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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 1위’ 오스트리아 빈의 주거복지… 도시의 미래를 보다

영국신사77 2017. 4. 10. 17:34

‘삶의 질 1위’ 빈의 주거복지… 도시의 미래를 보다

도시 정책 어떻기에… 현지 르포

입력 : 2017-04-10 05:02

‘삶의 질 1위’ 빈의 주거복지… 도시의 미래를 보다 기사의 사진
1930년 건설된 빈의 공공임대주택 ‘칼 마르크스 호프’는 공공임대주택을 통해 주거 안정을 이뤄낸 빈의 주거정책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마치 고급 주택단지의 외양을 보는 듯하다.

‘삶의 질 1위’ 빈의 주거복지… 도시의 미래를 보다 기사의 사진
2015년부터 보행전용거리로 전환된 빈의 명동거리 ‘마리아힐퍼 스트라세’의 평일 오후 모습.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머서컨설팅그룹이 지난 3월 발표한 ‘도시별 삶의 질 순위 보고서’에서 8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빈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든 이유 중 하나로 시의 정책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민당이 1945년 이후 지금까지 시장 자리를 지키면서 일관되게 사민주의적 정책을 펼쳤다. 지난달 28일부터 유럽 3개 도시를 순방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동행해 ‘명품도시’ 빈을 만든 정책 현장들을 둘러봤다.  

칼 마르크스 호프-공공임대주택의 모범 

칼 마르크스 호프(Karl Marx Hof)는 빈 외곽에 1930년 건축된 대규모 공공임대주택이다. 80여년 전에 이미 위생적이고 저렴하며 공동체성을 간직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 서민 주거 안정을 이루고자 했던 빈시 정부의 의지를 상징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현재도 총 1382가구의 주택에 5500여명이 살고 있다. 공동주택이 4면을 둘러싸고 그 가운데 커뮤니티 공간으로써 정원을 배치한 구조의 단지들이 너른 녹지대 위로 무려 1100m나 이어져 있다. 임대주택이란 설명을 듣지 못했다면 고급 주택단지로 착각할 법했다. 공동세탁장, 유치원, 병원, 우체국 등 공용시설이 전체 건물 면적의 20%를 차지한다.  

빈 시민의 60% 정도가 시가 공급한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한다. 시영아파트가 25% 정도 되고, 나머지도 시가 투자한 민관협력형 ‘사회주택’이다. 빈 시민 중 무주택자는 누구나 공공임대주택을 받을 수 있다. 평균 임대료는 런던이나 파리, 취리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집을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소비할 여력이 생긴다.

아스페른 스마티 시티-도시개발의 미래 

빈의 최외곽인 22구의 아스페른(Aspern)으로 향했다. 1970년 공항이 폐쇄되면서 버려진 땅이었지만 지금은 빈시 최대의 도시개발 프로젝트인 ‘아스페른 스마트 시티’가 조성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시가 경기부양 차원에서 개발을 시작해 현재 4분의 1 정도가 완료됐다. 2028년까지 2만여명이 거주하는 신도시로 완성된다.

아스페른 스마트 시티는 에너지를 주제로 계획된 신도시라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활용해 ‘제로 에너지’를 넘어 ‘플러스 에너지’를 지향한다. 건물들은 단열과 채광으로 에너지를 절감하고, 쓰레기소각열과 지열을 사용하며,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자동차 없는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시 전체를 설계했다는 부분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신도시 안에 주거시설과 함께 생산시설을 유치해 거주자들이 원거리 통근할 필요가 없다. 신도시에선 도보나 자전거만으로 생활이 가능하고, 도심과는 전철로 연결돼 있다. 

