偉人*人物

에 스 라

영국신사77 2006. 10. 5. 14:36
                               에  스  라 
출처 블로그 > 쉴만한물가
원본 http://blog.naver.com/mokpojsk/120012091511

 

 

개요
에스라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스라야의 아들로 사독 계열의 제사장입니다. 그는 율법에 정통한 서기관으로서 2차 포로 귀환 때에 유대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1. 율법에 정통한 학자
에스라는 포로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 대하여 익숙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율법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알았고 유다가 다시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을 백성에게 가르침으로써 타락한 유다 백성을 회개시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또한 여호와께 은혜를 입어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였습니다. 즉 이방 왕에게 신임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법을 좇아 언제나 신실하고 정직하게 행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정통하고 정치적인 힘이 있는 에스라를 통하여 유다 백성의 포로 귀환을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 특히 에스라는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을 성취하였으나 아직도 하나님의 법을 떠나 불경건한 삶을 살고 있을 때 등장하여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귀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2. 종교 개혁
에스라는 포로 귀환으로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이방 족속들과 통혼하여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취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범죄했음을 알고는 옷을 찢으며 회개하였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 유다 백성의 죄악을 고하며 마치 자신이 죄지은 것과 같이 통회 자복하였습니다. 에스라가 회개할 때에 온 유다 백성이 에스라와 함께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이방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에게 그 여인들을 돌려보낼 것을 명하였고 유다 백성은 에스라의 명을 좇아 그와같이 행하였습니다. 이로써 에스라는 유다 백성 가운데 있는 죄악을 제하는 종교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그와 같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에스라는 무지한 유다의 죄악을 깨우치고 솔선 수범하여 회개함으로써 유다의 죄악을 회개시켰던 것입니다.
 3. 율법 교육
에스라는 율법에 능통한 자로서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습니다. 오랫동안 이방의 포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유다 백성은 율법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백성은 율법을 배우고 나서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통곡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만들고 회개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에스라는 그때가 여호와의 절기이므로 백성에게 울음을 그치게 하고 초막절을 지키도록 명하였습니다. 유다 백성은 참으로 오랜만에 초막절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라의 율법 교육은 유다 백성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를 힘써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제 1/ 율법에 정통한 학자(스 7:6)
 1. 이스라엘의 귀환
1) 고레스 칙령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진 것이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표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패역을 책망하시면서 그들의 멸망을 경고하셨는데 결국은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멸망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도 예언하셨는데 그것이 시행될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것을 행할 사람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는 바로 고레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고레스를 세우시고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이에 고레스는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 고레스 칙령
회복 예언
렘 25: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심
스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2) 귀환과 성전 재건
고레스의 귀환 칙령은 2차에 걸쳐서 행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1차로는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의 인도를 받은 자들이 귀환했습니다. 이들은 약 4만명 가량 되었는데(참조, 스 2:64), 이들은 곧 성전 재건에 착수하였습니다. 이들의 성전 재건은 원수들의 방해로 16년 간 중단되었으나 학개와 스가랴 등의 선지자들의 활약으로 재개되어 주전 51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 성전을 가리켜 흔히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 귀환과 성전 재건
스 2: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성전 재건 재개
스 5: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하여 돕더니
3) 2차 및 3차 귀환
주전 458년에는 2차 귀환 칙령이 내려졌고 이때 귀환한 자들의 지도자는 에스라였습니다. 그는 왕의 신임을 받는 학자 겸 제사장으로서 귀환한 유대인들의 신앙을 굳게 하고 신앙의 개혁을 일으키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그 후 주전 444년에 느헤미야가 주도한 3차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느헤미야는 귀환 후 예루살렘 성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하였으며, 에스라와 함께 이스라엘의 신앙 부흥을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때로부터 본격적인 유대주의와 유대교가 형성되었습니다.
▣ 2차 및 3차 귀환
에스라의 귀환
스 7:8-9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년 오월이라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느헤미야의 귀환
느 2: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 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2. 사마리아인의 방해
1) 요청과 거부
귀환 후 족보를 정리한 유대인들은 다시 제사를 시작하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힘을 다하여 성전의 지대를 놓았습니다. 비록 초라하긴 하지만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는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감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인들은 성전 재건 사역에 동참시켜 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스룹바벨을 위시한 모든 지도자들은 그들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거부의 이유는 그들이 순수한 유대인도 아니며 그들의 신앙은 혼합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앗수르 왕이 각지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기 때문입니다(참조, 왕하 17:24).
▣ 요청과 거부
스 4: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성전 지대를 놓음
스 3:11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2) 방해와 중단
유대인들의 거부는 올바른 것이었지만 그 결과 그들은 사마리아인들의 집요한 방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성전 재건 사역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모함했으며 결국은 아하수에로 왕과 아닥사스다 왕 때에는 고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아닥사스다 왕은 조서를 내려서 성전 재건 사역을 중지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성전 재건은 다리오 왕 2년에 이르기 까지 16년 동안 중단된 것입니다.
▣ 방해와 중단
사마리아인의 고소
스 4:6-7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니라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3) 재건 재개와 완공
유대인들은 재건 중지령을 인하여 성전을 재건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생업과 생활에 치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건만 성전 재건을 시작하려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을 책망하고 독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막연하게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는 자들의 안일을 책망하시고 성전 재건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 말을 들은 스룹바벨과 지도자는 성전을 완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재건 재개와 완공
책망
학 1: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성전 완공
