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1

제1, 2차 요한계시록 강해를 참석하고 나서 - 박진성목사

영국신사77 2019. 10. 5. 00:06


            제 1차 요한계시록 사경회를 참석하고 나서

                              인천 아멘교회 박진성 목사


    먼저 이 글을 쓰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세례요한이 요3:30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한 것처럼 

    저는 쇠하여야 하고 주님은 흥해야 하기에 

    저는 글 쓰는 재주도 없고 표현력도 부족한데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씁니다.


    이번 2012년 3월19일부터 22일까지 있었던 요한계시록강해를 참석하고나서 

    충격적인 사실중의 하나는 

    요한 계시록말씀도 역시 순종할 말씀이라는 것과 

    계시록에도 영적인 실제가 있는 말씀 앞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눈물 없이 강해한 죄를 회개 합니다.

    영적인 실제가 없이 지식만을 전달한 죄를 회개합니다.

    저희 교회에서 계시록을 강해하면서 

    한 번도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말은 그동안 영적인 실제가 없이 강해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희 교회에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른바 대하 설교라는 명제아래 강해를 하고 있으며 

    현재 로마서를 강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3번 강해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학교시절에 천년왕국제설에 관하여 논문을 쓴 적이 있고,  

    1992년에 강도사고시에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다루었으며 

    1992년 10월 28일 휴거 때문에 한국교회가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 제가 담임하고 있던 시골교회에서도 여 성도님 한분이 미혹이 된적이 있습니다. 

    그는 광주에 딸이 있어서 1992년 10월28일 휴거 된다고 

    딸이 다니는 교회로 갔다가 망신살만 뻗치고 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내가 교인을 잘 못가르쳐서 그랬거니 하는 책임감에 

    교회안에 종말론을 견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방면으로 책을 많이 보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예수전도협회를 만나고 나서 

    은혜를 받고 영적인 실제가 있는 말씀을 접하면서 

    지식만을 말하는 지적인 것들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요한계시록 책만 이 백여 번 정도 읽었고 

    국내주석과 강해집, 손기태목사, 이광복교수, 민병석목사강해, 

    CTS에 노우호목사의 마지막바벨론과 요한계시록강해 성경강좌 

    그리고 그와 관련된 MP3를 수없이 듣고 참고하여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계시록강해를 정리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강해를 했는데 

    눈물없이 강해하는, 실제가 없이 강해하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번에 기대를 가지고 등록을 하면서 

    지난번 집중코스 때 요한 계시록을1장부터 3장까지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4장부터 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1장부터 강해를 시작하길래 내심 저으기 실망을 하면서 

    “ 아, 이번에도 3장을 넘어가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4장을 넘어 5장까지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1장부터 3장까지의 말씀도 

    지난번 했던 것보다 훨씬 새로운 업그레이드된  말씀을 전하는데 

    영적인 실제가 있는 말씀 앞에 숨을 죽이고 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론적으로 배경과 숫자의 의미와 계시록의 7복 등이 전하여졌으며 

    계시록 1장에서 사도 요한이 계1:10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라는 말씀을 전하실 때 

    지금도 내 뒤에서 주님은 나팔같은 큰소리로 끊임없이 말씀하시는데 

    세상 소리 때문에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내 모습이 보여 졌습니다. 

    또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를 보고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는 말씀을 전하실 때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임에도 

    그동안 썩어질 세상 것 때문에 

    주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내 모습이 보여져서 

    회개하고 울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번 요한 계시록 사경회는 그야말로 성경한절 한절을 말씀으로만 풀어주시고 

    또한 순종할 말씀으로 받게 해주셨습니다. 

