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 덜 되는 사슬 형태 탄수화물
마른미역·김·콩·채소 등에도 듬뿍
섬유소 많이 먹으면 30% 더 장수
나이들면 면역 자동조절 기능 저하
흥분 상태인 면역이 만성염증 돼
심혈관 질환·치매·당뇨 등 유발
최근 연구에 의하면 섬유소를 많이 먹는 사람이 15~30% 더 오래 산다. 많이 먹을수록 체중·콜레스테롤이 떨어진다. 첨단과학이 그 이유를 찾아냈다.
2019년 뉴질랜드 연구진은 40년간 4635명이 무얼 먹었고 그래서 몇 살까지 살았는지 임상결과를 추적했다. 먹고 오래 살았다면 그게 최고 음식이다. 많이 먹을수록 수명이 늘어난 영양소가 ‘딱’ 하나 있었다.
섬유소다.
히포크라테스 “모든 질병은 장에서 출발”
섬유소는 야채·과일·통곡물(겉껍질만 벗긴 곡물)에 많다. 야채즙을 짜면 수용성 섬유소는 물에 녹는다. 불용성은 찌꺼기로 남는다. 섬유소는 사슬의 성분·길이·구조가 다양하다. 사람 세포는 녹말 같은 수용성은 분해하지만 불용성, 예를 들면 나무성분인 셀룰로오스는 소화하지 못한다. 그 대신 장내미생물이 일부 분해한다.
왜 섬유소가 장수물질일까. 장운동 촉진, 쾌변 유도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섬유소에서 특별한 장수물질이 나오는가? 혹시 섬유소 기초성분인 단순당(포도당, 과당 등)이 무슨 영향을 줄까. 하지만 청량음료 속 단 고과당 시럽(단순당)은 장수는 커녕 대장암을 유발한다(2019년 저명학술지 ‘사이언스’). 왜 같은 당 성분인데 섬유소처럼 길면 장수를, 고과당 시럽처럼 짧으면 암을 일으키나. 기원전 400년대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힌트를 준다. “모든 질병은 장(腸)에서 출발한다.” 왜 장이 그리 중요한 곳일까.
2019년 독일 막스델부룩 연구센터는 장내미생물이 섬유소를 분해해서 고혈압·심장병을 막는다고 심혈관전문지(서큐레이션)에 보고했다. 섬유소를 먹인 쥐의 수축·이완기 혈압, 심장 섬유화, 좌심실비대증이 줄었다. 심혈관 마스터유전자(Egr1)가 제대로 작동했다.
2018년 사이언스 논문에 따르면 고섬유식을 먹은 2형 당뇨환자가 한 달 만에 혈당이 30% 떨어졌다. 체중·지방이 줄었다. 두뇌에서는 기억상실이 줄었다. 신호물질(뷰티릭산)이 두뇌 면역세포 활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섬유소분해산물인 신호물질(SCFA)이 심혈관질환, 2형 당뇨, 두뇌기억상실을 모두, 동시에, 방지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병은 장에서 출발한다.” 장에서 무엇이 잘못되면 병이 생기는 걸까. 정답은 면역이다. 죽상경화증, 두뇌치매, 2형 당뇨 공통원인은 만성염증이다. 만성염증은 면역이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로 자기 몸에 총질해서 주위 조직을 상하게 한다.
섬유소-신호물질이 면역에 무슨 요술을 부린 걸까.독일 막스델부룩 연구진은 섬유소-신호물질이 흥분된 면역을 진정시킴을 확인했다. 즉 신호물질이 면역조절세포(Treg)를 통해 면역‘펀치’ 세기를 조절했다. 펀치 세기가 잘못되면 평생 고생이다.
청량음료 속 과당시럽은 대장암 유발
유아시절 면역 훈련사는 장내미생물이다. 대장에는 인체 면역세포 70%가 몰려 있다. ‘툭탁툭탁’ 장내미생물이 면역에 잽을 날린다. 한두 번 맞아 본 면역세포는 깨닫는다. ‘너는 나와 같이 지낼 장내미생물이지, 너는 봐줄게.’ 이게 면역관용이다. 이런 훈련이 안된 면역은 조그만 자극이나 사소한 외부침입자에도 놀라서 흥분하고 자기 몸에 총질한다. 이게 아토피, 천식, 류마티스 관절염이다. 제대로 훈련된 면역이라도 나이 들면 자동조절 기능이 떨어진다.
2020년부터 미국 코네티컷 주 모든 레스토랑 유아메뉴에 청량음료가 사라진다. 청량음료가 비만·당뇨 주범이기 때문이다. 비만은 약과다.
청량음료 집던 손이 멈칫한다. 긴 사슬인 섬유소는 장수를, 단순당인 과당시럽은 대장암을 만든다. 속담이 진리다. ‘You are what you eat.’ 즉 먹는 음식이 당신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음식이 몸속 무엇을 변화시킬까. 바로 장내미생물이다. 장내미생물 422종, 489만3893종류의 유전자를 조사해 보니 섬유소를 먹으면 염증저하 신호물질(SCFA) 생산균이 12% 증가했다(2018 사이언스).
섬유소 유래 신호물질이 약산성환경을 만들어 유해균성장도 막는다. 더 놀라운 건 대장보호막을 두껍게 만들었다. 섬유소가 적어지면 유해균이 장 보호막을 먹어 치운다. 장에 구멍이 난다. 유해균이 혈관으로 바로 침투한다. 급성패혈증이다.
장 길이만 7m? 거친 음식에 맞게 진화
섬유소가 적으면 왜 인류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 하버드대 영장류 동물학자 리처드 랭검은 “인간이 발견한 불로 스스로 건강을 해친다”고 말한다. 초기 인류는 불 없이 날 음식을 먹었다. 생고기·나무뿌리·통과일은 오래 걸려서 소화된다. 몸이 거친 음식에 맞게 프로그래밍이 되었다. 장이 7m로 긴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류의 불 발견, 농업 시작은 음식을 많이 그리고 빨리 분해·섭취하도록 했다. 게다가 산업발달로 식품가공이 시작되었다. 과일에서 주스만을 우려냈다. 고과당 시럽도 만들었다. 고농축 에너지가 더 빨리 장에 공급되었다. 비만과 당뇨의 원인이다.
반면 섬유소 음식은 분해에 시간이 걸린다. 포도당이 급속히 치솟지 않는다. 위를 가득 채워서 포만감을 주고 식욕을 낮춘다.
히포크라테스는 정확하게 장의 중요성을 예측했다. 하지만 우리 조상이 한 수 앞섰다. 임금을 돌보는 어의(御醫)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매화틀, 즉 임금 대변을 매일 검사하는 일이다. 모양, 냄새, 맛까지 확인했다.
단 가공식품을 피하자. 고섬유식 야채, 통곡물에 먼저 젓가락이 가도록 하자. 그게 확실한 건강장수법이다.
서울대 졸업. 미국 조지아공대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창의재단 바이오 문화사업단장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를 통해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