이 지역에서 처음 완공된 사무용 빌딩 ‘IQ빌딩’은 ‘플러스 에너지 하우스’라고 불린다. 태양광 등을 이용해 빌딩 전체에서 쓰고도 남을 정도의 에너지를 자체 생산한다. 공동주택인 ‘야스페른(JAspern)’은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된 주거지 모델이다. 자연광이 최대한 들어오게 설계했고, 그러면서도 직사광선을 차단해 여름에도 시원하다. 난방은 쓰레기소각열을 이용하고, 냉방은 지열을 활용한다. 자연광만 쓰도록 설계된 학교도 있다고 한다.

자르파브릭-코하우징이라는 흐름 

빈에서는 거주자들이 건축 설계 단계부터 참여해 건축가와 함께 집을 짓는 코하우징(Co-Housing)이 유행이다. 빈의 가장 대표적인 코하우징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자르파브릭(Sargfabrick)을 방문했다.

1999년 완공된 자르파브릭은 코하우징 방식으로 지어진 임대주택으로 현재 110가구 200여명이 입주해 있다. 빈시는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조합을 구성하면 건축비를 융자해 준다. 자르파브릭도 25명의 조합원이 모여 시작했으며, 전체 건축비의 88%를 시에서 30년간 장기 저금리(이자 1%)로 융자받았다.

자르파브릭을 상징하는 디자인 요소는 오렌지색 외벽과 넓은 복도다. 복도를 넓게 만들어 놀이공간이자 이웃과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되도록 했다. 지하에는 공연장, 카페, 수영장, 도서관 등이 있다. 커다란 공동부엌을 두고 손님 접대나 행사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용공간이 넓기 때문에 개인공간은 좁아도 충분하다.

입주자대표는 “도시에 살지만 함께 사는 삶이 좋다. 멋진 건축물에서 살고 있다는 점도 좋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자르파브릭의 건축가 프란츠 숨니치는 왜 코하우징이냐는 질문에 “개인적인 삶에서 함께 사는 삶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마리아힐퍼 스트라세-보행거리의 매력 

빈시는 2010년 ‘빈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상업지역을 관통하는 간선도로를 보행자거리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2014년 주민투표를 거쳐 2015년부터 보행자거리로 전환했다. 현재는 빈을 대표하는 보행 명소이자 유럽에서 가장 긴 쇼핑거리가 됐다. 

마리아힐퍼 스트라세(Mariahilfer Strasse)는 전체 1.6㎞에 달하는데 양쪽 끝은 차와 사람의 공유도로다. 이 구간에서 차량은 시속 20㎞ 이하로 운행해야 한다. 가운데 구간 450m가량은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보행자 전용도로다. 도로 전체는 턱이 없도록 세심하게 다듬어져 있다.  

금요일 오후 마리아힐퍼 스트라세는 인파로 가득했다. 사람과 자전거, 자동차가 느리고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다음 달 서울역고가도로를 재생한 공중보행로 ‘서울로 7017’ 개장을 앞두고 있는 박 시장은 전 구간을 직접 걸어보고 나서 “보행자 전용거리를 만들면 시민들이 좋아하고, 인근 가게에 손님들이 늘고, 대기질도 좋아지니까 일석삼조”라고 말했다.  

가소메터 시티-명소로 재생된 산업유산 

가스저장고를 주거단지로 만든다는 건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1986년까지 87년간 빈 전역에 가스를 공급하던 원통형의 가스저장고 4개는 2011년 주거단지 및 쇼핑몰로 재탄생했다. 600여 가구의 주택과 공연장 등 문화시설, 대단위 쇼핑단지가 그 속에 들어차 있다.  

가소메터 시티(Gasometer City)는 이름 그대로 ‘가스저장고 도시’다. 빈시는 혐오시설이라는 주민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오래된 산업유산을 철거하는 대신 재생하기로 결정했다. 4명의 건축가가 각각 하나씩 가스저장고를 맡아 지상부는 공동주택으로, 지하부는 쇼핑몰로 개조한 후 서로 연결했다. 도시 외곽의 낙후된 산업지역이었던 이 동네는 이제 사람들로 북적이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빈=글·사진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