偉人*人物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첫번째 - 제 환공

영국신사77 2007. 1. 6. 14:32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첫번째 - 제 환공

 

 

                                                                      출처 블로그 > 잡담을 나눠요
                                                                      원본 http://blog.naver.com/cesc/30010668204
 
 

   패자라 함은  춘추전국시대에 주나라 황실을 모시는 여러제후국을 대표하는 공 또는 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주황실을 생각해서 자신을 공이라고 불렀지만, 초장왕부터는 주황실의 권위가 너무나 약해져서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왕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내가 패자다' 라고 해서 되는게 아니고 다른 제후국들이 인정을 해 줘야 됩니다. 그 첫번째로 여상(태공망)의 나라인 제나라에 있었던 춘추오패중 첫번째인 제환공에 대해서 얘기 좀 하겠습니다.

 

 제환공의 이름은 소백으로, 그의 형제로는 제양공(태자), 규, 문강(딸), 소백 이렇게 4남매였습니다.

 

  네 남매중 어렸을때 부터 공자 규와 소백이 가장 총명했습니다. 소백이 책을 읽다가 머리도 식힐겸 거닐고 있는데 차마 못볼 제양공와 문강의 근친상간을 보게 됩니다. 그 때부터 소백은 도저히 제양공에게 왕위를 넘겨줘선 안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공자 규 역시 그런 눈치를 채고 있었는지, 소백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공자 규의 스승은 관중, 그리고 소백의 스승은 포숙아 입니다.

 

 여기서 잠시 관중과 포숙아의 애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관포지교라고 하죠.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에 관한 이 고사성어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관중의 천재성을 이해해 준 포숙아의 넓은 아량심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관중과 포숙아는 어렸을 때 부터 친구였습니다. 어느날 서당이 끝나고 집에 가는데, 맛있게 열린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를 가려면 진흙탕 길을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감을 먹으려면 옷이 더러워 져야만 했습니다. 관중이 말하기를 "정말 먹고 싶다" 라고 말하자, 포숙아가 "그럼 내가 가서 따 올께" 하면서 직접 그 흙탕물을 건너가 10개정도의 감을 따서 옵니다. 그 중 9개를 관중이 먹고 1개는 포숙아가 먹습니다.

 

 또 다른 일화로는 둘이 같이 장사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역시 관중이 10의 9을 차지하고 포숙하가 1을 차지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포숙아에게 "너무 손해보는거 아니냐, 5:5로 나눠야지" 라고 말하자, 포숙아가 "관중은 보살펴야 할 가족이 있다" 라면서 이해해 줍니다.

 

 전쟁이 나서 둘이 같은 부대에 있게되었는데, 한 전투에서 싸우다가 불리해진 전황을 안 관중이 홀로 퇴각을 합니다. 덕분에 포숙아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겨우 겨우 퇴각을 해옵니다. 또 친구들이 포숙아에게 말하길 "관중은 너무 비겁하다, 그런 놈을 왜 친구로 두고 있느냐" 라고 하자, 포숙아가 대답하길 "관중에겐 노모가 계신걸 모르느냐" 라면서, 역시 또 이해해 주게 됩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그러다가 문강이 노나라로 시집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문강이 자신의 남편과 함께 제나라로 놀러오게 됩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또 밀회를 즐기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제양공이 자신의 아들인 팽생을 시켜, 사과의 의미로 연회를 베푼다고하면서 쥐도새도 모르게 문강의 남편인 노장공을 죽이게됩니다. 팽생은 태어날 때 부터 힘이 장사라 약간만 힘을줘도 사람의 뼈는 가볍게 부러뜨렸다고 나와 있네요.

 

  어쨌거나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서인지, 노나라 사신들 역시 속아서 단지 피로와 음주가 겹쳐 죽었는 줄만 알았는데, 어느날 밤에 관중이 와서 그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게 됩니다. 이 때분에 분노한 노나라가 제나라를 침략하려고 하면서, 전쟁을 피하려면 팽생을 죽이라고 합니다.

 

  제양공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인 팽생을 죽이게 되죠.. 이런일들이 자꾸 일어나면서, 불안해진 관중과 포숙아는 각각 공자 규와 소백을 데리고, 포숙아는 제나라 옆에 있는 조그만 나라인 거나라로, 관중은 외가의 나라인 노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들이 가면서 말하기를, 나중에 누가 승자가 되든지 서로는 도와주자고 약속을 하게 됩니다.