    동안의 요한계시록 주석과 강해가 말씀으로도 풀었지만 

    어떤 것들은 사람의 생각으로 억지로 풀은 것들도 더러는 있었음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교리나 신학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말씀으로만 풀어서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글로 다 표현할수 없는 영적인 감동과 

    주석에도 없는 새로운 말씀에 대한 충격은 말로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2장-3장까지 일곱 교회를 통해서 우리삶의 실생활에 정확히 연결해서 

    현재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볼수 있도록 은혜를 주심으로 

    순종하고 살아야 할 말씀으로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날 하루전에 3장을 마치고 마지막날에 4장을 하게 되었는데 

    드디어 하는 마음으로 기대가 되었습니다. 

    또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4장 1절을 어떻게 풀어주실까?


    왜냐하면, 세대주의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4장 1절을 교회의 휴거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손기태 목사의 책과 이광복 교수로부터 그렇게 배우지 않았지만,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4장 1절을 교회의 휴거로 배우고 또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어떻게 하시나 궁금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강의안을 나누어 주는데 

    받아 보니까 성경대로 요한이 올라간 사실을 말씀하면서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는 장면을 본 것을 기술하지 않았다면 

    4장 이후에 말씀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사는 것이 영적인 실제였습니다.

    그동안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는 내 모습이 보여지고 

    보좌 앞에 나아가서 그분의 얼굴을 보고 사는지의 여부를 

    회중들에게 물어보실 때 강한 찔림이 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실제를 말해주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4장을 통해서 날마다 보좌 앞에 나아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날마다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뵈옵고 살고 있습니까? 

    하고 질문할 때에 계시록의 말씀도 내가 실생활에서 살아야 할 말씀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장 3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를 말씀해주실 때 

    우리의 마음에 평온함이 있느냐? 를 말씀하시고 

    보좌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때에 마음에 평온함이 있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5장에 가서 사도요한이 어린양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어린양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말씀해주셨고,

    8절에서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할 때에 

    하나님 앞에 기도를 게을리 함으로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지연시킨 내 모습이 보여지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음 6장을 어떻게 풀어주실지 어디에서 영적인 실제가 있는 말씀을 

    전해주실지 궁금하고 영적인 실제를 말하지 못하던 저에게 

    계시록에 있는 말씀도 읽고, 듣고, 지키어 순종할 

    살아야 할 말씀으로 받게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갈수록 그 풍성함을 더해가는 요한계시록강해가 진지해지고 

    4월 23일부터 있는 다음 2차 계시록 사경회가 기대가 되며 더욱 더 기다려 집니다. 


    제2차 요한계시록 강해를 참석하고 나서 - 박진성목사

    2012.04.28 (20:52:12)
     

    제2차 요한계시록 강해를 참석하고 나서


    인천아멘교회 박진성 목사


    먼저 이글을 쓰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이번 2012년 4월23일부터 26일까지 있었던 요한계시록 2차사경회는 

    한마디로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이어서 감히 말을 못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강해 1차 세미나 때에는 요한계시록1장부터 5장까지 했고, 

    이번 2차 사경회에는 6장부터 14장까지 했습니다.


    저는 지난번 글을 쓴 대로 요한계시록 말씀도 

    역시 순종 할 말씀이라는 것을 쓴바 있습니다. 

    이번에 6장부터 14장까지 말씀도 역시 순종할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고, 

    순종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개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번 계시록 사경회를 통해서 

    6장부터 11장까지는 세상나라의 역사를 말하고 

    12장부터 14장까지는 교회의 역사를 말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특히 12장부터 14장까지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가 정확히 구분이 되어지는 현실 앞에 

    영적인 눈이 열리고 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울면서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천국에서 만나보자”찬송을 하고 

    축도시간에 산성교회 김영성 목사님이 울면서 축도할 때 

    동일한 감동으로 함께 울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현재 한국교회 대부분의 학자들과 주석 책들을 보아도 

    요한계시록 6장부터는 앞으로 적그리스도의 짐승 정부가 들어서고 

    짐승의 통치가 시작되는 미래적인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서의 칠십이레를 공백기적인 해석으로 보고 

    단9:27말씀에“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그가”를 적그리스도로 보고 있고 

    한이레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는 것을 

    한 이레를 7일로보고 1일을 1년으로 환산하여 7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제인지 모르나 장차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조약을 맺는다고 보고 있으며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 한다는 말씀으로 

    전 3년 반 기간 동안에 그 협정 조약을 깬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70이레를 가지고 요한 계시록에 적용하여 풀려고 하니 

    이러한 실수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짐승정부(세계 단일정부)출범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베리칩의 사용이라든가  666짐승의 표도 

    역시 여기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봅니다. 


