불신,노노불신의 결과로 풀이된다. 이처럼 서로를 믿지 못하는 풍토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고 우리가 열망하는 선진경제는 물론 선진국가로의 진입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지난해 말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불신풍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완전불신을 0,완전신뢰를 10으로 할 때 우리나라 국민들의 신뢰지수는 4.0에 불과했다. 2001년 세계가치관 조사에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 신뢰’ 항목을 보면 스웨덴 6.63, 일본 4.31,미국 3.63에 비해 한국은 2.73이었다.
우리사회의 신뢰도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급격한 사회변동의 결과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이웃과 친족을 가리지 않는 살육의 참화가 벌어졌고,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 이웃공동체가 파괴되고 개인주의,이기주의가 심화되었다. 이처럼 목숨 부지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불신과 경계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매우 우려스러운 일은 그것이 단순한 불신을 넘어 공권력과 가진 자에 대한 막연한 증오와 적대감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또한 억압과 수탈로 점철된 일제 및 권위주의 체제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런 불신과 증오,갈등과 대립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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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를 전후해 영국교회와 영국사회를 부활시킨 클래팜(Clapham) 운동에서 교훈을 찾아본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도시빈민들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생활환경에 신음하고 있었다. 매음과 도박,인신매매가 성행하는 등 도덕적 타락도 극치를 이루었다.
이때 윌버포스라는 한 젊은 정치인이 뜻을 같이하는 지식인들과 함께 클래팜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상류사회의 도덕성을 강조하며 노예무역 등 각종 사회악습을 철폐하고 자원봉사 등을 통해 사회개혁을 선도해 나갔다. 이에 따라 영국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존경받는 모범국가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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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양극화로 계층간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양보정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것은 공동체적 연대와 결속,이른바 ‘사회적 자본’을 튼튼히 하는 길이요,경제도약의 기초가 되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 뜻에서 최근 일부 지식인과 원로들이 봉사와 나눔의 실천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서울 강남의 한 교회를 중심으로 부유층부터 정직하고 감사한 생활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자는 정감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뜻깊게 생각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주장하듯 ‘신뢰’가 곧 부의 원천이다. ‘신뢰’는 지도층 스스로의 믿음가는 행동에서 싹튼다는 점에서 제2의 클래팜 운동이 꽃피길 기대해 본다.
이의근(대신대 총장,전 경북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