 

 한편 제양공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총애했던 자신의 삼촌뻘 되는 무지에게 주어졌던 특권들을 몰수 시켜버립니다. 무지는 이에 격노해서 왕위찬탈을 노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국경에 나가있는 장수들의 불만을 알게되고(이 불만이라는 것은 1년을 약속하고 국경수비를 맡겼는데, 제양공이 향락에 빠져 까맣게 까먹게 됩니다), 이 장수들을 자신의 심복으로 삼아 왕위찬탈을 위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결국 반란은 성공하게 되고 제양공은 죽음을 맞고..무지는 왕위에 오르게 되죠. 하지만 무지는 원래부터 왕을 맡을 만한 위인이 아니었습니다.(이름에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ㅋㅋ) 결국 제양공을 뛰어넘는 사치와 향략을 누리더니, 결국 그 역시 암살당하고 맙니다.

 

 각각 다른 나라로 피신해있던 관중과 포숙아에게도 이 소식이 들립니다. 하지만 관중의 예상보다 너무나 빨리 일어난 무지의 죽음이었기에, 관중은 공자 규를 나중에 오라하면서, 자신은 경쟁자인 포숙아가 모시는 소백을 암살하기 위해 밤낮을 달려갑니다. 결국 포숙아보다 먼저 도착한 관중은, 제나라로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소백이 오는 것을 보고 정확하게 그를 화살로 쏴서 맞추게 됩니다. 하지만 운이 없었는지는 몰라고, 그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에 맞게 되고, 결국 소백이 먼저 제나라에 도착해서 왕위에 오르게 되니, 이가 곧 제의 환공입니다.

 

 암살로 소백을 죽이려고 했던 계획을 실패한 관중은, 노나라에 군사를 빌려 제나라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도 관중은 패하게 되고, 분노한 제나라는 노나라에 선전포고를 하게 됩니다. 이미 태반의 군사를 잃은 노나라는 화친을 요청하고, 포숙아는 화친의 조건으로 공자 규의 목과 관중의 생포를 요청합니다. 결국 공자 규는 그렇게 죽었고, 관중은 끌려오게 됩니다.

 

  소백은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관중을 능지처참하려 포숙아가 부르는 줄 알았는데, 포숙아가 소백에게 말하기를

"소백께서 한 나라를 다스릴거면 제가 능히 제나라의 재상직을 맡을 수 있지만, 소백께서는 한 나라가 아닌 더 많은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제가 아닌 관중이 재상직을 맡아야 능히 해 나가실 수 있을겁니다" 라고 오히려 천거를 하게 됩니다.

 

  소백 역시 작은 것에 구애 받지 않을 사람이라, 그 말을 따라 관중을 재상의 자리에 앉히게 됩니다. 포숙아가 관중에게 말하기를 "너가 재상직을 맡아 제환공을 도와드려라, 나는 너의 밑에서 너를 도와주겠다 " 라고 말하자, 관중은 이것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ㅡ.ㅡ; 헉) 하지만 포숙아 역시 이런 반응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결국 제환공(소백)의 뛰어난 인품과 관중의 천부적인 재능이 합쳐져, 제나라는 강성해지고 주위 작은 나라를 흡수하게 됩니다. 주황실은 이런 제나라를 인정해서 모든 제후국을 대표하는 나라로 인정하게되고, 다른 제후국들 역시 제나라를 자신들의 형님으로 인정하게 되면서, 소백은 춘추오패중 첫번째 패자인 제환공이 됩니다.

 

 

 

                 춘추(春秋)시대를 이어간 명군 제환공
                                                                                forvella ( 2006-10-14)

  제 환공은 '관포지교'의 고사로 모두 잘 알고 있는 춘추시대의 왕입니다.(춘추시대에는 주나라에 대한 의리로 왕王대신 공公을 썼지요)

 

  물론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기반에는 관중, 포숙아를 비롯한 기라성같은 인재들이 주변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원인이 되었겠지만, 그렇다고 환공의 정치력과 인재를 등용할 줄 아는 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명(明)조의 한 유명한 학자는 명군에 대한 평을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명군이 존재할 때는 이상하리만큼 인재들이 줄을 이어 등장을 한다. 하지만 폭군이 존재할 때는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인재들이 보이지를 않는다. 사실 인재란 것이 때에 따라 나오고 안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명군은 나라를 잘 다스린다기보다 인재를 등용할 줄 아는 군주라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이런 면에서 자신에게 화살을 날린 관중을 용서하고 재상(현재의 국무총리)에 임명한 환공의 배포는 참으로 남달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후와 종종 회맹()하여 신뢰를 얻었다. 특히 규구(:)에서의 회맹으로 그의 패자()의 자리가 확립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산융()을 쳐서 연()을 구하고, 노()의 내란 평정에 힘을 기울였으며, 오랑캐의 침임으로 멸망한 형()을 이의(:)로, 위()를 초구(:)로 옮겨 부흥시켰다. 내정에서는 군사적 강화와 상업 ·수공업의 육성으로 나라를 튼튼히 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이 뒤에서 부터 분석해 본다면,

 

  상업, 수공업의 육성 : 소금, 구리의 전매제도로 국가 재정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물가의 안정을 이룩함.(당시 구리는 청동기무기의 중요재료였죠) 수공업의 발전으로 중부최강의 기술을 갖추게 함.

