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장 강해 종말 교회에 대한 경종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
서론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요한 계시록을 인봉된 책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알고 싶지만 바르게 배 울 길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예언이 아닌 다른 계시로 잘못 가르치 고 잘못 배우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은 하나님 앞에 가서 응분의 보응을 받겠지만 그 보다도 곧 닥 쳐 올 종말에 가서 영적으로 잘못 인도를 받을 때, 무서운 환난의 함정 속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은 지금 바로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인 것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는 사도 요한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산재에 있었든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합니다. 이 일 곱 교회가 제2장, 제3장에 나뉘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그 내용 중 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 니다. 그래도 각기 그 교회에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혹은 칭찬, 혹은 책망을 들으면서 회개하고 이기는 자가 되도록 권면 받고 있습니다. 이 일곱 교회의 형편은 마지막 주 재림의 시기에 하나님의 교회에 침투할 사단의 역 사와 세속적인 신앙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밝혀 주시는 경종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이기는 자들이 되 어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 세마포로 단장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장, 3장을 배우는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1.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2장의 첫머리에 나오는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리고 서머나, 버거모, 두아디라 교회가 등장합니다. 지금은 모든 교회가 아주 은혜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나 진리의 복음이 외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깊숙이 종말에 들어서면 이 땅위의 교회가 두 가지 모양으로 서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12장 1절에 나오는 "해 입은 여자"의 교회로 등장하는 촛대 교회입니다. 촛대 교회란 교회를 밝히시는 성령이 임재 하시는 교회란 뜻입니다. 다른 또 하나의 교회는 17장에 머리를 쳐들고 있는 음녀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짐승과 하나가 되어 이 세상을 적 그리스도의 세상으로 만드는 종교적 정치적 권세를 쥔 교회입니다. 이들은 적 그리스도를 살아 있는 인류의 메시야로 전파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해 주고 모든 인류들에게 경배하도록 그 손에 있는 금잔의 음행의 포도주로 미혹할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과연 어떤 교회에 속해 있을 것입니까?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교회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해 입은 여자"의 교회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이 세마포로 신앙적인 단장을 하실 때 우리들의 교회는 종말에 성령이 임재 하시고 역사 하시는 촛대 교회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1) 에베소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대단한 칭찬을 들었습니다.
① 그들은 수고와 인내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주님은 이 사실에 대하여 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 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수고를 하신다면 그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님이 어찌 그 사실을 모를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주 의 일을 위하여 모든 어려움과 시험과 고난을 인내한다면 그 일을 어찌 우리 주님이 모를 것입니까?
② 그리고 그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않은 일에 대하여 칭찬을 들었습니다. 악한 자란 범죄자를 말합니다. 회개가 없는 범죄자는 악한 자들입니다. 악한 자란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무리들입니다. 이들이 바른 믿음을 가지고 돌이키지 아니하면 우리는 그들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③ 에베소 교회는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견뎠다고 하신 칭 찬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은 주님의 이름을 위해 시련도 견디고 핍박도 견디고 환난도 견딘 것을 말합니다. 게으르지 아니했다는 말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열심을 품어 주님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2)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이 같은 칭찬보다 몇 갑절 더 아픈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책망이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하신 일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 처음 사랑을 버린 이유 하나만으로 주님으로부터 "만일 회개치 아니 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시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일로 도대체 어떤 결과를 초래했기에 이토록 무서운 꾸지람을 듣게 된 것입니까? 우리는 5절 초두에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처음 행위란 처음 사랑을 가 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처음 행위란 주님이 그들에게 칭찬해 주신 그들의 신앙적인 열매를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잊어 버리자 그들이 지난날에 맺었던 열매마저 상실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사랑에 서 나옵니다. 사랑을 상실한 에베소 교회는 사랑에서 생산했던 지난날의 그 아름다운 모든 열매가 일시에 사라져 버 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회개하고 그것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에베소 교회가 버렸다고 하는 처음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사랑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무너져 버리면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립니다. 가정의 위기나 신앙의 위기는 모두 사랑을 버리는데서 나옵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가 버렸다는 처음 사랑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무슨 특별한 사랑을 지칭한 말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 그것입니다. 처음 사랑 역시 처음에 그들이 주님께 가졌든 사랑을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그들이 많은 열매를 가지고 있었든 사랑은 주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만약 주님께 드릴 사랑을 버려 보세요. 