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海外 聖地순례/★聖地성화歷史[종합]

★바울의 3, 4차 전도여행

영국신사77 2018. 2. 3. 09:55

                                 


3. 제3차 전도여행 : AD 53~58


                   

            

                                     

3년간의 에베소 전도

제3차 전도는 제2차 전도여행의 연속이었다. 

제2차 때 성령으로 금지되었던 소아시아 전도, 

특히 에베소 전도에 전력을 집중시켰다. 

바울은 일찍부터 중심적 대도시의 중요성에 유의하여 

그 전도를 꾀하였으나, 

이때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다년 간의 그 숙원을 이루게 된 바울은 

약 3년동안  도시에 머물렀다.

 

그의 오랜 전도생활에서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물은 곳은 없었다. 

그는 이 동안 부근의 각 도시에까지 

전도를 시도했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 


골로새와 히에라볼리에는 

에바브라를 통하여 복음을 전했다(골 4:13). 

다른 여러 도시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동역자를 보내 전도를 했을는지도 모른다.

 

누가는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10)

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줄곧 에베소에 머물러 전도에 전념했다고 여겨진다. 

그 자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에베소에 있어서는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려" 있었다. 

한편, 그에게는 "대적하는 자가 많아" 

실로 다사다난한 3년이었다. 

사도행전 19:1~ 41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은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가 험악하게 되어, 

바울은 적어도 한 번은 직접 고린도에 가서 

화해에 힘쓴 일조차 있었다. 

실로 "날마다…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 있었으니 

감개무량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에 건너갔을 때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고 술회했다. 

그러나 고린도에 보냈던 디도의 기쁜 보고를 받고, 

그는 비로소 환희와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고후 7:5-16). 

아마 이때 일루리곤 지방에서의 전도를 시도했을 것이다(롬 15:19,20,행 20:1-3). 

이렇게 그는 완전히 화해한 고린도 교회를 다시 방문하여, 

평화로운 3개월을 보냈다.

 

이제 3차에 걸친 전도여행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고"(롬 15:19),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을 정도로 되었다(롬 15:23). 

전도에 지칠줄 모르는 그의 눈길은, 

더 서쪽인 로마와, 로마 이서(以西)의 나라에로 돌려졌다. 

사실 그는 "여러 해 전부터…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다"(롬 15:18-29). 

그리하여 이제 여러 해 전부터의 숙원이 이루어지려는 찰라에 

우선 로마 교회에 자기의 계획을 말하고, 

그와 동시에 전부터 품고 있던 소신을 밝혔던 것이다. 

이것이 곧 다름아닌 로마서이다.

 

그러나 로마에 가기 전에, 

일단 예루살렘에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이 시대의 모든 서신이 보이듯이(고전 16장,고후8장,9장,롬15:25-28), 

母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연보를 준비하여 

이것을 각 교회의 대표자들에게 지참시켜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는 이와 같은 헌금으로 

母 교회와 이방인의 여러 교회와의 사이에 밀접한 연락을 갖게 하여, 

굳은 결합을 유지시키려 했던것이다. 

이렇게 그는 이 대표자들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갔다(행 20:4).

 

                                             

의사 '누가'의 동행

빌립보에서는 '누가'가 일행에 참가한 것은

 `우리' 라는 대명사가 다시 쓰여지고 있다는 것으로서도 알 수 있다(행 20:5). 

오랜 격심한 전도생활 때문에, 

지칠줄 모르는 바울도 피로를 느꼈을 것이다. 

특히 그는 `육체에 가시'가 들은 병약한 몸이었다. 

여하튼 이때 의사 누가의 간호가 필요한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로마에 이를 때까지, 

누가는 항상 바울의 반려자로서 행동을 같이 하고 있다. 

그것은 구약의 다윗과 요나단과의 관계에 못지 않는 

아름다운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아 도로로사'(슬픔의 길)가 된 예루살렘에로의 여행

빌립보로부터 예루살렘에의 여행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비아 도로로사'(슬픔의 길)였다. 

그도, 사람들도 불길한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라고 말했다. 

그가 도중에 들린 드로아·밀레도·두로·가이사랴 등의 각지에서, 

형제들과의 작별은 모두 눈물이었다. 

특히 밀레도에서의 에베소 장로들과의 작별 장면은, 

이를 데 없이 애절하였다. 

신약성경 중 이 기사만큼 

페이쏘스(pathos)에 풍부한 곳이 다른 데는 없다(행 20:17-38)


※ 3차 전도여행 때 쓴 바울의 서신서

   1). 고린도전·후서

   2). 로마서(1:1)

 

 

                         

4. 바울의 로마행 -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오순절 전날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을 따뜻하게 맞았다. 

예루살렘은 이 명절 때문에 

각처에서 모여들은 유대인으로 붐볐다.

