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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주에서 태어났다. 언니와 나는 우리 가정의 아브라함인 셈이다. 우리 두 사람이 가족과 친척 중에서 가장 먼저 교회에 출석했다. 축복받은 믿음의 시조가 된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여덟 살이었다. 어머니는 두 딸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해 나중에는 권사가 되셨다.
나는 목회자의 아내가 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충주의 한 감리교회에 출석하면서 교회학교 교사로 열심히 봉사했다. 교회생활은 내게 새로운 활력소였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요,보람이었다.
어머니는 딸의 결혼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평생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할 생각이었다. 어머니가 아무리 엄포를 놓아도 내가 싫으면 그만일 뿐이었다. 결혼은 당사자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정리=이행영 기자 hrefmailtoyoung44@kmib.co.kr[국민일보 2006.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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