스 6:14-15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다리오 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3. 에스라의 등장
1) 제사장 겸 학자
이러한 상황에서 에스라라는 인물이 등장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땅에 성전이 재건되었으나 유대인들의 삶은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과는 많이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사독 계열의 제사장이었으며, 또한 율법에 정통한 학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제사장으로서 기존의 종교 체제를 잘 전수하여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70년 동안이나 성전이 없었던 유대인들에게 제사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던 것입니다. 또한 학사로서의 에스라는 율법에 익숙하여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말씀에 대한 열정이 매우 커서 그것을 연구하고 실행하며 가르치기로 작정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 제사장 겸 학자
사독의 후손
스 7:1-2 이 일 후 바사왕 아닥사스다가 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저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율례와 규례 가르치기를 결심함
스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2) 왕의 신임
에스라는 또한 아닥사스다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신실하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아닥사스다는 비록 유대 종교나 율법에 대해 잘 몰랐지만 에스라가 율법에 완전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성전 재건을 중단시켰던 왕 자신이 에스라를 믿고 그를 보내어 성전 재건과 율법 교육을 명하였던 것입니다.
▣ 왕의 신임
스 7: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성전 재건 명령
스 7:2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의 명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3) 적절한 지도자
에스라가 처한 상황과 그가 가진 조건과 특성들을 볼 때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지도자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물론 항상 일꾼이 부족하여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 적절한 지도자
일꾼을 위한 기도
마 9:37-38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주제 2/ 종교 개혁(스 10:1-4)
 1. 아닥사스다의 조서
1) 조서의 발표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일시적으로 중단된 성전 재건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독려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힘입어 재개되었습니다. 결국 다리오 왕 6년 아달월 3일에 성전 재건이 완수되어 성전의 봉헌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곧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유월절 준수를 놓고 그 시대가 어떠한 영적 상태에 처해 있는지를 평가합니다(참조, 왕하 23:21; 대하 35:7). 이렇듯 종교적, 영적인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닥사스다로 하여금 중요한 조서를 내리게 하신 것입니다.
▣ 조서의 발표
스 6:15-16 다리오 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하니
조서를 내림
스 7:11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의 학사인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2) 조서의 내용
아다사스다는 에스라에게 이 조서를 내렸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아닥사스다는 유대인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는 에스라와 함께 귀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루살렘 성전과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라고 명령합니다. 아닥사스다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였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이 아니라 재난을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이 일들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찌되었든간에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 조서의 내용
귀환 허락
스 7:13 조서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진노를 두려워함
스 7:2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의 명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3) 에스라의 파견
아닥사스다는 이 일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분명하게 맡아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마침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 왕의 주변에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에스라였습니다. 사독의 오대 손인 제사장이며 또한 학사인 에스라는 유대인으로서 포로의 입장이었지만 왕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은 에스라의 능력에 대하여 전적으로 인정하고 그를 신뢰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2차 귀환의 지도자로 그를 세워 파견하였던 것입니다.
▣ 에스라의 파견
스 7: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에스라를 인정함
스 7: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2. 개혁의 준비
1) 인원 동원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받은 에스라는 기쁘기도 하였지만 매우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자들의 보계를 살펴보았습니다(참조, 스 8:1-14). 그는 사흘 동안 아하와 강가에 머물면서 그들의 형편을 살폈습니다. 그러던 중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에스라는 족장들과 명철한 사람들을 불러모아 성전에서 수종들 레위 사람들을 찾아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결과적으로 241명의 레위인들이 그들의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모든 일에 있어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 인원 동원
아하와 강가에서 살핌
스 8: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일 동안 장막에 유하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중에 레위자손이 하나도 없는지라
수종들 자들을 찾음
스 8:17 가시바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 형제 곧 가시바 지방에 거한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주고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수종들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2) 금식
귀환할 사람들이 모두 동원된 후 에스라와 일행이 했던 일은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왕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해 왔으므로, 귀환에 있어서 왕의 군대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유대인들의 귀환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따랐습니다. 에스라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귀환이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을 드러 내는 기회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금식을 선포했고 사람들은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것입니다.
▣ 금식
군대를 요청하지 않음
스 8: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3) 귀환
이들의 금식과 기도는 순수한 동기에 의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물품들을 정리하여 정월 12일에 출발하였습니다. 이 길은 매우 험하고 먼 길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지켜 보호하셨습니다. 특히 이들을 해하고자 했던 원수들의 손에서 건지셨던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하여 에스라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동행하심에 대한 확신을 굳건히 할 수 있었습니다.
▣ 귀환
스 8: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
스 8:31 정월 십이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3. 개혁
1) 이방 결혼의 문제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는 이방 결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방 결혼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것이 에스라가 아니라 기존의 유대 방백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해 마음 아파하다가 그 문제를 감당할 적절한 인물이 나타나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에스라는 자신의 죄가 아님에도 철저히 회개하고 통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 이방 결혼의 문제
