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과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삼위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초대교회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들의 소유를 팔아 그 값의 얼마를 감추고마치 전부인 것처럼 사도들을 속일 때 베드로는 성령을 속임이 곧 하나님을 속임이라는 말로 성령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다(행 5:3,4).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동일한 하나님의 반열에 세워 놓으심으로 성령님이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한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여 주셨다.
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다. 성경은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속성인 영원성(히 9:14), 전능성(눅 1:35), 전지성(고전 2:10), 무소 부재하심(시 139:7,8)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2) 인격을 지니신 성령님
성령께서 인격을 지니고 계신다는 깨달음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 생활이 보다 깊어지고 능력이 따르며 현재적인 열매를 맺게 하는 역사가 바로 인격적인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일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격적인 성령님을 모셔들이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 성령님께 예배하게 된다.
둘째, 자신을 성령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겸손한 심령으로 그 앞에 내어 드리게 된다.
셋째,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한 인격이 구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물을 깨달아 아는 지(知)와 희노애락의 느낌을 갖는 정(情)과 사물을 판단하고 자기의 태도를 결정짓는 의지(意志)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지성(롬 8:27; 고전 2:10)과 감정(롬 5:5,8:27; 엡 4:30)과 의지(행 16:6,7; 고전 12:11)를 갖고 계신다.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는 인격적 성품을 갖고 계시므로 어떤 힘이나 능력같은 비인격적 존재가 아닌 인격적 존재이시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되 특별히 다른 보혜사가 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구주로서 보혜사이셨다면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다른 보혜사'가 되셔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도우신다(요 14:16,17).
1) 불신자와 관련된 사역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6:8-11). 성령님은 예수를 믿지 않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책망하신다. 또한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사람들을 책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의롭게 되며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세상 임금인 마귀를 따르는 사람들은 장차 있을 마지막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하시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내세에 대한 소망 가운데 살게 하신다.
2) 신자와 관련된 사역
성령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요 3:5). 성령님은 믿는 사람들 안에 내주하셔서(요 14:16) 가르치시고(요 14:26), 인도하시며(롬 8:14),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신자들을 위해 간구해 주신다(롬 8:26). 그 외에도 신자를 인치시며(엡 1:13,14; 딤후 2:19), 일을 시키시며(행 13:4; 16:6,7; 고전 12:11), 보증이 되시며(고후 1:22; 엡 1:14), 능력과 기름 부음을 주시며(눅 24:49; 행 2:1-4; 고후 1:21; 요일 2:20,27), 몸을 부활시키시며(롬 8:11; 고후 4:14),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거하는 사역을 행하신다(롬 8:16; 갈 4:6).
중생과 성령 세례는 분명히 다른 별개의 체험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체험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어떤 기간을 두고 일어날 수도 있으나 분명히 다른 체험인 것만은 확실하다. 성경에는 중생의 체험을 한 성도들이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예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택함을 받았으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순종하였음으로 이미 중생을 체험하고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 이외에는 모두 깨끗하다고 하심으로써 그들의 중생을 보증하셨다(요 13: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또한 사도행전 8장 5절부터 13절까지를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자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은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다음 8장 14절부터 17절까지를 보면, 세례는 받았으나 동시에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확실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에 가서 제일 처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는 질문을 하였다. 이 말은 우리가 믿을 때에 자동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성경적 증거를 볼 때, 중생과 성령 세례는 확연히 다른 별개의 체험임을 알 수 있다.
1) 성령 세례
성령 세례는 중생한 자가 주의 사역을 감당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성령께 사로잡히는 영적 체험의 출발이다. 성령 세례의 증거는 다양하나 그 대표적인 외적 표현으로 '방언'을 들 수 있다. 사도행전에는 성령 세례의 체험을 기록한 기사가 네 군데 나와 있는데(2:1-4, 8:4-24, 10장, 19:1-7), 이 중 8장의 사마리아 부흥회 때 외에는 모두 방언을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성령 세례의 대표적 표적은 방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확실한 성령 세례의 증거는 '능력 있는 복음 전파'에 있다. 즉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행 2:14-41).
성령 세례는, 그 증거가 방언이든 혹은 복음을 능력있게 증거하는 전도의 생활화든, 성령 세례를 받은 신자의 마음에 큰 확신으로 경험될 수 있는 사건이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는 그 결과로서 자신에게 허락된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 활용해야 한다. 대표적인 성령의 은사로는 고린도전서 12장 8절부터 12절까지에 기록된 아홉 가지의 은사, 즉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성령을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성령의 은사는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각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고전 12:7).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신자들은 그것을 소유물로 여기거나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되며, 오직 겸손하게 성령의 뜻을 따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활용케 할 뿐 아니라, 성도의 내적 성품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성령의 열매는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을 통하여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그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롬 8:29; 고후 3:18). 예수님께서는 과실을 맺게 할 목적으로 그의 제자들을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하셨다(요 15:16).
2) 성령 충만
성령의 은사(외적)와 성령의 열매(내적)가 계속적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것을 성령 충만이라 부른다. 성령 충만한 삶은 곧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이다(롬 6:11).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이다(갈 2:20). 나의 몸은 이제 그리스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쓰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나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은 주의 마음이 되고, 나의 의지는 주의 의지의 지배를 받고, 나의 전인격과 재능은 남김없이 주의 것이 되는 삶인 것이다.
이러한 성령 충만한 삶은 기쁨이 넘치는 삶(살전 1:6,7), 담대한 믿음이 넘치는 삶(히 11:1,2),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삶(롬 5:5), 생명력이 넘치는 삶(요 6:63), 병 고침의 능력이 넘치는 삶(막 16:18), 감사와 평화가 넘치는 삶(엡 5:20; 빌 4:7), 방언 기도가 넘치는 삶(행 2:4), 기적이 충만한 삶(막 16:17,18), 열매가 충만한 삶(갈 5:22,23), 전도하는 삶(행 1:8)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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