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방배동에 사는 김종선(59) 씨 가족은 겹경사로 새해를 열었다. 지난 1월 큰딸이 결혼하면서 첫 사위를 맞이한데다, 자녀를 키운 경험담을 엮은 지침서 ‘방배동 김선생의 공부가 희망이다’(이다미디어)가 출판된 것. 일일이 나열하기 벅찬 6남매를 과외 없이 자신만의 고집과 정성으로 키워낸 초등학교 교사인 김씨는 자신을 그저 평범한 여섯 아이의 엄마이며, 자녀들 역시 영재는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큰딸 곽현경 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됐고, 둘째 희경 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고시를 패스하고 국내 굴지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쌍둥이인 셋째와 넷째 중 언니인 보경 씨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보라매병원 약사로, 동생인 은경 씨는 한양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임용고사를 거쳐 교사가 됐다. 다섯째 미경 씨는 연세대 의대 재학 중이며, 막내아들 형석 군은 교내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는 대한민국 고3 수험생이다.
교과서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과 끝 말 그대로 학교 공부에 충실했던 강북 모여고 전교 1등 현경 씨. 지금은 당당히 의사가 된 그녀에게 서울대 의대 원서는 꿈꾸지 말았어야 할 터무니없는 욕심이었을까. 학교에서조차 강남과 강북의 수준차를 줄긋고 있는 공교육의 현실에 대해 김종선 씨는 교과서야말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 아니냐며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교과서가 기본이죠. 학습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 시험에 응용된 형태로 출제되는 것이지, 내용이 아예 벗어나진 않기 때문에 교과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또 만만치 않은 사교육비를 들여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크게 실망한 엄마는 더욱 타이트한 스케줄로 아이를 학원으로 내모는 악순환이 계속되죠. 부모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낙랑장송을 둔재 만드는 경우를 숱하게 볼 때마다 무척 안타까워요.” 형편상 학원을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그녀에게 일상이란 여덟 식구 살림으로 날이 새니까 겨우 눈을 뜨고 해가 지니까 잠시 눈감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 수만큼의 도시락을 싸고 하루 종일 나오는 세탁물에 교복, 교련복, 체육복을 세탁하는 등 집안 정리만이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 항상 아이를 업고 안아서라도 자신부터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아이들이 자연스레 책을 손에 쥐도록 하는 데 신경을 쏟았다.
“아이들이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가 있잖아요? 엉뚱한 질문이라도 항상 관심을 가져주고 백과사전을 펼쳐 의문을 풀곤 했죠. 글을 알기 전에는 그림책의 인물 표정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흥미를 유발하고 나아가 다음 상황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사고의 폭은 점점 더 넓어질 수밖에 없죠.” 지금도 김씨의 공부방을 찾아온 어린 제자들에게 겉장이 너덜너덜 손때 묻은 백과사전을 펴보도록 지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고, 개성 강한 6남매 누구 하나 녹록했던 적 없었다. 그중 지금도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건 둘째딸이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 돌연 서울대 법대로 전향했던 일이다. 유치원 다닐 나이에 졸라 어렵게 피아노학원을 다니면서 피아니스트로 최고의 자리에 설 것을 꿈꿨고, 서울대 음대에 입학해 꿈을 실현하기 위한 토대를 닦아나가던 딸이었다. 그랬던 아이가 ‘예술적 재능’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돈 안 들이며 공부하겠다고 다시 법대에 들어가기까지 김종선 씨는 피아노를 처음 접했던 때처럼 여전히 그 선택을 아이에게 맡긴 채 마음으로 후원할 뿐이었다.
믿음과 신뢰가 더 큰 성과를 가져오는 법 크게 말썽을 피우지 않고 공부도 곧잘 해 걱정 없던 막내아들이 중학교 입학 후 첫 시험에서 전교 99등을 받았을 때 역시 아찔했던 순간. 학원을 보내달라고 떼쓰는 아이에게 교과서를 달달 외우다시피 한 뒤 문제집으로 테스트하는 지극히 ‘평범한’ 방법을 제시했다. 물론 아들은 반신반의하면서 교과서를 부여잡고 반복 또 반복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고 점수와 등수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탄력과 자신감이 붙은 것은 당연, 결국 전교 2등으로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공부란 외롭고 고독한 작업이죠. 연령이 높아질수록 작은 활자가 쏟아내는 난해한 내용의 뜻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하고 그것을 시험 때까지, 혹은 될 수 있는 대로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입과 눈으로 읽고 여러 번 손으로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니까요. 부모님들은 책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자녀들이 그저 오래 자리에 앉아 있기만을 바라고, 기력을 잃은 자녀가 잠시라도 자리를 일어서게 되면 일단 나무라고 봅니다. 즐겨 보는 드라마와 스포츠 중계를 관두고 어려운 책 한 권 읽어야 한다면 부모님이라도 갑갑하다는 생각 들겠죠? 역지사지를 잊지 마세요. 자녀가 방에서 나올 때는 목을 축일 음료수 한잔과 따뜻한 격려 한마디만 준비하시면 돼요. 감시나 닦달보다는 믿음과 신뢰가 더 큰 성과를 가져오는 법이거든요.” 김종선 씨는 자신이 그랬듯이 아이가 기본 실력이 부족하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것에서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할 것을 강조한다. 세상 그 누구도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가치가 있고, 각자 사회에서 한 자리 맡아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 자신의 아이들은 서울대를 목표를 한 것이 아니라 이왕 시작한 김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