방백들의 문제 제기
스 9: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 협력
이러한 에스라의 모습은 백성들의 마음을 감화시켰고, 이에 백성들은 에스라와 협력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처럼 열심과 경건은 파급성이 강합니다. 에스라의 경건은 곧 모든 이스라엘인들에게 큰 도전을 던져 주었고, 이를 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한 일을 시작하게 했던 것입니다.
▣ 협력
이스라엘의 맹세
스 10:5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3) 해결
에스라는 곧 이방 여자들과 결혼한 자들에 대하여 조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사장들 중에도 이방 여자와 결혼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아내를 내어 보내고자 맹세하고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에스라의 개혁 의지는 매우 강경하여 심지어는 자녀를 낳은 이방인 아내까지도 내어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에스라의 강력한 분리 의지는 후기 유대교의 대표적인 특성이 되었습니다.
▣ 해결
이방 결혼한 자를 조사
스 10:17 정월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취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자녀를 낳은 이방 여인
스 10:44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취한 자라 그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주제 3/ 율법 교육(느 8:18)
 1. 느헤미야의 사역
1) 에스라의 사역의 한계
에스라의 개혁 의지는 매우 강경한 것이었습니다. 에스라서는 에스라의 개혁에 대하여 이방 결혼에 대한 것에 국한시켜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개혁 사역은 그리 성공적인 것은 못 되었습니다. 그것은 에스라보다 조금 뒤에 사역한 느헤미야의 시대에 에스라가 척결하고자 노력했던 문제들이 여전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에스라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또한 함께 동역하게 하기 위해서 느헤미야라는 또 다른 지도자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 에스라의 사역의 한계
느 13:23 그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느헤미야의 사역
느 13:25 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2) 느헤미야의 파견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습니다. 당시 술 관원은 왕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로서 왕의 보호자이며 친구요, 조언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중요한 직책이었습니다. 에스라도 왕의 신임을 받는 자였지만 느헤미야 역시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자였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다니엘이나 모르드개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참조, 단 2:48, 5:29, 6:2; 에 8:2, 10:3) 이들은 모두 포로라는 신분임에도 통치자의 인정을 받아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청을 들어주어 그를 유대의 총독으로 파견하였습니다(참조, 느 5:14).
▣ 느헤미야의 파견
느 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느헤미야의 파견
느 2:6 그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 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3) 느헤미야의 사역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파견되기 이전에는 유대가 이웃 사마리아와 함께 관리되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총독은 산발랏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세력이 위축되는 것을 싫어하여 느헤미야를 괴롭히고 모략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경건 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에스라와 함께 새로운 부흥 운동을 주도하였던 것입니다.
▣ 느헤미야의 사역
산발랏의 방해
느 6: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다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예루살렘 성벽 재건
느 7:1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2. 율법 교육
1) 7월 절기의 준수
느헤미야는 성벽을 완성하고 성문을 달은 후에 제사장을 비롯하여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이 성안에 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7월이 되자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절기를 지켰습니다. 유대의 종교력 7월을 가장 절기가 많은 기간입니다. 7월 1일은 성회로 모였고, 10일은 속죄일, 15일은 초막절이었습니다(참조, 레 23:23-43). 그런데 이것이 그 동안 지켜지지 않고 있다가 이제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1일에 모든 회중이 성회로 모이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 7월 절기의 준수
레 23:24-25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성안에 거한 사람들
느 7:73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이 다 그 본성에 거하였느니라
2) 율법 교육
느헤미야는 이때 율법을 가르칠 사람으로 에스라를 초청했습니다. 그리하여 에스라는 율법책을 가지고 와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들을 모으고 그들 앞에서 율법을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이미 유대인들이 아람어를 사용하던 때요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모르던 때였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된 본문을 읽고 그것을 다시 아람어로 풀어 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풀어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 율법 교육
에스라 초청
느 8: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3) 백성들의 반응
우리는 여기서 말씀을 듣는 백성들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 갔다가 귀환한 이들의 심령은 말씀에 대하여 몹시 갈급해 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말씀에 대한 정당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들은 에스라가 말씀을 펼 때에 일어났으며(참조, 느 8:5), 하나님을 송축하는 에스라의 말을 듣고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의미를 깨달아 모두 울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받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 백성들의 반응
백성들의 경배
느 8:6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말씀을 듣고 욺
느 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3. 율법 교육의 결과
1) 즐거움
말씀을 깨닫고 우는 자들에게 에스라와 지도자들은 울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더군다나 그 날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으로 지켜야 하는 성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날은 근심하고 우는 날이 아니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날인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근심을 즐거움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이에 백성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음으로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 즐거움
슬픔이 기쁨으로
에 9: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크게 즐거워함
느 8: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2) 서로 나눔
에스라는 울지 말고 기뻐하라는 권고와 함께 서로 기쁨을 나누라고 말합니다, 백성들은 이 말에 순종하여 함께 나누어 먹고 마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성령충만한 자들에게서는 이와 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서로 나누며 사랑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말씀이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 서로 나눔
느 8:10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3) 초막절을 지킴
에스라는 이어서 초막절을 지키도록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40년 광야 생활 동안 지켜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더 나아가 미래에도 베풀어질 은혜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절기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여호수아 시대 이래로 가장 확실한 초막절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절기를 형식적으로 지킨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데서 오는 겸손하고 경건한 신앙 자세에서 비롯된 지킴이었던 것입니다.
▣ 초막절을 지킴
초막절
레 23:3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초막절 준수
느 8:16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광장에 초막을 짓되
 