 

  군사력강화 : 군사력의 강화로 회맹의 장이 될 수 있었으며, 춘추시대의 최고 걱정거리였던 북방 기마민족을 패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북방민족은 한(漢)족이 중심이었던 중국역사에서 항상 한족을 괴롭혔던 민족으로, 어지간히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지 않고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춘추5패의 첫번째 : 이민족으로부터의 보호를 약속한 환공은 제후국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환공역시 인간이었고, 그 또한 마무리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환공 말년 관중이 죽은 이후, 제 환공은 점차 거만해져 갑니다. 관중의 생존시, 강제로 은퇴(?) 시켰던 수많은 간신을 등용하고, 멀리하라고 간하였던 행동을 함으로써, 그의 사후 제나라에는 내분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춘추 5패중 첫째 주자인 제나라가 마지막 주자인 초(楚) 장왕까지의 시절동안, 한 번도 밀리지 않는 전국 최강의 전투력을 보여주며 승승장구 할 수 있었고, 전국시대로 넘어와서도 전국 7웅으로 불리우며 진(秦)나라와 선두를 다투는 기초를 마련한 것은, 제 환공의 업적이라 볼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제 환공의 약속
 
 
                                                                출처 블로그 > 상선약수(조용히 흐르는 물처럼!)
                                                                원본 http://blog.naver.com/bclee007/140005081598
 
 

  조말은 그 한 많은 여인, 애강(哀姜)의 남편인 노나라 장공(莊公)을 섬겼는데, 당대의 대국 제(齊)나라와 3번이나 싸워 모두 패배의 고배를 마셨다. 장공은 하는 수 없이 수읍(遂色)의 땅을 제나라에 바치고 화친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패장(敗將)인 조말은 계속 장수로 거느렸다.

  패웅(覇雄)인 제(齊) 환공(桓公)은 노 장공과 가(柯)의 땅에서 화친의 맹약을 맺을 것을 허락하였다. 환공과 장공이 단상에서 맹약을 맺으려 하고 있을 때였다. 요새 말로 한다면 항복문서에 조인을 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조말은 날쌔게 단상에 올라가 비수를 제 환공의 목에 대고 협박한다. 환공은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子將何欲?)
"제나라는 강하고 노나라는 약합니다. 그런데 대국인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범하는 정도가 지나칩니다. 지금 제나라의 국경은 노나라 깊숙이 파고 들어와서 이미 국도(國都)를 육박하고 있습니다. 임금께서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齊强魯弱, 而大國侵魯亦甚矣。今魯城壞卽壓齊境, 君其圖之。)
그러면서 조말은 정복당한 노나라의 영토를 즉각 되돌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하는 수 없이 제 환공은 노나라에게서 빼앗은 모든 땅을 돌려줄 것을 수락한다. 이러한 수락이 제 환공의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조말은 환공의 목에 대었던 비수를 던져버리고 단에서 내려와 북향을 하고 평화롭게 신하의 예를 다하였다.

 

  제 환공은 약속을 어기고 조말의 목을 치려한다. 이때였다. 제 환공을 보좌하던 명재상 관중이 이를 제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됩니다.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 대국의 체통을 잃고 한번 뱉은 말을 제멋대로 저버린다면, 제후들에게 신망이 떨어지게 될 것은 뻔한 일이고, 천하 각국의 지지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그 땅을 돌려주시는 것이 상책입니다."(不可。夫貪小利而自快, 棄信於諸侯, 失天下之援, 不如與之。)

  그래서 환공은 마침내 노나라에서 빼앗은 토지를 돌려주었을 뿐 아니라, 적장인 조말에게도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조말은 세 번 싸움에서 잃었던 땅을 모두 되찾았고 그의 명예도 회복하였다.

  이러한 제나라의 자세는 제후로부터 높게 평가되어, 제나라는 높은 신뢰를 받을수 있었다. 이는 패자가 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영지는 빼앗지 못했지만, 더 귀중한 것을 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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