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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율촌 창립자 ‘만년 변호사’로 남는다 / 우창록 변호사, 31일 대표직 이양

영국신사77 2019. 2. 1. 17:18

로펌 율촌 창립자 ‘만년 변호사’로 남는다

우창록 변호사, 31일 대표직 이양

입력 : 2019-01-28 21:06
로펌 율촌 창립자 ‘만년 변호사’로 남는다 기사의 사진
법무법인 율촌 우창록 대표변호사가 23일 서울 강남구 파르나스타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법무법인 율촌의 창립자인 우창록(66·사법연수원 6기) 변호사가 오는 31일로 대표직에서 물러난다. 우 변호사는 지난해 9월 3인 공동대표(윤용섭·강석훈·윤희웅 대표변호사) 체제로 리더십을 이양했다.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이 창립한 법률사무소는 어느덧 김앤장, 태평양, 광장과 함께 국내 4대 로펌 중 하나가 됐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파르나스타워 38층에서 만난 우 변호사는 “‘만년 현역 변호사’로 남는 게 인생 후반부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로펌 1세대 창립자들이 물러나며 세대교체를 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직접 소송을 수행하는 일선 변호사로 남은 경우는 드물다.

우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생 60명 시대였던 1970년대에 변호사가 되는 이례적인 선택을 했다. 동기 58명 중 변호사는 그를 포함한 4명뿐이었다. “왜 출세가도를 버렸느냐”는 질문에 우 변호사는 “늘 변화를 추구하는 적극적인 성격 탓”이라고 답했다.

처음부터 변호사를 꿈꾼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2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이 들려주는 영화 ‘검사와 여선생’ 이야기를 듣고 검사가 되고 싶었다. 빈곤한 환경에서 집념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이내 엄격한 상명하복 관계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변호사 시장에 뛰어들었다. 김앤장 등 1세대 로펌이 막 자리잡던 1970년대 후반이었다. 

우 변호사는 1979년 김앤장에 입사해 조세 분야 소송을 진행했다. 노태우정부 때인 1992년 현대그룹 계열사에 부과된 1000억원대 법인세 소송에서 국세청을 상대로 100% 승소했다. 일약 스타 조세 전문 변호사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후 김앤장에서 독립해 개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다 1994년 율촌합동법률사무소를 세웠다. 법률가의 마을이라는 뜻의 ‘율촌’은 연수원 시절 교수였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골라준 이름이다. 1997년 법무법인 율촌 창립 이후에는 기업 조세 분야의 선두주자로 올라섰다. 변호사 10명과 함께 시작한 율촌은 20여년 만에 변호사 450여명을 포함, 850여명 규모의 대형 로펌이 됐다. 

우 변호사는 율촌의 성공 배경으로 창의성과 협력 정신을 꼽았다. 수임해 온 사건을 개인이 독식하지 않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소송을 맡게 했다. 그는 “단순히 누가 소송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협업하면 최선일지 고민했다”고 했다.

대표직 은퇴 이후의 목표는 장년·노년 세대의 법률서비스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예컨대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바라지 않을 경우에 생기는 의료 분쟁이나 재산을 공익재단에 귀속시키는 절차 등 고령사회의 법률 문제를 전담하는 게 목표다.

우 변호사는 다른 변호사들과 크기가 똑같은 사무실을 사용한다. 책상 하나와 여닫이책장 하나가 겨우 놓인다. 대표 명패도 따로 없다. 그는 이날 인터뷰를 마친 뒤 여느 변호사처럼 법률 서적과 서류 뭉치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