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65세 된 남자가 집 근처 병원에서 종합 검진을 받았다. 검진 항목에는 당연히 흉부 X선 촬영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판독 결과는 정상이었다. 문제는 3년 후에 생긴다. 기침이 멎질 않아 병원을 찾았는데, 흉부 X선 사진에서 큰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악성 흉선종으로 진단받은 그는 수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치료를 받았지만 불행히도 16개월 후에 사망하고 말았다.
의사 측 변호사가 들고나온 논리는 바로 ‘사후 설명 편향’이다. 이는 사람들이 결과를 알고 나면 그에 맞추어 과거를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이다. 즉, 환자 가족 측 변호사는 감정을 의뢰했던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에게 처음에 촬영했던 X선 사진만 보여주고 의견을 물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시간이 지나 종양이 명백하게 보이는 X선 사진을 함께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의사들이 처음 촬영했던 사진에서 초기 단계의 작은 종양이 보인다고 판독했다는 것이다. 종양이 확실하게 보이는 두 번째 X선 사진을 함께 제공하여 정답을 알려주니 전문의들이 ‘사후 설명 편향’에 빠지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급성 뇌경색이 의심되는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으면 우선 뇌 CT 촬영을 시행하여 정보를 얻고, 이후 환자의 상태가 안정되면 더 정확한 검사인 MRI 검사를 통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는다. 얼리 교수팀은 우선 뇌경색으로 최종 진단된 환자들과, 뇌경색이 의심되었지만 결국 아니라고 판명된 환자들의 뇌 CT를 여섯 명의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보여주어 뇌경색 여부를 진단하게 했다. 열흘이 지난 후 이들에게 같은 CT를 다시 판독하게 했는데, 이번에는 같은 환자들의 뇌 MRI를 제공해 이를 참고하게 했다. 정답을 알려준 후 뇌 CT를 다시 판독하게 한 셈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정답을 모른 채 진행한 첫 번째 CT 판독에서 뇌경색의 기미를 찾지 못했던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은 MRI를 확인하여 정답을 알고 난 후 CT를 다시 검토하자 뇌경색의 증거를 훨씬 정확하게 찾아냈다. 정답을 알고 나니 ‘사후 설명 편향’에 때문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답은 분명한데 고비마다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했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그렇지만 그건 ‘사후 설명 편향’일 뿐이다. 시간이 흘러 결과를 알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을 뿐이다. 우리가 했던 선택들이 그때는 최선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틀렸지만 그때는 그게 맞았다.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훌훌 털어버리고 씩씩하게 새해를 맞자.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