그의 생활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얻기는 고사하고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도 상실 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종말에 살아가고 있는 교회의 위기는 에베소 교회처럼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버린다는데 있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주님의 탄식이 이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 고 그 사랑을 회복하므로 처음 사랑을 버리므로 함께 버려졌던 지난날의 아름다운 신앙적인 열매를 다시 맺어야 합니 다. 이처럼 주님과 나와의 사랑이 모든 신앙생활의 초석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4)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으로 이들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셨습니 다. 이것은 우리의 온전한 구원의 약속입니다. 버려 버린 처음 사랑을 찾는 길은 어디서 떨어졌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 아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해야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처음 사랑을 되찾아 열매 맺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서머나 교회에 대하여
에베소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과 권고를 마치신 주님은 이제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보이셨습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이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셨는가? 그것은 서머나 교회는 환난 중에 충성하므로 이기는 교회가 되기 때문에 심판을 이기고 부활을 보장받는 영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1) 이 서머나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일곱 교회 중 이처럼 칭찬만 받은 교회는 서머나 교회 와 빌라델비아 교회뿐입니다. 이두 교회는 이 세상에 임할 무서운 환난의 날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를 받게 될 것 임을 약속 받았습니다.
(2) 그런데 이 서머나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는 했지만 좀 이상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 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 중에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들의 생활은 어려웠고 그들은 궁핍했습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가 안고 있는 환난과 궁핍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부요를 두 가지 면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에 대하여 부요한 생활을 하는 그리 스도인들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에서는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른 또 하나의 부요는 하나님께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부요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 이 세상의 재물을 하늘나라에 쌓는 것으로도 부요해 질 수 있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취해야 할 부요는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일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주님께 가 지고 있었던 부요는 육적인 부요가 아니라 영적인 부요였습니다. 그들이 비록 육신적으로는 어려운 환난을 당하고 있 었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든 환난과 궁핍이 바로 이 같은 부요였습니 다.
(3)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장차 10일간의 환난을 당할 것 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10일간의 환난은 장차 서머나 교회가 당할 환난으로 7년 환난 중에 받을 성도들의 고난 을 상징합니다. 이 고난이 요한계시록 9장에 첫째 화로 나와 있는데 이 화로 그리스도인들은 전3년 반 마지막 시기에 가서 다섯 달간의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 환난을 '5개월 황충이 환난'이라고 부릅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이 환난의 고비를 넘겨야 하는데 이때 모든 성도들 은 죽도록 충성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환난을 받아야 할 이유는 이 환난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마지막 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환난이기 때문입니다.
(4)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으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사망이란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최종적으로 악한 자들을 보내는 곳인 지옥을 말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면 이 같은 사망에서 구원받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버가모 교회에 대하여
서머나 교회 다음으로 등장하는 교회가 바로 버가모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따른 교회로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에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으로 나오십니다. 주님의 이 모습은 심판자로 자기를 보이신 것으로 주님이 이 같은 모습으로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신 이유는 이 교회에 하나님의 종들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이세벨이란 자칭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과 싸우시고 이들을 심판하시려면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셔야 했습니다.
(1) 이들이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일은 놀라운 일들입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버 가모 교회 교인들은 그들 가운데 있는 형제 안디바가 처형을 당하는 위협 속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자신들 의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안디바와 똑같은 손교적인 믿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 그러나 이들의 이 같은 믿음이 병들어 버린 것입니다. 어느덧 그들 중에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생겨났습 니다. 발람의 교훈이란 발람처럼 탐심 때문에 성령으로 신앙생활을 못하고 세속적인 생활로 말씀의 순종을 거역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탐심을 가지고 살아가면 지난날 제아무리 아름다 운 신앙, 순교적인 신앙을 가졌었다고 해도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이 발람의 교훈은 니골라 당의 교훈과 일맥상통하는 교훈입니다. 그것은 니골라 당이란 이단적인 교훈을 주장하고 있 었는데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그 이후엔 무슨 죄를 범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결국 모든 그 리스도인들을 은혜의 자리에서 떨어뜨려 하나님의 대적자로 만들려는 사단의 궤계이기 때문에 성도가 이 신앙에 물 들면 세속적인 신앙인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3) 만약 그들이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속히 회개하여 바른 신앙으로 돌이키든가 아니면 예수님의 입의 검의 심판을 받든 가 어느 것이든 그들 자신에 의하여 선택 해야 할 것입니다.
