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바(가명·40)씨는 매일 저녁과 주말 충남 천안 동구로 천안러시아교회를 찾는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고려인인 그에게 이곳은 유일한 안식처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은 지 5년째. 피부색도 생김새도 같지만 한국인들과의 이질감은 극복하기 어려웠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저녁마다 이웃끼리 만나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이 그저 자기 일만 하더군요.”
천안러시아교회에는 고려인들이 많다. 출입국관리소에 따르면 천안시에 거주하는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 출신 고려인은 600명인데 이 중 120여명이 천안러시아교회 성도다.
지역 내 고려인 집합소가 된 천안러시아교회는 천안외국인교회와 휴먼터치센터에서 출발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인 이강헌(64) 목사는 2001년 이주노동자의 인권상황 개선과 전도를 위해 휴먼터치센터를 설립하고 주일에는 천안외국인교회로 운영했다.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베트남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이 모였다. 고려인들의 모임도 여러 공동체 중 하나였다.
고려인들이 늘어나자 이 목사는 2015년 10월 현재 러시아교회 담임인 이게라심(56) 목사를 초빙했다. 그도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침례교신학교를 졸업한 고려인이다. 이 목사 부임 후 천안외국인교회는 러시아공동체를 독립 교회로 분리시켰다. 예배를 드리는 공간은 같지만 시간을 달리하고 순차적으로 재정도 자립시켰다. 1년여 만에 성도 수는 30여명에서 4배 가까이 늘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짧은 기간에 부흥한 이 교회는 선교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백석대 이종우(선교학) 교수는 인터뷰와 관찰 등을 통해 부흥요인을 분석했다.
그가 꼽은 첫 번째 요인은 목회자의 영적 리더십이다. 이게라심 목사의 목회 모토는 ‘기도’다. 그는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는 물론 매일 점심 때도 금식하며 기도한다. 성도 30여명은 매일 저녁 모여 한 시간씩 개인 기도를 하고 성경공부를 한다. 이 교수는 “기도의 생활화를 강조하고 실천하는 목회자의 리더십이 성도들로 하여금 영적 공감대를 강하게 형성토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요인은 ‘자유로운 목회활동 보장과 문화 존중’이다. 이 교수는 “이주민 사역을 하는 대부분 교회는 이주민 공동체가 한국교회의 목회시스템과 문화를 따르도록 강요하지만 천안러시아교회의 경우 현지인 목회자를 중심으로 고려인들이 자기 문화를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감정표현이 활발하며 교제에 개방적이다. 음악성이 높은 찬양을 선호한다. 장례식 때 망자의 관이 방에서 나갈 때도 음악을 연주하고 결혼 등 각 행사를 음악이 있는 파티 형식으로 진행하는 등 음악과 친숙한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이 교수가 꼽은 고려인의 특징이다.
실제로 천안러시아교회는 주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전체 예배를 드리는데 찬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나 손을 들고 몸을 흔들며 찬양한다. 새 신자도 언제든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문화도 눈에 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가 고려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안러시아교회 성도들은 각종 질병과 법적 분쟁, 산업재해, 비자 문제 등 한국생활 중 겪는 어려움을 휴먼터치센터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천안러시아교회는 현재 인근 아산시 등에도 러시아교회 개척을 준비 중이다. 이 교수는 “이 교회가 선교사들을 세계로 파송한 안디옥교회처럼 이주민교회의 바람직한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천안러시아교회 성도들이 지난해 성탄절 예배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교회 성도의 대부분은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에서 온 고려인이다. 휴먼터치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