    요한계시록 6장을 2012년 현재까지도 장차 될 일로만 보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아예 주석에 써 놓았으니 계속해서 그렇게 말할 것이고, 

    아마 주님이 오셔도 장차 될 일로만 알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오실 날이 임박한 지금에도 

    계시록 6장 이후를 장차 될 일로만 알다가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정결한 신부로 단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 계시록 2차 사경회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 현재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지난번 1차 사경회를 마치고 장로님에게 

    “장로님, 요한계시록의 6장에 흰말을 어떻게 보십니까? 

    흰말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참으로 요한 계시록 6장에 나오는 흰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푸느냐에 따라서 계시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호크마 주석에는 “장차 나타나게 될 어떤 정복자”이다.

    그랜드 주석에는 “이땅의 평화를 깨뜨린 한 특이한 정복자로 추측한다.”

    박윤선 목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운동”이다.

    이병규 목사는 “복음운동이요 예수님”이다.

    조용기 목사는 “적그리스도”이다.

    민병석 목사는 “두 증인의 활동상을 보여 주는 계시”이다.

    손기태 목사는 “적그리스도”이다.

    핸드릭슨 주석은 “그리스도”이다.

    G. E레드는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이다.


    이광복 목사는 “적그리스도”로 보면서 

    대체적으로 무천년 학자들은 복음운동과 그리스도로 보고 

    전천년 학자들은 적그리스도와 환난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라고 밝혔습니다. 


    이와같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사람의 견해는 다 틀리고 

    자기가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억지도 부립니다.


    이와같이 사람마다 주석마다 다르게 말하는것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참으로 헷갈리게 하고 교회를 혼란가운데 빠뜨립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영적 감동으로 말씀을 전하시는데, 

    한마디로 지금까지 제가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하고 들어보지 못한 

    처음 들어보는 말씀이요, 또한 역사 속에 실재한 사건이요, 

    영적인 실제가 있는 말씀 앞에 압도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집회중에 내내 나는 “지금까지 앞에 말한 사람들의 견해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 복이 있다”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이런 모든 견해를 일축해버릴 수 있는 

    그야말로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순종한 말씀과 영적실제가 있는 말씀으로 

    심플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깨끗하게 해석하고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리에 입각하여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입증하고 말씀하시는 그 실제 앞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흰말은 예수님도 아니고  적그리스도의 시대를 말하는 것도 아닌 

    세상의 패권을 말하는데, 

    모든 정권은 그 생리자체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으로 쓰임을 받는데 

    그렇게 볼 때 이 흰말을 탄자는 “로마정권”이다 라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쇠망사를 쓴 역사학자 기번(Ed Gibbon)은 

    로마의 다섯 황제(Nerva, Trajan, Hadrian, Antoninus Pius, Marcus Aurelius, AD96∼AD180.)를 지나는 황금시대로써  

    “인류의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행복하고 번영하였던 시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요한 사도가 이 계시록을 받고 쓰여진 때가 AD 95-96 년경으로써 

    네로 황제 다음에 있었던 2차 박해를 감행한 도미티안 황제 때에 

    있었던 것을 상기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계1:19)이라고 볼 때, 

    AD 96년 이후에 일어날 일은 요한 사도가 볼 때는 

    장차 될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이 글을 읽으면 이해가 되고 믿음이 생기리라 봅니다.


