偉人*人物

제1차, 제2차 유대전쟁과 고대 이스라엘 멸망

영국신사77 2007. 2. 1. 20:11

         제1차, 제2차 유대전쟁과

                    고대 이스라엘의 멸망                                                 

 

 

                                                                                        블로거 : goryo2005

2006/10/03 오후 3:35  임마누엘


 

    BC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이스라엘을 점령한 때부터 AD 135년 제2차 유대 독립전쟁이 실패로 끝날 때까지의 약 200년 동안,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을 상대로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중요한 사건들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열심당(젤롯당) 결성

 

  AD 6년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는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던

아르켈라우스 왕을 폐위하고, 코포니우스를 그 지역 총독으로 임명했다.
코포니우스 총독은 자기 관할지역에 주민세를 부과했다. 주민세는 12~65세의 주민은 누구나 1데나리온씩 바쳐야 하는 인두세였다.

  이에 갈릴리 지역 가믈라 요새 출신 유다가 주민세 거부운동을 벌이고, 동지들을 모아 열심당(젤롯당)을 조직했다. 그들이 내세운 기치는,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통치자이며 황제의 흉상과 황후의 좌상 따위가 양각된 은화
데나리온을 세금으로 바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것이었다.(마르 12:13~17). 열심당원들 가운데서도 극력분자들을 일컬어 자객들[시카리:sicarii]이라고 한다.

 

                                 (2) 제1차 유대 독립전쟁

 

  AD 66년 여름 플로루스 총독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십자가에 처형하자, 카이사리아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로마 정권에 반대하여 봉기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독립운동에 가담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거절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요르단 강을 건너 펠라로 피신했다.(에우세비오스의 〈교회사〉, 에피파니우스의 〈반이단론〉).

  로마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는 68년 6월 21일 예리고를 탈환하고, 이어서 남쪽으로 13㎞ 떨어진 쿰란 수도원을 파괴했다. 이어 70년 유월절에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가 4개 여단(약 2만 4,000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8월 29일 성전구역을 점령하여 성전을 불지른 다음, 9월에는 예루살렘 서북부 고지대와 헤로데 왕궁까지 점령했다.

  그렇지만 사해 서안에 있는 천연 요새 마사다에서는 자객들이 74년 유월절까지 저항하다가, 실바 장군 휘하의 로마군 제10여단에게 점령될 지경에 이르자 자객 96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 야브네에서 유대교 재건

 

  제1차 독립전쟁이 실패하자, 독립전쟁을 주도한 열심당과 자객당, 상급제사장·대지주·귀족 중심의 사두개파, 쿰란 수도원 중심의 에세네파가 모두 소멸하고 오직 바리새파만이 건재하게 되었다.

  AD 70~80년 율법학자 요하난 벤 자카이는 바리사이파들을 이끌고 텔아비브 남동쪽 약 20㎞ 지점에 위치한 야브네(그리스어로는 얌니아)로 가서, 성전이 파괴되었으므로 오로지 율법 중심의 유대교를 재건했다.

  그는 율법학교(베트 미드라시)를 개설했고, 그의 후임자 가밀리엘 2세는 최고의회(베트딘)를 창설하여 유대교 최고의결기관으로 삼았다.
100년경에는 히브리어·아람어 〈구약성서〉의 범위를 확정했다. 그렇지만 〈아가〉·〈전도서〉·〈에즈라〉를 두고서는 경전이냐, 위경이냐의 논란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런가 하면 85년경 야브네에서 작은 사무엘 랍비가, 유대인들이 회당 예배 때마다 바치는 18조 기도문(슈모네 에즈레, 아미다라고도 함) 가운데, 이단자들을 단죄하는 제12조 기도문(비르카트 하 미님)에 나자렛 사람들
(그리스도교도들)을 덧붙였다고 한다.(바빌로니아 탈무드).

  그결과 그리스도교도들은 회당예배에 참석할 수 없어, 명실공히 독자적 종단으로 독립했다.
제12조항을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자렛 사람들과 이단자들은 사라지게 하소서. 살아 있는 이들의 책에서 그들을 지워버리시어 의인들과 함께
씌어 있지 않게 하소서. 무엄한 자들을 굴복시키시는 하나님, 찬양받으소서."

 

                              (4) 제2차 유대 독립전쟁

 

  115~117년 트라야누스 황제 치세 때, 리비아 키레네 출신 유대인 루쿠아스 안드레아스가 메시아로 자처하면서 이집트·키레네·키프로스·메소포타미아 유대인들을 사주하여 로마에 반기를 들었다. 132~135년에는 시므온 바르 코크바가 제2차 유대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당대의 석학 율법학자 아키바는 그를 메시아로 추대하여, 〈민수기〉 24장 17절에 나오는 '별의 아들'(바르 코크바)이라고 선언했다. 135년 바르 코크바는 베들레헴 근교의 바티르 마을 전투에서 전사하고, 아키바는 유대인들을 부추긴 죄로 로마군에게 처형되었다. 1952~61년에 사해 서쪽 헤베르 계곡에서 바르 코크바의 서간집이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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