偉人*人物

역사와 성경

영국신사77 2006. 9. 28. 23:30
역사와 성경-1 

                               역사의 진실


  주전 3000년 주후 2000년 근 5000년의 인류역사 안에 참으로 숱한

세상의 왕들이 제가끔 대단한 권세를 누리며 살다가 명멸해 갔다.


  고대 앗시리아제국의 수도였

던 니느웨성터에서 발견된

부조로된 벽화는 왕의 사자

사냥 모습을 정교하게 조각하

고 있는데, 정말 대단한 힘의

과시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앗수르뿐 아니라 고대

이집트나 페르시아제국, 그리

스와 로마 문명권 등에도 엄청

났던 왕권의 상징물들이 당시

의 영욕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 유적들은 오랜

세월동안 땅속에 초토화된 채

묻혀있다 발굴된 것이 대부분

이다. 왜 그랬을까?

고대 앗시리아 사자 사냥 부조

  그 표면적인 원인으로 지진 등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 때문이었다거나, 아니면 철저히 황폐화시키는 고대 전쟁의 관행(민21:30 등) 때문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인류의 역사가 한결 같이 허탄(虛誕)함에 빠져,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입은 때문이라는 것이다.

  먼저 지진 등 재해를 입은 예는, 지난해

12월 26일 성탄절을 지낸 다음날, 유대교와 기독교를 철저히 거부하는 이란 케르만주(洲)의 고도(古都) 밤(Bam)시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사건을 통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리 유네스코가 세계적인 문화 유적으로 지정을 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A4 용지에 인쇄된 문화재 인정 증서 따위가, 결코 고대 유적을 지켜 낼 수 없음을

21세기에도 여전히 보여주신 것이다.

 ▲ 이란 밤시의 진흙 고성

 

  터키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에베소 등지도 그

화려한 돌로 지어진 도

시들이 지진으로 순식간

에 무너져 내린 곳이다.

  물론 피해를 당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해서

야 안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너희

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3:1~5)하신 주 예수

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일일 것이다.


  전쟁의 경우도 그러하

다. 17세의 소년 다윗이

고백한 대로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삼상

17:47)이므로, 하나님께

서 징치(懲治)하시기 위

하여 몽둥이로 들어 쓰

신 왕들이 전쟁을 일으

키는 것이고, 승리의 표

시로 철저히 유린하고

쳐부수게 되는 것이다.

에베소 야외 대극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동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으려

는 세상은, 이 모든 재앙을 단지 운이 없어서 그리 된 것인양 착각

하며 불쌍한 삶을 살아 갈 뿐이다.

  이러한 세상의 왕들 역시 그러하다. 자신이 왕이 되는 그날로부터

소위 개혁이다, 진보다 하면서 역사를 섭리하시는 절대자의 뜻을

찾으려 하기보다, 마치 자신이 모든 분야를 통달한 대가처럼 역사의

해석을 달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제도와 사상은 소위 통치 철학이라는 이름아래 뒤바뀌

고, 공의에 의한 시시비비보다는 반대자나 정적들에 대한 가차없는

심판과 징벌을 가한다.

  인간적 욕심 때문에, 내 눈의 들보보다는 남의 눈에 티가 더 커 보

이고, 자신의 잘못은 남보다 작으니 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진실을 저버리는 가치전도 현상으로, 세상은 온통 시끌벅적

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와 성경 - 2
                   하나님의 아들과 세상의 왕

  천군 천사의 호위 속에

오심도 오히려 부족하신

만 왕의 왕이시며 만 군

의 주되시는 예수그리스

도께서 연약한 한 여인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말구유위로 오셨다.

  뿐만 아니라 오셨음에

도 불구하고 잘못한 사

람들을 벌주신다거나,

권세 있는 그릇된 자들

을 꺽으심도 없으셨다.

  가난한 자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옳은 일을

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갇혔고, 그 어떠한 세상

적인 변화를 꾀하심이

없으셨다.

  그러니 당시에 메시아

가 오시리라고 외치다

옥에 갇힌 세례 요한도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

니까”(마 11:3)고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어 물었

던 것이다.