 

그 중에는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고 

그에게 적의를 품은 극단적인 반 바울주의자들도 섞여 있었다. 

팔레스틴 이외의 곳에서 

로마 관헌의 제지로 바울 살해의 목적을 수행할 수 없었던 그들은 

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온 성이 소동하여" 

바울을 죽이려 했으나, 

로마의 천부장이 달려와서 바울을 붙잡아 

안토니아의 영문으로 끌어갔으므로 

간신히 무사하게 되었다. 

누가는 당시의 사정과 그에 뒤따른 그에 대한 신문과 그의 변명 등에 대하여 

매우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행 21:27~23:10).

 

유대인들 사이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고 마시지 않는다"고까지 

맹세한 일단의 혈맹단(血盟團)까지 조직되어 

바울의 신변에 위험이 밀어닥치고 있었으므로, 

그는 밤중에 로마 군대에 의해 가이사랴로 호송되어 

로마의 총독 벨렉스의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벨렉스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고, 

그의 후임 베스도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두 사람이 다 신속한 처리를 하지 않고 

바울을 2년 동안이나 옥에 가둔 채 두었으므로, 

그는 분연히 가이사에게 상소하겠다고 신청했다.

 

이리하여 그는 백부장 율리오의 호송하에 로마로 가게 되었다. 

당시 가이사랴에서 로마에의 항해에는 

사도행전의 기자 누가도 동행했는데, 

이 항해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27장에 매우 자세하게,

 또 인상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고대의 항해기라는 점에서 보더라도, 

매우 귀중하고 또 흥미진진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허다한 곤란을 겪은 다음 바울 일행은 

AD 60년 초봄 보디올에 도착, 

거기서 주 안의 형제들의 영접을 받고 

마침내 로마에 입성했다. 


이렇게 다년 간의 숙원을 이룰 수 있었다고는 하나, 

결박된 몸으로서 로마 입성이란 그도 

감개무량했음에 틀림 없었을 것이다.

 

 로마에서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되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재판의 날을 기다렸다. 

로마에서는 많은 사건이 산적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의 상소가 심의될 차례가 오기까지는 

실로 2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2년동안, 

헛되이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28장 17절,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23절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많은 동역자가 그에게 출입한 것은, 

그때 집필된 골로새서나 빌레몬서의 끝에 열거되어 있는 인명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빌레몬서는 이때 있었던 재미있는 한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빌립보서 1:12- 18에 의하면, 

그 당시 바울은 더 적극적인 전도를 하여 비상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은

 

사도행전 28장 30절, "바울이…

              31절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고 말을 끝맺고 있다.

 

 

 

 ※ 바울이 2년간 로마에 잡혀 있을 때(행 28:30, 31) 쓴  옥중서신.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엡 3:1, 6:20, 빌 1:7,13  골 4:7~18, 몬 1:10, 22)

                                                                                   

                         참고 자료 : 주석성경자료 + 성경말씀, 톰슨 성경, khi4040

 

 

 

 

 

                          

 바울의 전도여행 4차까지 

                                                                                   

 1.바울의 1차 여행 - 행13:1-15:35
 안디옥
 → 실루기아 → 구브로 → 살라미 → 바보 → 버가 → 비시디아 안디옥 

 → 이고니온 → 루스드라 → 더베


2.바울의 2차 여행 - 행15:36-18:22

구브로 → 수리아 → 길리기아 → 더베 → 루스드라 → 이고니온 → 부르기아 → 갈라디아 → 무시아 → 비두니아 → 드로아 → 사모드라게 → 네압볼리 → 마게도냐 → 암비볼리 → 아볼로니아 → 데살로니가 → 베뢰아 → 아덴 → 고린도 → 수리아 → 에베소 → 가이사랴 → 안디옥


3.바울의 3차 여행 - 행18:23-21:14

갈라디아 → 브루기아 → 아가야 → 두란노 → 마게도냐 → 아가야 → 예루살렘 

→ 마게도냐 → 드로아 → 빌립보 → 앗소 → 미둘레네 → 기오 → 사모 → 밀레도 

→ 고스 → 로도 → 바다라 → 베니게 → 구브로 → 수리아 → 두로 → 돌레마이 

→ 가이사라 → 예루살렘


4. 바울의 로마행


가이사랴(행25:13) -> 시돈 -> 구브로해안 -> 갈리기아 ->

밤빌리아 -> 무라  -> 니도 -> 살모네 앞 -> 그레데 해안 -> 

미항 -> 멜리데섬 -> 수라구사 -> 레기온 -> 보디올 -> 로마


5.바울의 4차 여행-바울이 로마에서 석방된 후 갔던 지방들(AD 62년-AD 66년)

로마 -> 그레데 -> 에베소 -> 마케도냐(니고볼리) -> 드로아 -> 밀레도

  -> 고린도 -> 로마(순교)


사도들의 수신 지역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