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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의 생로병사] 60대 목사도, 70대 스포츠 댄서도 받는 모발 이식의 세계

영국신사77 2020. 6. 3. 00:20

[김철중의 생로병사] 60대 목사도, 70대 스포츠 댄서도 받는 모발 이식의 세계

조선일보

입력 2020.06.02 03:14

머리카락을 종아리, 등, 목 뒤에 심어보니 성장 속도 다 달라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중년 남자인 그의 종아리 안쪽에는 기다란 머리카락 올들이 자라고 있다. 털이 아니다. 자기 두피에서 머리카락 모낭을 여러 개 떼어와 옮겨 심어 놓은 것들이다. 종아리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아당기면 20㎝가량 된다. 다리털이 그렇게 길게 자랄 수는 없다.

피부과 전문의 황성주 박사가 '머리카락 이리저리 옮겨 심기' 생체 실험을 하기 시작한 것은 경북대병원서 모발 이식을 연구하던 1998년경이다. 동료 도움을 받아 뒤통수서 모낭을 떼어와 왼쪽 종아리 상단에 30가닥을 심었다. 머리카락 모낭을 다른 곳에 옮겨도 그 자리서 머리카락이 난다는 것을 모발 이식에 주저하는 탈모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드러내기도 감추기도 편한 종아리에 심었다. 그 올들이 지금도 싱싱하게 살아있다.

뒤통수와 옆머리 아래는 나이 들어도, 대머리가 되어도, 탈모가 일어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다. 아마도 조물주가 두개골 보호와 머리 쿠션 유지, 두피 땀이 아래로 흘러가지 않도록 한, 최소한의 장치로 남겨두려 했지 싶다. 어찌 됐건 그 부위 모낭을 텅 빈 앞이마에 옮겨 심으면 머리카락이 다시 나고 그건 빠지지 않는다. 이른바 공여부 우성론이다. 씨가 좋으면 어느 밭에 심든 그대로 자란다는 의미다. 모발 이식의 근본 원리다.

황 박사가 다리에 머리카락을 옮겨 심는 연구를 한창 할 즈음 딸아이가 태어났다. 2년이 지나니 딸 머리카락이 더 길어졌다. 문득 의구심과 호기심이 생겼다. "혹시 머리카락 씨더라도 밭이 다리 살이면 길이 성장에 한계가 있는 건 아닐까?" 이에 그는 자기 머리카락을 등에도 심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카락이 두피를 벗어나서는 20㎝ 이상 자라지 못했다. 성장 속도가 두피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일러스트=김성규

 

 

이번에는 다리에 옮겨 심었던 모낭을 다시 떼어내 목 뒤 두피에 심어봤다. 그랬더니 머리카락이 다시 길게 자랐다. 머리카락은 한 달에 1㎝ 정도 자라니, 그의 생체 실험은 오랜 기간 관찰이 필요한 지난한 과정이었다. 모발 이식을 받으러 온 탈모인 중 유난히 가슴에 털이 많은 남자가 있었다. 황 박사는 동의를 받고 통상적 모발 이식을 하면서 가슴 털 모낭도 몇 개 두피에 옮겨 심었다. 본인도 같이 해봤다. 그러자 가슴 털 성장 속도가 두 배 빨라지는 걸 확인했다. 제법 길어졌지만 씨가 가슴 털인지라 아주 길어지지는 않는 것도 확인했다.

그는 모발 탐구를 정리하여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머리카락은 두피처럼 피부가 두껍고 혈액순환이 좋은 곳에서 잘 자란다. 밭의 영향도 크다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모발 성장 '씨와 밭 조화론'이다. 올해의 피부과 논문상을 받았고, 나중에 국제모발이식학회서 주는 '백금 모낭상'을 받았다. 그의 탐구로 모발 이식의 깊이도 알게 됐고, 머리카락을 눈썹 빠진 환자에게 이식하면 직모로 아주 길게 자라지 않는 현상도 이해하게 됐다. 가슴 털이 많은 서양인에게 가슴 털 모발 이식도 생겼다.

요즘 모발 이식을 받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가발 산업과 경쟁 중이다. 주례 많은 70세 퇴임 교수님도, 고개 숙이는 기도 장면이 모니터에 비치는 60세 목사님도, 스포츠 댄스로 인생 후반을 즐기는 '73세 청년'도 이식인 대열로 들어온다. 까끌까끌한 이마 느낌이 좋다며 스님이 찾아온 경우도 있단다. 흔하기로는 결혼 맞선 시장에 나서는 조기 탈모 젊은 남성들이다. 결혼정보회사에 탈모 사실을 가발로 숨기고 가입했다가는, 지병을 숨기고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것과 같은 제재를 받는다고 한다. 휑한 머리로 관에 들어갈 수 없다는 70대 할머니, 볼륨감에 예민한 50대 갱년기 부인, 선글라스로 앞머리를 젖히고 걸쳤을 때의 멋스러운 이마를 위해서도 이식의 세계로 온다.

우리는 왜 머리카락에 집착하는가. 돈 내서 겨드랑이털을 제모하고, 일부러 왁싱도 하는 세상인데, 유독 머리카락만은 쥐고 있으려 한다. 유명 남자 배우들을 포토샵으로 죄다 대머리로 만들었더니, 모두 똑같이 보이더란다. 그렇다! 머리카락이 자기 고유 개성의 상징인 것이다. '카락'이 있어야 헤어스타일 연출이 가능하고, 카락이 있어야 건강해 보이고, 셀카도 찍는다. 최문순 강원지사가 긴급재난지원금을 발모제 사는 데 쓴 것은 적합한 용처에 쓴 거다. 탈모인 셰익스피어는 "세월은 머리카락을 가져가는 대신 지혜를 주었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이제 현대인은 머리카락도 지키고 지혜도 얻으며 살아가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2/20200602000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