예수님 탄생 성화

  세례 요한도 간과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도 세상 왕의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었을까?
이미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

되는 일”(마11:5)들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심지어 요한과 그의

제자들조차도 이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눈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세상에 인류의 역사가 메소포타미아 시날 평지에서 수메르

사람들에 의하여 쓰이기 시작한 이래, 누가, 어느 신과 어느 왕이

있어 소경을 눈뜨게 하고 문둥병을 고치며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가

있었던가?


  3600개도 더 넘는 수많은 고대근동(古代近東)의 신들은, 하나 같이 인간이 신격화하여 탈을 쓴 우상들이었으므로, 오히려 높은 신전에 앉아 인간을 수탈하며 운명의 유희를 즐겼을 뿐, 궁극적인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 고대 수메르 신 닌우르타

  예수님 탄생 300년 전쯤 마케도니아 왕 필립2세의 아들로 태어난

알렉산더는 가히 세상이 고대하는 메시아의 전형이었다.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당대 최고의 학자를

가정교사로 두고 세계화 사상을 교육받는다.
그리고 21살의 젊은 나이에 왕위를 거머쥐고 불과 12년만에 전 페르

시아 판도를 수중에 넣으며 세계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정복지 바벨론에 머물던 알렉산더는 33살의 젊은 나이에

급사하고 만다. 문제는 그의 사후(死後)였다.
  그를 따르던 4장수가 결탁하여 알렉산더의 일족 46명을 몰살시키

고 그의 판도를 나누어 가진 것이다.

  백마를 타고 칼을 든 화려한 정복군주 알렉산더는, 이렇게 자신은

물론 자신의 후사(後嗣)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칼의 힘이 없으면,

실은 가장 허약한 한 인간일 뿐이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알렉산더는 공교롭게도 예수

님과 같은 33살의 나이에 죽

었다. 그리고 그의 공적인

정복 역사는 12년이었다.

  예수님보다 4배나 많은 세월

동안 숫한 부하들을 거느리고

말달린 그의 삶은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였지만, "머리 둘

곳도 없다"(눅9:58)하시던

수님은 3년의 공생애로 전

인류를 구원하셨다.

  그리고 지난 2000년은 그

예수님의 말씀이 전 세계로

전파되어 간 복음의 시간들이

었으며, 진정한 구세주 예수님

은 이제 곧, 심판주(審判主)로

다시 오실 것이다.

  이렇게 역사를 통하여 깨우

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요한

은 착각을 일으킨 것이었다.

▲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오늘 우리들, 가장 뛰어난 인간 이성주의(理性主義)의 극치

를 살고 있다고 자부하며, 지구로부터 400km상공에 우주정거장을

짓고 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역사 속의 세상 왕들과 마찬가지

로, 얼마나 자기위주로만 생각하고 살며 전도된 가치관의 혼란 속에

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카드 빚에 자살하고 심지어 어린 자녀들을 마구 강물에 던지기까

지… 실로 유구무언(有口無言)인 세상이다.
그래도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들이는 순수함

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주께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두고 "죄 없는 자부터 돌로 치라"

하셨을 때 "어른부터 젊은이까지 다 물러갔다"(요 8:9)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아마 요즘 사람들에게 똑같은 요구를 한다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돌을 던질 것이다.

  과연 세상은 그러하다. 착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 법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 세상적인 열락(悅樂)과는 무관한 채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겉으로는 열심이라고 착하다고 얘기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리

석고 나약하다고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고 업신여기고 비웃

기까지 한다.

  적당히 편히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열심 해 지는 것이 교회에서

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 되, 교회 새벽기도는 으레 나이 드신 노인들

로 가득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적당히 법을 어겨야 사업

하는 수완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본다면 "눈먼 사람

이 보고 귀먹은 자가 들으며 앉은뱅이가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진실로 세상이 바뀌는 기적의

현장을 오늘도 확인하고 맛볼 수 있을 것인데 말이다.

                                                                                                    [출처:창조사학회]

'偉人*人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르티아 [Parthia]  (0) 2006.10.01
메소포타미아 [Mesopotamia]  (0) 2006.10.01
느 부 갓 네 살  (0) 2006.09.23
다니엘  (0) 2006.09.23
페르시아 전쟁 (오리엔트와 그리스 세계의 투쟁)  (0) 2006.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