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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해

영국신사77 2017. 6. 6. 11:57

백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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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등장 인물

()나라의 현인() 정치가. 제나라의 관중에 비견될 만한 탁월한 책략과 경천위지()의 재능을 지녔으나 빈한한 가문에서 태어난 데다 불운하여 오랫동안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걸식하면서 천하를 유람했음. 한때 제나라에서 건숙의 도움을 받았고 우()나라의 우주()를 섬기기도 했으나 늘그막에 진목공에게 발탁되면서 본격적으로 천하를 경영하게 됨. 입신() 후 건숙을 추천하고 서융(西)의 책사로 있던 요여()를 포섭하는 등 여러 현사(), 충신들을 끌어모은 후 그들과 함께 진목공을 보필해 진나라를 서융의 패주()로 부흥시킴으로써 후세에 중원을 경략할 토대를 튼튼히 함.

[네이버 지식백과] 백리해 [百里奚] (열국지사전, 2001. 6. 15., 솔출판사)



백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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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사망미상 ~ 미상

춘추 시대 때 사람. 자는 정백()이고, 우()나라 출신이다. 백리씨()로도 불린다. 일설에는 성이 백()씨고, 이름은 해()며, 자가 리()라고도 한다. 또는 자가 정백()이라고도 한다. 우나라의 대부()로 있다가 진헌공()이 우나라를 멸망시키자 포로가 진나라에 들어왔다. 진나라가 목희()를 진()나라에 시집보낼 때 배신()으로 따라갔다가 초()나라 완() 땅으로 달아났다는데 초나라 사람에게 잡혔다.

진목공()이 소식을 듣고 오고양피(, 검은 양 다섯 마리의 가죽)을 주고 사와 국정을 맡겼다. 이로 인해 ‘오고대부()’로도 불린다. 이때 그의 나이 일흔이었다. 건숙()을 목공에게 추천하고, 유여() 등과 함께 목공의 패업 성취를 도왔다. 일설에는 우공()이 간언을 듣지 않자 진()나라로 갔다고도 하며, 본래 초나라 비인()인데 진목공이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자신을 진나라에 팔아 소를 키우다가 목공의 눈에 띠었다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리해 [百里奚, 百里傒]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지식백과 검색


한시어사전

백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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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진 목공()의 대부(). 우()에 있다가 우가 망할 것을 짐작하고 진에 갔으며, 초() 나라 사람에게 붙들렸을 때 진 목공이 양피() 5장을 주고 그를 구해냈으므로 오고대부()라고도 함. 그는 피로해도 수레를 타지 않았으며 더워도 가마 지붕을 치지 않았고, 그가 죽으니 백성들이 슬퍼하여 ‘ (동자불가요 용자불상저 ; 아이들은 노래 부르지 않고 방아 찧는 사람은 절구질을 하지 않았네.)’ 했다고 함.<전국진책><이첨 백리해론>

祿 (백리해작록불입어심고 반우이우비 ; 백리해는 벼슬이나 녹봉이 그 마음에 끼어들지 않았으므로, 소를 먹이면 소가 살이 쪘다.)<장자 외편 전자방>

[네이버 지식백과] 백리해 [百里奚] (한시어사전, 2007. 7. 9., 국학자료원)



백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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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 해(百里奚, ? ~ ?)는 중국 춘추 시대 (秦)나라의 재상으로, 자는 정백(井伯)이며 완(宛) 사람이다.

진나라 임관 이전[편집]

장성한 후 아내 두씨(杜氏)와 아들 한 명(백리시(百里視, 맹명))을 두었다. 그러나 계속 가난에 시달렸고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도, 천거해 주지도 않자 그는 우나라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아내의 격려를 얻고 그는 제나라로 향했다.


당시 제나라 임금이었던 제양공이 죽고 공손무지가 제나라 임금이 되었지만, 제나라에서 알게 된 건숙(蹇叔)의 조언으로 임관하지 않았고 변란을 피할 수 있었다. 이어 주나라 왕자 퇴를 섬기려 하자 건숙의 만류로 섬기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우나라로 돌아갔고 궁지기의 천거로 대부 벼슬을 얻었다. 그 후 진(晉)나라의 침략으로 우나라가 멸망했지만, 계속해서 우공을 섬겼다.

하지만 그의 충성심을 시기하는 사람에 의해 진(秦)나라 목공의 결혼식에 남자 종의 신세가 되었고, 진나라로 가는 길에 초나라로 도망가서 소를 치면서 있다가 초성왕(楚成王)이 백리해를 어인으로 삼아서 말키우는 일을 시켰다.


그 후 진나라에서 명단에 있던 백리해가 없는 것을 알게되었고 당시 대부로 있던 공손 지의 조언으로 염소가죽 다섯 장을 초나라에 예물로 보내서 진나라로 데려온다.

진나라 임관 이후[편집]

진나라에 임관된 이후 건숙을 진목공에 천거하였고 백리해와 건숙은 각각 좌서장과 우서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 빨래하고 있던 아내와 상봉하였는데 아내는 백리해를 만나기 위해 단상에서 노래를 불렀다.

백리해, 염소가죽 다섯 장. 이별하던 그 날을 기억하는가?
알 밴 암탉을 잡고 노란 좁쌀밥 짓고 문으로 불 때던 그 때를.
이제 부귀하니 나를 잊었구나.

이 노래를 들은 백리해는 아내와 상봉하였고 아들과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후에 진목공이 정(鄭)나라를 치려하자 만류하였지만 진목공은 듣지 않고 정나라를 공격했으나 진(晉)나라에 의해 대패하였고 그 후 그는 관직에서 물러났고 죽은 뒤 수많은 백성들이 어버이를 잃은 것처럼 통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