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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생명나무 목회’인가-교회에서 십일조의 선악과 따먹지 말라,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 모형이며 예표 /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13>-<14>

영국신사77 2020. 4. 15. 21:20

“신학교 간다고 집에서 쫓겨나… 노숙자와 다름없어”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의 꽃씨 목회 <13>

입력 : 2020-04-12 12:46/수정 : 2020-04-12 13:39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떠돌이 생활이 시작됐다. 신학교를 간다고 해서 집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무작정 다니던 고등학교가 있는 군산으로 올라왔다. 여기저기 배회하며 전도하고 다니며 노숙자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목사님의 허락을 받아 명석교회(현 군산 사랑의교회) 예배당에 숙소를 정했다. 피종진 목사님이 강사인 군산 개복교회 부흥회에 참석하고 그 교회 지하실에서 일주일을 지내기도 했다.

또 군산 중동성결교회 지하실에서 한 주간 잤다. 주로 낮에는 성경을 읽고 밤에는 기도를 했다. 물론 밥을 사 먹을 돈이 없으니 굶으면서 말이다. 생전 처음으로 일주일을 굶으니 걸어 다닐 힘도 없고 하늘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니 더 추웠다. 너무 추우면 침낭 속에 몸을 넣고 송장처럼 누워 기도했다. 차디찬 의자의 냉기가 허리에 닿아 얼마나 시렸는지 모른다. 예배당은 불기 하나 없어 가만히 누워 있어도 얼굴에는 찬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오들오들 떨다가 잠이 들기도 했고 “주여”를 외치며 새벽기도 시간까지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런 형편을 알고 명석교회 집사님들이 식사 제공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 집사님 댁에 가서 한두 끼씩 밥을 얻어먹는 것도 미안했다. 그래서 익산에 있는 친구 집에 가서 며칠을 보내기도 했으나 그것도 미안해 다시 교회로 왔다. 확실히 그때의 삶은 외로운 집시 생활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주 안에서 즐거웠다. 가슴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이 생활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돌이 집시 생활을 하는 중에도 목표는 분명했다. 그것은 때가 되면 광주로 가는 것이다.

서울에 많고 많은 신학교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광주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감동과 상황이 광주로 가게 한 것이다. 담임목사님은 지금도 생존해 계신데 당시 찾아가서 말씀을 드렸더니 감동대로 광주로 가라고 하셨다.

광주신학교에 갔을 때 입학시험을 봤다. 비록 지방신학교였지만 할 것은 다했다. 시험과목이 영어, 국어, 성경, 일반상식이었고 마지막 시간에 B4 사이즈의 시험지를 주면서 ‘소명의 동기’를 쓰라고 했다. 지금까지 사연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기도원에서의 하나님의 부르심, 아버지에게 매 맞는 것 등 다 쓸 수 있지만 그 순간 찬송가 구절이 떠올랐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이 찬송 가사를 세 번이나 연속 썼다.


눈물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하얀색도 아니고 노란색도 아닌 누리끼리한 시험지에 얼마나 눈물을 적셨는지 모른다. 그때 기억으로 입학생이 70명 정도였는데 1등을 해서 4년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께서 남원에서 군산까지 오셨다. 담임선생님도 만나보신 모양이었다. “소강석 학생은 교회에만 미쳐서 그렇지 나쁜 길로 가지도 않고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고 창의적인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친구들이 많이 따르는 성품을 갖고 있으니 목회의 길로 가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더 속상하고 억울해하시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이번에 대학을 안 갔으면 재수해서라도 일반대학을 가라. 그것도 아니면 공무원 시험이라도 쳐라. 공무원을 하면서 야간대를 다니든지 방통대를 다닐 수도 있지 않느냐. 이것이 애비의 마지막 소원이다.”
나는 그때 차디찬 운동장에서 많은 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 아버지”만 하다가 목이 메어 아버지께 큰절을 올렸다.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언젠가 아버지께서 이 불효자를 이해해 주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두 다리를 붙잡고 펑펑 울어댔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돌아서서 걸어가셨다. 아버지께 달려가 끌어안았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언젠가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눈물을 보이고 한숨만 쉬시며 그냥 걸어가셨다. 지금도 2월이 되면 그렇게 쓸쓸하게 걸어가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얼마 후 광주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거기서 배 고프고 고독하며 혹독한 시련의 광야 길을 걸어야 했다. 그렇지만 목회자가 가져야 할 기본 자질과 소양을 훈련받게 됐고 하루하루가 꿈 없이 잠들고 꿈 없이 깨는 날이 없을 정도로 깊고 푸른 꿈의 나날들을 보냈다.

