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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교회 석옥자 사모의 결혼 이야기

영국신사77 2006. 12. 11. 12:38
              중흥교회 석옥자 사모의 결혼 이야기 


 

  나는 충주에서 태어났다. 언니와 나는 우리 가정의 아브라함인 셈이다. 우리 두 사람이 가족과 친척 중에서 가장 먼저 교회에 출석했다. 축복받은 믿음의 시조가 된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여덟 살이었다. 어머니는 두 딸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해 나중에는 권사가 되셨다.

 

 

  나는 목회자의 아내가 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충주의 한 감리교회에 출석하면서 교회학교 교사로 열심히 봉사했다. 교회생활은 내게 새로운 활력소였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요,보람이었다.

“난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거야.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면서 평생을 살아갈 것이야.”

그런데 어느 날,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너도 이젠 결혼을 생각할 나이다. 내가 아주 좋은 사람을 보아두었다. 그리 알고 열심히 기도하거라. 그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다. 아주 큰 목회자가 될 사람이니 너도 함께 기도해야 한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는 딸에게 이미 배우자를 결정해 놓았다니…. 더구나 그 사람의 직업이 목사라니…. 성직자를 남편으로 만난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그것은 내 취향도 아니었다. 또 그리 급하게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딸의 결혼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평생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할 생각이었다. 어머니가 아무리 엄포를 놓아도 내가 싫으면 그만일 뿐이었다. 결혼은 당사자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어머니는 어떤 젊은이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했는데 그 젊은이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던 것이다. 그 젊은이가 아직 미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마음 속으로 그를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제 딸이 혼기가 됐는데요. 제 딸과 결혼하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 자리를 마련해볼까요?”

결혼 이야기를 먼저 꺼낸 쪽은 어머니였다. 당시 그 젊은이는 오직 복음 전파의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해놓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결혼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무섭고 두려운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어머니도 그리 쉽게 물러설 분이 아니었다.

“젊은 사람이 보통이 아니더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젊은이 같다. 그 젊은이랑 꼭 결혼해야 한다.”

나는 어머니의 작전에 조금씩 말려들고 있었다. 그럼 얼굴만 한번 볼까? 한번 만나보고 퇴짜를 놓으면 그만이지 뭐. 어머니와 싸울 필요는 없잖아. 지혜롭게 대처하자고.

사람의 만남이란 참 묘한 것이다. 첫 만남을 가진 후 우리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곧 부부로 맺어주셨다. 나의 완강한 저항은 이렇듯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 젊은 부흥강사가 바로 엄신형 목사였다...

 

 

 

 

 

                                   정리=이행영 기자 hrefmailtoyoung44@kmib.co.kr[국민일보 2006.1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