 
 
 
▣ 낭독하고
'부르다, 읽다, 불러내다, 암송하다' 라는 동사 는 일차적으로 특별한 말이나 메시지를 발설하는 것을 나타내며 '선포하다' 라는 의미로도 언급된다. 에스라는 제 2차 포로 귀한 시기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의 민족적 종교 개혁 운동을 주도하다가 B. C. 456년에 페르시아 궁전으로 다시 소환되어 가서 13년 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그 후 느헤미야를 돕기 위하여 귀국했다. 본문은 에스라가 다시 귀국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폐해진 영성을 일깨우기 위하여 율법을 들려줘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온 백성을 모아서 율법책을 낭송한 사실을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듣고 연구할 뿐만 아니라 율법의 가르침대로 성회를 열기를 기뻐하였다.
 
▣ 절기
'경축하다, 절기를 지키다, 거행하다' 라는 동사 에서 유래한 말로 '축제일, 절기' 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하나님과 밀접한 관련을 맺기 때문에 거룩하고 기쁜 날로 언급되며 본문처럼 대체로 초막절을 가리킨다.
 
▣ 성회를 열었느니라
'제지하다, 보류하다, 머무르다' 라는 동사 에서 유래한 는 엄숙하고 거룩한 집회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노동의 제지 또는 노동의 중단이라는 개념에서 확대된 것이다. 에스라의 율법 낭독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규례를 지키기로 하였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과 포로 생활을 기념하는 것인데, 성경 기자가 유독 초막절에 관심을 갖고 기록한 이유는 광야 생활을 유비시키려는 의도인 것 같다. 초막절은 칠 일 동안 지키고 제 팔일에는 성일로 노동이 금지되었으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리도록 규정되어 있다(참조, 레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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