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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주택정책 잘못 왜 되풀이하나

영국신사77 2006. 12. 29. 14:08
          [시론] 주택정책 잘못 왜 되풀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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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이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최근 각종 부동산 대책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옛날 신문 기사를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자주 있다.

다행히 정부의 반대로 일단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지만 열린우리당이 추진 중인 전.월세 대책이 대표적인 예다. 임대 계약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세입자가 바뀔 때도 전세금 인상률의 폭을 5%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1989년 10월 평민당도 이와 흡사한 세입자 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1년이던 임대기간을 2년으로 연장하고 보증금 인상은 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같은 해 12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주택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정작 법 개정 직후인 90년 초 전셋값이 폭등하고 셋집을 못 구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전세 문제가 심각한 사회 이슈로 비화했다. 세입자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세입자들을 길로 내몬 꼴이 됐던 것이다. 또 동일 임차인의 경우 보증금을 5% 이내에서 인상해야 한다는 법이 실제로 지켜지는 경우도 드물다. 그럼에도 17년이 지난 지금 열린우리당이 과거와 거의 동일한 대책을 내놓은 것을 보면서 당시 정책으로 인해 빚어졌던 부작용이나 실효성 부재를 제대로 검토나 했는지 궁금해진다.

되풀이되는 부동산 대책은 이뿐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반값 아파트' 공급도 92년 대선 때 국민당 정주영 후보가 내걸었던 공약이다. 정 후보가 낙선하면서 흐지부지됐지만, 정말 반값 아파트 공급이 가능했다면 지금까지 15년이 다 되도록 정부나 여야 정치권이 이처럼 손 놓고 집값 상승을 보고만 있었겠는가. 토지임대부 아파트 공급은 다양한 주택 공급 방안의 하나로 실행해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과 연계해 '반값 아파트'라고 구호성 목표를 내거는 것은 과거의 정치적 구호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이 정부가 아파트 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채권입찰제나 분양가상한제도 과거 실시했다가 실패했거나 부작용이 커 폐지했던 정책들이다. 분양가상한제는 당장 분양 아파트의 값을 낮추는 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뿌리가 깊고 길게 이어진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70년대 후반부터 98년까지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기존 주택 가격보다 싼 값에 새 아파트를 공급한 결과 너나 없이 아파트 청약 전쟁에 뛰어들면서 투기가 그치지 않았다. 분양가가 기존 집값보다 싸니 분양만 받으면 한 재산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양가 규제가 오히려 아파트 투기를 부추겼던 셈이다.

이와 함께 분양가 규제를 받는 상황에서 20년 가까이 아파트의 품질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어느 건설회사가 지었든 군대 막사같이 줄지은 일자형 배치와 각 평형별로 똑같은 평면의 아파트가 양산됐다. 그래서 소득 증가에 따라 더 나은 집을 원하는 국민의 요구는 충족되기 어려웠다. 분양가 자율화 이후 지어진 새 아파트 값이 지나치게 비싸도 수요가 몰리는 것은 그동안 채워지지 못했던 욕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채권입찰제도 건설업체가 남길 지나친 이익을 국가가 환수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민간 주택 공급을 위축시키는 동시에 채권액이 집값에 더해짐으로써 집값 안정에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미 판명됐다.

그동안 반복해온 온갖 규제가 이처럼 부작용만 키우고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했음을 지난 역사가 웅변하고 있다. 정부와 여야 정당들은 이제라도 인위적인 규제보다는 주택 정책을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주택과 시장에 맡길 주택으로 크게 구분해 과감하게 뿌리부터 바꾸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신혜경 논설위원 겸 도시건축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