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군사 압도한 송나라
몽골 등 이민족에 끌려다녀
도학 정치가들의 발목 잡기
산업혁명 목전에서 내리막
세계사의 미스터리 송나라
송나라는 역사학계에 많은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불가사의한 왕조입니다.
송은 원(몽골)·금(여진)·요(거란) 등에 시달리며 돈으로 평화를 산 유약한 국가의 대명사 같은 존재죠. 그런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언뜻 이해되질 않습니다.
반면 송을 들들 볶았던 주변국은 어땠을까요. 요나라의 정예병은 10만 명이었고, 북송이 멸망했던 ‘정강의 변’ 사건 당시 수도를 포위했던 금나라 군사는 6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산업발달로 풍요로운 경제 구가
그런데 학자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한 것은 군사력보다 경제 분야입니다. 앞서 소개한 마르코 폴로의 격찬은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송나라의 산업 발전은 당대 유럽 어느 국가도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송대에는 철을 단련하는 용광로와 수력 방직기, 화약과 강노, 물시계 등이 발명됐고, 건축에 아치형 다리와 받침대가 쓰였습니다. 조선업이나 항해술도 대단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나침반과 수력 터빈을 사용했죠.
이러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강남 개발이었습니다. 송대부터 양쯔강 이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됐고, 위에서 언급한 수차의 개발로 계단식 논을 통한 쌀의 집약적 재배가 가능해졌습니다. 잉여 식량이 생산되자 상업이 발달했고, 이와 더불어 운송, 숙박 등 서비스업 등이 함께 발달한 거죠.
지폐와 어음도 본격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옥스포드 너필드 컬리지의 스티븐 브로드베리 교수가 2017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송나라는 1020년에 1인당 GDP가 1000달러(1990년 가치 기준)를 돌파했습니다. 영국(잉글랜드)이 1000달러를 돌파한 것은 이로부터 400년 가량이 지난 1400년대부터입니다.
이때문에 많은 서양 학자들은 송나라가 왜 산업혁명 목전까지 가고도, 결국 도달하지 못했는지 무척 궁금해했습니다. 영국보다 약 500년 앞선 이때 산업혁명을 시작했다면 세계사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을 테니까요. 과연 무엇이 송나라의 산업혁명 진입을 막았을까요?
“법률이 재부(財富)를 방해하는 나라”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부러워한 지 약 500년 뒤
그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과 그렇지 못한 중국의 차이를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중국은 사법정책의 집행에서 공정성과 일관성을 상실한 결과, 성장 잠재력을 잃고 정체되고 말았다.
“영국에서 선진적으로 상업의 자유와 형평성 있는 사법 집행 제도가 정착됨으로써
"이는 수 백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진단으로 평가받습니다.”
도학 정치의 나라
"이들은 정치, 사회, 경제 문제를 도덕으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가령 명나라 때 명신(名臣)으로 추앙받는 해서조차 “무릇 소송 중에 의심할 만한 것이 있으면 그의 형을 패소시키기보다는 그의 동생을 패소시키고, 그의 숙부나 백부를 패소시키기보다는 그의 조카를 패소시키라”는 글을 남겼을 정도였습니다.
“상인들이 관리가 될 수 없도록 한 것은
결국 남송 정부는 가사도를 유배 보내고 정책을 되돌렸지만,
『수호지』의 배경은 왜 송나라일까
무능한 관료에 맞서 양산박에서 활동한 108명의 호걸을 다룬 『수호지』가 송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경제는 중국 역사상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도 서민들의 삶은 생활 여건은 갈수록 피폐해졌습니다. 왕안석의 변법 실패 등 의욕이 앞선 개혁안이 좌초돼 혼란을 가중했고,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울 뿐 현실 정책에선 무기력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커졌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레이 황은 송나라의 쇠퇴를 놓고 “도학가들의 사상은 좁게는 군자와 소인의 구분을 강조했고, 개인의 사적인 이익과 관련된 개념을 말살했다. 오늘날 중국의 민법 발달이 미진하고 도덕관념으로 법률을 대신하는 경향을 보이는 건 송대의 유학자들과 무관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송나라 이후 중국은 약 700년간 같은 수준을 맴돌았습니다. 아니,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1인당 GDP는 오히려 뒤로 후퇴하지요. 그만큼 송나라의 도학 정치가들이 민생에 남긴 후유증은 컸습니다
“(도학가들은) 자신이 과거에 외우고 익힌 시서(詩書)의 신념들을 증명하려는 것에 불과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유성운의 역사정치] 산업혁명 500년 전 영국보다 잘 살았던 송나라는 왜 망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