광주신학교는 서울의 신학교에 비해 낙후한 시설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오늘의 나를 잉태하고 출산시키는 요람이 됐다. 그렇게 엄하셨던 아버지는 훗날 내가 목사가 된 후 나의 전도로 마침내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그리고 교회를 성실히 다니며 아들이 교회 목사가 됐다며 자랑하시는 날도 있었다.



▒ 왜 ‘생명나무 목회’인가
교회에서 십일조의 선악과 따먹지 말라

입력 : 2020-04-14 00:05/수정 : 2020-04-14 11:20



언젠가 ‘십일조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십일조와 선악과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분의 글을 보니까 구원사적 구속사 신학도 어느 정도 섭렵한 것 같고 신구약을 연결하는 신학적인 연결고리 지식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분은 십일조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었다.

잠언에 보면 지혜를 생명나무에 비유했다.(잠 3:18) 매 순간순간 선악의 지식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신앙생활이다. 그래서 잠언서는 지혜를 생명나무라고 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한다.(잠 9:10) 즉 생명나무를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지혜로 적용해 교훈한 것이다.

설교는 본문에 기반을 둬야 하는데 원근통시법적 구조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총체성을 드러내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악과의 교훈을 십일조, 주일성수, 주의 종과의 관계, 부부의 관계로 확장해 적용한 것이다.

훗날 생명나무 심포지엄을 했을 때 세계적인 구약학자인 벤게메렌 교수가 오셨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건 성경을 자기의 선택적 지식으로만 갖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잠언서에 생명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설교란 본문을 기반으로 해서 하나님 말씀의 총체성을 드러내면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선악과의 관계를 잘 연결한 설교였습니다.”

그렇다. 십일조, 주일성수뿐만 아니라 교회 생활과 부부생활에도 선악과적 제한 요소가 있다. 하나님이 하라는 만큼하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십일조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십일조를 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순종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선악의 지식이 들어와 자기가 판단의 주체가 되다 보면 십일조를 자기 멋대로 하게 된다. 십일조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느니, 또 하나님은 마음을 원하시지 물질을 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느니, 자기 멋대로 판단해 버린다. 그래서 십일조의 선악과를 따먹어버린다.

또 주일에 대한 부분도 처음에는 주일성수를 잘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낙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선악의 바람이 들어와서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된다.

“꼭 주일만 주일이냐, 모든 일주일이 주의 날인데. 그러니까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예배드리고 주일날 놀러 다닐 수 있는 거지. 또 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되느냐. 바닷가에서 골프장에서 예배드리고 즐기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다가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주일성수의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나무 중심의 신앙생활을 할 때는 십일조나 주일성수를 율법이나 형식으로 지키지 않는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며 생명이 풍성하면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2조, 십의 3조도 드릴 수 있고 더 헌신할 수 있다. 주일예배도 한 번 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온종일 말씀을 묵상하든지 교회에서 헌신하든지 더 적극적으로 주일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제단 뿔에 매는 훈련을 한다.

또 교회 생활하면서 담임목사와의 관계도 그냥 적당한 거리를 두는 관계가 아니라 더 가까이하고 양과 목자의 관계에서 더 공감하고 친숙한 관계를 형성한다. 부부관계도 선악과적인 금도의 경계선만 안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으로 더 사랑하고 위해주고 희생해주고 섬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교회에서 십일조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주일성수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주의 종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부부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모든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에서도 선악과가 아닌 생명나무를 선택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쳤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계속 훈련이 되니 교회가 어느새 생명나무가 우거지고 열매가 주렁주렁 맺게 된 것이다.


소강석 목사

“1등으로 합격해라, 그러면 믿음의 아들로 삼겠다”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14>

입력 : 2020-04-21 00:06/수정 : 2020-04-21 11:23
박 목사가 1981년 소 목사에게 ‘증 소강석 목사님 혜존’이라는 친필 사인을 해서 건넨 책의 일부. 당시 소 목사는 신학교에 재학 중인 전도사 신분이었지만 훗날 훌륭한 목회자가 될 것을 예견하고 존칭을 사용했다.