(4) 주님은 이기는 자들에 대한 축복으로 감추었든 만나와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감추 었든 만나는 하늘의 신령한 떡으로 바로 영생의 떡을 말하며 흰 돌 역시 재림하시는 주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4. 두아디라 교회에 대하여
주님은 버가모 교회에 이어 두어디라 교회에 나타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라고 일컫는 이세벨로 인하여 책망을 들은 교회입니다. 주님은 이 교회에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보이셨습니다. 눈이 불꽃같다고 하신 것은 사람의 심장을 꿰뚫어 보시는 눈을 가지셨기 때문에 누구든 그 앞에 숨길 것이 없음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23절에서 주님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발이 주석 같다고 하신 것은 그의 심판 권세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비밀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사단의 깊은 비밀이 있는데 이 비밀이 주님의 불꽃같은 눈에 여지없이 들어 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이 같은 교회를 심판하시기 위해 빛난 주석 같은 발을 가지시고 등장하셨습니다.
(1) 두아디라 교회는 놀라운 주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 보다 많도다" 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에베소 교회가 상실한 사랑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만한 칭찬을 받은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신앙의 결실이 얼마나 좋았는지는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 보다 좋았다"고 하시는 칭찬에서 바라 볼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이 같은 두아디라 교회에 준엄한 주님의 책망이 내려졌습니다. 그 책망이란 바로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용 납해 주었다는 한가지 사실뿐입니다. 여기서 자칭 선지자란 말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아니한 거짓 선지자를 말합니 다. 두아디라는 분명히 사랑은 있었지만 교리적으로 잘못된 음녀까지 너그럽게 받아 드렸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진리의 말씀과 날카로운 영적 통찰력으로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의 거짓된 것을 들어 냈으나 두아디라 교회는 그 만 그것을 용납해 주므로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세벨이란 거짓 선지자는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이세벨이란 이름은 약 2,800년 전 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아내의 이름입니다. 이 여인은 이방 땅 두로 왕 에드바알의 딸인데 아합 왕이 이 여인을 자기 왕비로 맞이한 것 입니다. 이 여인이 아합 왕의 아내로 시집올 때 자기 친정에서 바알 선지 450명과 아세라 선지 400명을 거느리고 왔 습니다. 이세벨은 이 이방 선지자들로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세우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세벨이 말세에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여인은 하나님의 교회로 영적으로 타락하게 만들고 참 선지자인 하나 님의 종들을 핍박하고 끝내는 이방 신인 적 그리스도를 섬기게 하는 음녀 교회의 핵심 세력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음 녀 교회는 종말 교회에 나타나 적 그리스도를 따르게 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두아디라 교회처럼 그 행위가 완 전하고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나아도 이 이세벨을 용납한다면 촛대 교회의 자격이 박탈된다는 사실을 경종하신 것입니다.
(3) 주님은 이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회개치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들이 회개치 아니하면 무서 운 심판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심판이란 이세벨이라고 하는 이 음녀를 죽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음 녀와 간음한 자는 큰 환난 속에 던져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간음한 자란 그 교훈을 따른 자들을 말합니다. 큰 환 난이란 후3년 반의 무서운 대 환난 기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상에 물든 그의 자녀들에 대해서 죽일 것이라고 하 셨습니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에서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이기는 자는 철장 권세를 가지고 만 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 우리는 오늘 종말에 있을 일곱 교회 중 네 교회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리므로 책망을 들었으며 서머나 교회는 그들의 영적인 부요와 환난을 이기는 믿음을 칭찬 받았습니다. 그리고 버가모 교회는 처음 그 좋았든 순교적인 신앙을 버리고 발람의 교훈으로 살아가는 세속적 생활에 대하여 책망 받았습 니다. 그리고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해 주는 잘못된 사랑을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 종말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교회가 되려면 서머나 교회처럼 하나님께 부요한 교회가 되어야 합 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교회에 침투하는 음녀 이세벨을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 입니다. 우리 교회는 처음 사랑을 찾은 에베소 교회가 되고 환난을 이기는 서머나 교회가 되어 종말에 이기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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