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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임한창]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

영국신사77 2007. 1. 29. 14:55
[데스크 칼럼―임한창]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

찬양대가 마지막 찬송을 부르려는 순간 남루한 복장의 한 낯선 사내가 예배당에 들어선다. 사내는 중앙 통로를 천천히 걸어 강단 앞에 선 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몇 달 전에는 활자를 뽑아 조판하는 인쇄공이었습니다. 새로운 인쇄기가 도입되자 직장을 잃고 며칠 동안 거리를 헤맸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고 배웠겠지요. 그러나 저를 위로해준 사람은 목사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방금 찬송 ‘주와 함께 가려 하네’를 부르셨지요. 과연 그 의미가 무언가요.”

사내는 말을 마치자 곧 실신했고,며칠 후 운명했다. 이 사건은 교회에 충격을 주었다. 그 다음 주일,맥스웰 목사의 설교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미사여구도 예화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1년 동안 우리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묻지 않고는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합시다. 우리도 한번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는 것입니다.”

영양실조와 과로로 숨진 낯선 사내의 주검을 놓고 레이몬드 제일장로교회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스스로 묻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운동이 시작됐다. 지나온 삶을 통렬히 회개하고 새로운 삶에 대해 응답을 구하는 등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인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고전인 찰스 M 셸던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In His Step)의 프롤로그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이것은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질문이기도 하다. 교회들은 대부흥을 기념하는 수많은 행사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그 행사들의 내면을 보면서 통회와 자복,결단과 헌신은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회든 단체든,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하나된 행사를 준비하지 않고 유사한 집회를 과시하기 위해,경쟁적으로 열려는 것도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한경직 목사가 생전에 강조했던 것도 ‘교회의 하나됨’이었다. 올해가,지금이,연합과 일치의 실천이 필요한 때 아닌가.

100년 전 교회는 지역사회의 목민센터며,공생의 공동체였다. 100년 전 ‘크리스천’과 ‘정직한 사람’은 동의어였다. 그들이 역경에 처한 백성을 위무하며 질곡의 역사를 넘어왔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가 가장 먼저 회복할 것은 바로 이런 신뢰다.

한국교회는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변혁과 회개로 여는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빛과 소금이 세상의 그것이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교회 안에만 머무는 빛과 소금은 죽은 장식이며 사람에게 밟힐 것에 불과할 뿐이지 않은가.

지금 교회 문밖에 굶주리고 외로운 수많은 사람이 서성이고 있다. 상하고 지친 심령들을 가진 그들도 복음으로 치유받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예수님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실까. 어떤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실까.

hc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