군산제일고를 졸업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 하심으로 광주신학교에 가기로 했다. 맨 먼저 청운의 꿈을 가지고 광주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섬기시고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시던 한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하나님 뜻이 아니었는지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광주신학교 교장이시던 박종삼 목사님을 찾아갔다. “나는 너를 잘 모르지만 네가 분명히 특별한 소명을 받은 것 같구나. 광주신학교를 1등으로 합격해라. 그러면 너를 믿음의 아들로 삼겠다. 지방신학교이긴 하지만 몇 명의 탁월한 경쟁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2등 3등 하기는 쉽지만 1등으로 입학하려면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당시 수험생 중에는 육군사관학교 중퇴자나 전남대 의대 중퇴자 등이 있었다. 그래서 신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1등으로 입학했다. 그때부터 박 목사님은 나를 친 아들처럼 아끼고 돌봐주셨다. 집에서 쫓겨나 신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밥 굶기를 밥 먹듯 했다. 120원짜리 식권 살 돈이 없어서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학교 강의실에 가기 위해 오르막길을 오를 때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광주신학교 시절 큰 도움을 받은 은사 고 박종삼 목사.

그때 박 목사님은 당시로는 큰돈이었던 5000원, 1만원, 심지어는 2만원을 주셨다. 그리고 “강석아, 굶으면 안 된다. 책을 못 사보는 한이 있더라도 굶지 말고 꼭 밥을 먹어라”고 하시며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다가 가끔 사택에서 쇠고깃국을 끓이는 날이면 불러 주셨다.

그런데 사모님께서 쇠고깃국을 뜨실 때 목사님과 아들 그릇에는 쇠고기 건더기를 듬뿍듬뿍 주시는데 내 그릇엔 무 건더기와 국물만 가득 담아 주셨다. 무안하고 창피했지만, 밥을 얻어먹는 주제에 뭐라 말할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국물만 떠먹었다.

그때 목사님은 국에 있는 쇠고기 건더기를 다 떠서 나에게 주셨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의 국에 있는 건더기까지 떠 주셨다. 연세 드신 어르신이시니 고춧가루 묻고 밥풀이 주렁주렁 달린 숟가락으로 말이다.

그러면 사모님께서 목사님께 눈을 흘기면서 다시 목사님과 아들의 국그릇에 고기를 떠 줬다. 그러면 목사님은 또 그 고기를 떠서 나에게 주셨다. 목사님의 그 사랑에 마음이 울컥해졌다. 눈물을 훌쩍거리며 눈물인지 국물인지 알 수 없는 쇠고깃국을 삼켰다. 그러자 목사님은 나의 등을 토닥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강석아, 울지 말고 많이 먹어라. 앞으로 큰일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

더 이상 울음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가서 엉엉 울고 말았다. 그때 뜨거운 쇠고기 국물을 목젖으로 넘기며 마음 깊이 다짐했다. ‘나도 나중에 꼭 춥고 배고픈 이들의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고 외로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되리라. 언제까지나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목회자가 되리라.’

훗날 목사님은 정치 인사들의 공격으로 신학교에서 밀려나야 할 상황이 되었다. 목사님은 갈등과 다툼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내려놓고 미국으로 향하셨다. 미국으로 가시면서 평생 잊지 못할 말씀을 남기셨다.

“첫째, 오직 지금처럼 하나님만 사랑하는 진실한 목사가 되어라. 둘째,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영혼을 사랑하는 목사가 되어라. 셋째, 남 죽이는 정치꾼이 되지 말고 언제나 사랑하고 섬기는 종이 되어라.”

그때 내 나이 스물하나였다. 목사님은 스물한 살 신학생에게 세 가지 당부 말씀을 하시고 자신의 저서 맨 앞에 이렇게 써 주셨다. “존경하는 소강석 목사님 혜존, 부디 큰 종이 되소서! 작은 종 박종삼 목사 올림.” 그러니 내가 어찌 평생 박 목사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을 수 있겠는가.

미국 가셔서도 “한국에 가난한 신학생이 있는데 이 사람을 후원하여 키우면 앞으로 한국교회를 위해 크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찾아와서 인사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모금 운동을 해서 돌봐주셨다. 당시 누구도 나를 돌봐주고 지켜준 사람이 없었는데 박 목사님은 미국에 가서도 도움을 주셨다.

