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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각별한 해리스 목사, 신속한 미군 참전에 결정적 역할/[6.25전쟁 70주년] 김재동 목사의 잊지 말아야 할 그때 그 역사 <15·끝>

영국신사77 2020. 6. 25. 21:59

이승만과 각별한 해리스 목사, 신속한 미군 참전에 결정적 역할

[6.25전쟁 70주년] 김재동 목사의 잊지 말아야 할 그때 그 역사 <15·끝>

입력 : 2020-06-25 00:05

이승만 대통령(왼쪽)이 1954년 8월 1일 미국 워싱턴DC 파운드리감리교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오른쪽은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한국전 파병을 결정하도록 도운 프레데릭 해리스 목사.


김일성 집단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있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신속한 미군 참전 결정이다.

당시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은 6·25전쟁에 참전해야 할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었다. 더군다나 한반도를 미국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이 발표된 뒤였다. 그런 상황에서 트루먼이 자국이 공격받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빨리 미군 파병을 결심했다는 것은 기적이다.

도대체 무엇이 트루먼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그 배경에는 프레데릭 해리스(1883~1970) 목사의 역할이 컸다.

6·25전쟁 발발 직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트루먼에게 전보를 보내 “코리아의 남쪽에는 인구대비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많은 기독교인이 있다. 그들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요청했다. 당시 그레이엄은 젊은 목사였고 전보를 보낼 당시까지도 트루먼을 만난 적이 없었다.

해리스 목사는 달랐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24년간 상원 원목으로 재직했다. 미국 정계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기독교인이었다. 해리스는 트루먼이 부통령일 때부터 친밀한 관계를 쌓아왔다.

6·25전쟁 발발 약 한 달 전 해리스는 트루먼에게 긴급 서한을 보냈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한국의 안보를 위해 이승만을 국빈으로 초청해 만나 달라고 요청했다.

해리스 목사가 한국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이승만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 때문이다. 이승만은 해리스가 목회했던 파운드리감리교회에 1939년부터 45년까지 출석한 교인이었다.

50년 8월 18일 해리스는 트루먼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루먼의 신속한 파병 결정에 “훗날 20세기의 가장 중대한 결정이었다고 회고될 것”이라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트루먼은 “당신의 편지에 무척 감사하고 있다”고 회신했다.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김명섭 원장과 유지윤 연구원의 논문에 의하면 해리스는 6·25전쟁 중 물심양면으로 한국을 지원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50년 10월 1일 해리스는 파운드리교회에서 전쟁 중인 한국을 위해 기도할 것을 제안했고 헌금으로 모인 300달러를 한국 정부 앞으로 기부했다.

51년에도 특별 부활절 헌금 1550달러를 한국에 전달했다. 해리스는 그해 10월에도 서울수복 과정에서 전사한 윌리엄 H 쇼의 아버지 윌리엄 E 쇼 선교사를 통해 360달러를 한국에 기부했다. 51년과 53년 방한용품을 모아 파운드리교회 부목사 출신으로 당시 주한미군 군종 목사였던 랠프 존을 통해 후원했다.

특히 파운드리교회에서는 40여명의 한인이 김태묵 목사를 중심으로 전쟁 중인 한국을 돕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훗날 이 모임이 주축이 돼 워싱턴DC 최초의 한인교회가 시작된다.

해리스의 한국사랑은 전쟁 이후에도 계속됐다. 해리스는 전쟁 이후에도 경제원조정책 고위 관계자를 만나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에 계속 힘을 쏟았다.

54년 7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국빈으로 워싱턴DC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까지 올라 영접한 사람이 해리스 목사였다. 착륙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승만은 “나의 목사님, 해리스”라는 표현을 했다.

이 대통령은 방미 기간 중이던 8월 1일 파운드리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이때 이승만은 해리스와의 오랜 관계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1945년 이전 워싱턴DC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 나는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고 평생의 친구이자 현재 이 교회를 관할하는 해리스 목사를 사귀었다.”

훗날 파운드리교회에서 해리스 목사 재임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때 양유찬 주미대사가 이승만 대통령이 보낸 메시지를 대독했다. “나는 한국이 가장 어두울 때 해리스로부터 지혜로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나의 친구이자 멘토이며, 내 조국의 위대한 챔피언(champion)이다.”

해리스는 55년 3월 26일 이승만의 생일을 축하하는 전문을 통해 “훌륭한 기독교인이자 국가원수이며 세계적으로 용맹스런 자유수호자에게 당신의 교회 파운드리가 생일 안부를 전한다”고 했다.

이승만은 답신을 이렇게 했다. “우리의 교회 파운드리 교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 독립적인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통일되고 자유롭게 되기까지 쉬지 않을 것입니다.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맞선 나의 충성스런 국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여 곧 실현될 것입니다.”

해리스는 파운드리교회 담임목사로서 이승만과의 관계를 통해 한국을 위한 ‘그림자 대사’(a shadow ambassador)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았다. 오늘의 자유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위해 피 흘리며 싸운 유엔군과 국군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나님은 이 나라의 자유 수호를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해리스 목사 등 신실한 크리스천들을 준비하셨다. 6·25의 민족적 고난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향한 놀라운 구원계획을 보여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린다.


김재동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4156&code=23111111&sid1=ch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