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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24>/하나님은 부모 공경하는 자녀에게 복 받고 장수할 것 약속

영국신사77 2020. 4. 10. 00:39
2015년 1월 신년예배에서 순복음진주초대교회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성도들에게 세배를 하고 있다.
2015년 1월 신년예배에서 순복음진주초대교회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성도들에게 세배를 하고 있다.© Copyright@국민일보 

여호와의 주신 기업인 자녀를 최고로 키우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넷째 부모 공경하기를 가르쳐야 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이처럼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 이 땅에서 잘 되고, 복 받고, 장수할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부모 공경하기를 가르쳐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해야 한다.

평소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기도를 받으러 오면 나는 가장 먼저 이것부터 물어본다. “아이가 부모님 말씀에 순종을 잘합니까.” 아무리 기도를 해줘도 그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그 기도는 결코 응답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번은 여 집사님 한 분이 세 자녀를 데리고 축복기도를 받으러 왔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초등학교 5학년 맏이가 어린 두 남동생을 보살피는 가정이었다. 교회에 올 때마다 어찌나 살뜰하게 동생들을 챙기는지 내 눈에도 너무 기특하게 보여 이렇게 물었다. “얘들아, 너희는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하고 있니.”

첫째 아이가 답했다. “저는 동생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래로 두 남동생은 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누나 말을 잘 듣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곧 부모 공경임을 잘 아는 기특한 대답이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세 자녀에게 부모 공경은 말 잘 듣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들은 내가 하는 어떤 말에도 순종을 잘한다. 그래서 기특한 마음에 “너희는 어쩌면 그렇게 엄마 말을 잘 듣니” 하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니께서 저희 말을 잘 들어주시잖아요.” 그렇다. 자녀에게 순종을 요구하기 전에 부모 역시 자녀의 말을 잘 들어주는 부모가 돼야 한다.

이경은 목사가 2016년 1월 신년 첫 주일 어린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는 모습.이경은 목사가 2016년 1월 신년 첫 주일 어린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는 모습.© Copyright@국민일보 

다섯째 어른 공경하기를 가르쳐야 한다. 성경은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고 말씀한다.(레 19:32) 어른을 공경하는 방법에 있어 인사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인사는 대인관계의 첫걸음이며 성공의 지름길이다. 인사 하나만 잘해도 칭찬받고, 사랑받으며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자녀들은 물론 교회의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인사를 강조하고 교육했다.

어느 주일 교회 로비에서 마주친 아이가 내 앞을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아이를 불러 세웠다. “목사님한테 예쁘게 인사해야지.” “아까 했는데요.” “목사님이 못 봤구나. 그런데 목사님 만날 때마다 인사하면 안 되겠니.” 그 말에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인사하는 것 힘들지.” “네.” “인사하기 싫어도 인사하는 것은 좁은 길, 인사하기 싫다고 그냥 지나가는 것은 넓은 길이란다. 좁은 길 갈래요, 넓은 길 갈래요.” “좁은 길 갈래요.” “좀 힘들어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게 좁은 길이라면 어때요. 할 수 있겠지요.” 아이는 금세 표정이 밝아져 “네”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후로 몇 번이고 나를 볼 때마다 웃으며 달려와 인사했음은 물론이다.

여섯째 자녀에 대한 소망의 눈을 가져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실망보다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기도하며 응원해야 한다. 막내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일이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이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경비 아저씨가 될래요.” 잠시 실망이 앞섰지만 나는 이때 처음으로 아이에게 소망을 가졌다. ‘이 녀석이 벌써 현실을 보는 눈이 있구나.’ 어린 제 눈에는 재롱을 떨지 않으면 열쇠를 주지도 않고 귀여움에 면박하는 경비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힘 센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이경은 목사
 이경은 목사 © Copyright@국민일보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다시 꿈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는 또 대답이 달라졌다. “이제는 경비 아저씨 말고 선생님 할래요.” 선생님 한마디에 수십명 학생이 앉고 일어서는 모습이 경비 아저씨보다 훨씬 대단해 보였나 보다. 그런 아들의 꿈이 또 한 번 바뀐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어 학교를 방문했다. 교실 뒤편 게시판에 ‘나의 꿈(장래희망)’에 대한 아이들의 글이 걸려 있었다. ‘나의 꿈은 의사 목사입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의사가 되라 하시고, 아버지는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의 소원도 들어드리고, 아버지의 소원도 들어드리기 위해서 의사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 마음도 헤아리고, 아버지 마음도 헤아리며 배려하는 아이의 마음이 드러나는 글은 단번에 주목 받고 칭찬을 받았다.


만약 경비 아저씨가 되겠다고 했던 그때 아이의 말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면박을 줬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현실에 발을 붙이지 않고 허황된 꿈을 좇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처럼 부모는 기도하면서 자녀를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부모들이여,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며 어른을 공경하도록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자녀는 존귀하고 복된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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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역할은 바른 언행·착한 행실로 영광 돌리는 것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마 5~7)에서 팔복을 가르치신 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소금과 빛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빛이다, 소금이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권고가 아닌 의무, 존재임을 가르치신 것이다.

소금이란 무엇인가. 화목하게 하는 말, 고르게 하는 말을 뜻한다.(막 9:50, 골 4:6) 소금이 들어가 음식 맛을 고르게 하는 것처럼, 말로써 고르게 하고 화목하게 하라는 것이다. 빛은 무엇인가. 착한 행실을 말한다. 등불을 켜면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듯이 먼저 집안 사람에게부터 착한 행실을 보이라고 말씀한다.(마 5:15~16)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함으로 자녀 된 우리에게 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말과 행동, 즉 고르게 하고 화목하게 하는 말, 착한 행실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후 5:17~18) 말로써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행실로써 빛을 발할 때 그 직책을 감당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만약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시는가. 쓸데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말씀하신다.(마 5:13) 우리는 어떤 말과 어떤 행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가.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어린아이를 데리고 비집고 타야 할 만큼 복잡한 전철에 올랐다고 한다. 아이는 울고 빈자리도 없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아이에게 다가와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우는 아이를 달래줬다. 이를 본 어떤 사람은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줬다. 전철에서 내릴 때는 복잡한 전철에서 아이를 데리고 쉽게 내릴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우는 아이 달래주고 자리 양보해주는 것, 아이 데리고 내릴 때 힘들지 않도록 길을 터주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내가 코 푼 휴지는 주머니에 넣어 둘 수 있지만 남이 코 푼 휴지를 주워 내 주머니에 넣기는 쉽지 않다. 세상 사람들의 교육은 쓰레기를 줍자는 것이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쓰레기를 버리지 않음으로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쳤더니 한 자녀가 '쓰레기를 줍지 말고 버리지 말자'라는 주제로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작은 배려, 이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은, 사랑이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어떤 악을 말씀하고 있는가. 살인, 도적질, 간음, 거짓 증거, 이웃의 것을 탐하는 것, 이와 같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웃 사랑이며 이것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이다.(롬 13:8~10)

그렇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두 우리가 하는 일이지 않은가. 성경은 이렇게 하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행하라고 명하신 착한 행실이다.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 폐를 끼치지 않는 것, 즉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세상은 더욱 밝아질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때 하나님 나라는 더욱 왕성하게 일어날 것이다. 우리 모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창조의 목적을 이뤄드리는, 아름다운 믿음의 복 된 자들이 돼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