목사가 되어 맨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목사님을 찾아뵈려고 수소문을 했다. 하지만 목사님은 이미 필라델피아 어느 묘지에 누워계셨다. 차가운 묘지 땅바닥에 엎드려서 울고 또 울었다. 점심 사 먹을 돈이 없어 배를 곯고 있던 가난한 신학생을 데려다가 따뜻한 쇠고깃국을 먹여 주시던 목사님. 그분이 내 가슴에 남기고 간 사랑과 섬김은 여전히 내 안에서 뜨거운 국밥 한 그릇으로 끓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값싼 동정이 아닌 눈물의 사랑을 가르쳐 주신 목사님의 손길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 후로도 미국 동부를 갈 때마다 목사님의 묘지를 찾아가 헌화하고 사모님을 찾아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서울에도 신학교가 많지만 광주신학교로 가게 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믿는다. 박 목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사랑과 섬김의 스피릿을 내 안에 넣으려는 뜻 말이다. 그분의 교훈을 따라 지금껏 사랑하며 섬기는 목회를 해 왔다. 그리고 아무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한국교회의 공적 사역을 펼치고 있다.

▒ 왜 ‘생명나무목회’ 인가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 모형이며 예표

생명나무는 오직 생명을 얻게 하는 나무다. 결코 선악의 지식을 얻게 하는 나무가 아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장 칼뱅은 생명나무에 성례전적 의미가 있다고 한 것이다. 생명나무의 성례전적 의미는 먹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아담을 생명나무 앞에 데려다 놓으시고 아담으로 하여금 생명나무를 양식으로 삼도록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은 생명나무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예표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제2의 생명나무로 오신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님을 생명의 빛(요 1:4)으로 표현했고, 생명의 떡(요 6:35)이라고 말씀하신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생명의 물(요 4:14, 7:37~38)이요 생명의 호흡(요 20:22)이라고 말씀하신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생명나무가 그들의 성례전적 양식이 된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에게 생명의 빛, 생명의 양식, 생명의 물, 생명의 호흡으로 오신 것이다. 그리고 은유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천국에서도 생명나무로 존재하신다.

생명나무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구원사적, 기독론적 관점이다. 구원사적, 기독론적 관점에서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서 먼저 언약으로 주어진 생명나무였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를 선택하지 않고 선악과나무를 선택하자 하나님은 언약 파괴에 따른 징벌을 내리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나무는 새로운 약속으로 주어진다. 그 새로운 약속은 생명나무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였다. 마침내 예수님은 제2의 생명나무, 즉 우리의 생명의 원리와 본질과 근원으로 오셨고, 저 영원한 천국에서도 예수님은 종말적 영생을 공급하는 생명나무로 존재하신다.

두 번째 관점은 구원도정적, 교회론적 관점이다. 이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계명을 지키기 위해 선택으로 주어진 나무였다.(창 2:16~17) 또한 구약백성들이 언약공동체 안에서 삶의 지혜와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 생명나무로 주어진 것이다.(잠 3:18, 11:30, 13:12, 15:4)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성도들의 삶 속에서 선택해야 할 생명나무로 주어졌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상,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는 저 영원한 천국에서도 종말론적으로 영원히 선택하고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 생명나무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옳고 그른 것은 잘 판단하고 구별하는데, 대부분 표면적인 것을 보고 그렇게 한다. 그러나 그 표면적인 것을 보고 자기 딴에는 옳은 말을 하고 옳은 것을 행한다 하지만, 그 안에 진정한 기쁨과 감격이 없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감동과 기쁨이 없다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정죄와 비판과 원망, 증오와 공격뿐이다. 그 이유는 거기에 생명의 본질이 아닌 것을 붙잡고 싸워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것일까. 첫째로 매 순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의를 갈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 없으면 살 수도 없고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은혜와 의는 없고 나의 의와 공명심만 있을 때 우리의 삶은 ‘걸레’가 되고 만다.

우리의 의와 공명심을 앞세울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외식하는 삶을 살 뿐이다. 진정한 생명과 경건의 능력이 없음에도 경건의 모양, 즉 거룩한 척하는 가면의 삶만 살 뿐이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의 의와 공명심, 교권 등을 가지고, 다투고 싸우다가 분열하고 만다. 그 소모전이 한국교회를 이렇게 약하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성도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의를 갈망해야 한다. 마치 저 목마른 사슴이 갈증 난 목을 축이기 위해 시냇물을 사모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이런 성도로 만드는 것이 생명나무 목회다. 성도들을 결코 선악의 노예가 되게 해서도 안 되고, 선악의 도성을 쌓도록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생명나무 목회를 한다. 목회자인 나부터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와 의를 갈망한다. 성도들도 항상 생명나무라는 영혼의 노스탤지어를 느끼며 산다. 그러니 교회 안에 분쟁과 갈등, 다툼이 있겠는가.


소강석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3888&code=23111211&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