    예를 들면, 계 9:18절에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는 이 말씀은 

    동로마제국이 630년부터 1453년 까지 버티다가 터어키군에 의해서 멸망을 당할 때, 

    그때 터어키 군이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화약을 이용한 대포를 사용해서 

    콘스탄티노플의 견고한 성곽을 무너뜨린 것이 터어키 군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때 대포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기나긴 전쟁으로 인해 

    하나님 말씀과 같이 

    그 당시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AD 2012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볼 때는 과거사이지만, 

    그때 당시(AD 96년)에는 장차 될 일 즉 미래의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자세한 것을 이 지면을 통해서 다 말할 수 없고 

    다 말을 해도 감당할수 없는 벅찬 내용들입니다. 


    저는 이번에 사경회를 통해서 제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계시록에는  일곱인, 일곱나팔, 일곱대접이 나오는데 

    계6장에서는 일곱인을 떼는 일이 시작됩니다.


    첫째 인부터 넷째인까지는 

    흰말은 로마의 정권, 붉은 말은 전쟁, 검은말은 기근, 청황색 말은 죽음을 말합니다.


    그 다음 다섯째인을 뗄 때에는 네 생물과 상관없이 봉인을 떼시는데

    계 6:9-11에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전하실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사람도 예외 없이 

    순교자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 말씀이 저를 찌르고 들어 왔습니다. 

    성도는 순교자고 순교자는 성도이지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눅 14:26-33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는 말씀과 함께 

    주님을 따르는 자가 자기목숨까지 미워하며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고 아파서 애통함으로 울부짖었습니다.


    총칼에 맞아 죽는 것만이 순교자가 아니라 

    바울과 같이 날마다 죽는 순종의 삶을 통해서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주를 위해 죽는 것도 자연스러운 순교자의 신앙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주님 앞에 전심으로 헌신하지 못하고 

    갈라진 마음으로 살았던 제가 부끄러웠고 

    이 말씀처럼 순교자적인 신앙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울러 특별한 것은 요 15장에 있는 말씀을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이 말씀은 주님께서 삼년반동안 제자를 양육하시고 

    당신이 가르치신 제자들에게 제자훈련의 졸업증서와 같고 

    제자의 인증서와 같은 말씀이라면서 

    한구절씩 한구절씩 장로님의 실제로 살아왔던 간증이 있는 말씀을 전하실 때 

    눈물로 회개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계7장3절에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말씀을 전하실 때 

    복음 전도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표를 받게 하는 일이라는 것과 

    이 일은 오순절 이후로 지속 되어온 역사요, 

    그때 당시에도 진행 되어온 상황이요, 

    그 후로도 진행이 되고, 어린양의 진노의 날이 임하기까지 

    역사 내내 계속되는 것이라는 영적인 실제의 말씀을 전하실 때 

    다시 한  번 영적인 감동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복음 전도가 이렇게 소중한 하나님의 사역이요, 

    하나님의 인을 치는 일인데 

    그동안 전도를 나가다 말다하고 등한히 했던 죄를 

    회개케 하시는 은혜를 주님이 주셨습니다. 


    계9장에서는 계9:3-5말씀에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이 황충(메뚜깃과에 속한 곤충의 한 종, 몸길이는 5∼6.5센티미터 정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슬람의 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상을 훼파하자”는 슬로건을 걸고 모슬렘들이 

    마리아상을 비롯한 제자들과 

    소위 그들이 성자라고하는 이들의 우상을 부수자는 운동이 

    모슬렘운동의 중요한 부분이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호메드가 명하기를 

    “아라비아의 사막지대에서 풀이나 푸른 것이나 나무는 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풀이나 푸른 것이나 나무를 생명만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이 말씀에 있는대로 풀이나 푸른 것이나 나무는 건드리지 않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이 황충이 머무는 기간이 5월에서 9월까지로 다섯 달 동안 머문다는 이 말씀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사실 앞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날 수로는 다섯달을 150일로 볼 때 

    겔 4:6말씀에 의하여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해서 볼 때

     AD 630년∼786년 까지 약 150년 동안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슬렘은 침략전쟁을 중단하는 선포를 합니다.


    그러나 이 모슬렘의 공격에도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은 

    이 고난을 이겼지만 인 맞지 못한 자들은 해를 받았습니다.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하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는 말씀처럼 

    모슬렘이 코란이냐? 칼이냐? 교회를 죽음의 위협가운데 

    개종을 강요하고 칼로써 괴롭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일로 교회안에 있었던 가짜들이 대대적으로 배교하는 일들로 나타난 것은 

    무섭도록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소름이 끼치고 몸이 떨리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제2차 사경회는 일차와 같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떤 주석에도 속 시원하게 해석해 주지 못하는 말씀을 

    역사적인 사실로써 실제가 있는 말씀을 전할 때 큰 충격이 임했습니다.


    10장에서는 계10:9-10에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는 말씀을 전하실 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입에는 달지만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살지 않는 교인들과 교회의 현실 때문에 

     속이 쓰리고 아프다.”는 장로님의 경험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은 

    몸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아픔이 항상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복음서에서 주님은 다 그와같은 입에 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픈 마음으로 전하셨습니다. 

    사무엘도 예레미야도 이사야도 선지자들마다 

    다 그아픔을 경험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으며 

    바울은 그와같은 아픔으로 서신서마다 쓴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의 제자들도 그렇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계11:1-2에“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이 부분을 말씀하실 때  참 교회와 거짓교회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참 교회 입니까?

    1절에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 참 교회입니다.

    이들은 내면적인 진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True inner church라고도 합니다.

    복음 전도하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도구로 쓰임받는 교회입니다.

    두 증인이 있는 교회입니다.


    어느것이 거짓교회 입니까?

    2절에 “성전 바깥마당에 있는 자들”은 거짓교회입니다.

    External Visible Professing church라고도 합니다.


    이들은 내면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보이는 외적인 요인만을 중시하는 교회입니다.

    건물과 물질가치와 교인 수를 자랑하는 교회입니다.

    교권과 세상을 따라가는 교회입니다.


    신앙고백한대로 살지 않고. 

    진리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배교하는 교회입니다.


    계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11: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두증인은 누구인가? 

    참된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해주셨습니다.


    두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영이요, 말씀이다.(슥4:1-14) 

    두 촛대는 교회(계1:20)

    그들의 간증과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고 증거하는 교회가 두 증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두 증인을 

    “모세와 엘리야의 심령을 가진 자들”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을 때 

    두 증인이 없는 한국교회의 영적인 현실 앞에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은혜를 주님이 주셨습니다. 


    12장부터 14장까지는 

    교회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2장에서 여자가 교회요,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골방이라는 사실과, 

    광야 자기 곳이 골방에 들어가서 힘을 얻는 곳이라는 사실, 

    13장에 짐승이 바로 악의 세력을 등에 업은 교권이요, 

    천주교가 교권으로 얼마나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죽였는가? 

    또 다른 짐승은 개혁교회 안에 들어온 교권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 번 들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업데이트된 실제로 보고 

    장로님이 교회안팍에서 교권을 경험한 영적인 실제를 전하는 말씀을 통해서 

    큰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번 글에 말씀을 드렸으므로 

    이곳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전해지는 현장에 있지 않고서는 

    받은바 은혜와 감동을 

    글로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번 계시록 사경회를 들으며 

    아직도 제가 부족하여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은 못되나, 

    요한 계시록의 말씀도 

    역시 순종할 말씀으로 받게 되었고, 

    이 말씀이 한국교회에 알려져서 

    하루속히 안일함과 잠에서 깨어나 

    임박한 주님께서 오시는 날을 

    기다릴수 있는 이 나라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렐루야! 


    출처 : http://eafj.org/board/5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