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당시 이집트 왕 아멘호텝2세
장인수 박사(D.Min., Ph.D.)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The Biblical-Historical Backgrounds Institute)
biblelands@paran.com
건축 일을 하는 목공들(아멘호텝2세 시대 _ 카이로 박물관)
“모세가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 대면했던 파라오는 아멘호텝2세”
투트모세 3세가 재위 말년에 이르렀을 때
하셉슈트의 강력한 섭정 아래서 오랜 고난의 세월을 보낸 탓이었는지 후계 체제를 더욱 결속하게 하기 위해
아들 아멘호텝 2세(Amenhotep Ⅱ, 1453-1419 BC)을 자신과 동급의 신분으로 격상시켜 공동통치를 실시하였다. 아마 후계 체제를 빈틈없이 하기 위한 사전 계획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5세기 설의 입장에서 볼 때 투트모세 3세는 계모 하셉슈트에 의해 계승될 바로의 지위를 히브리인 모세에게 빼앗길 뻔 한 위기를 일평생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왕자였던 아멘호텝 2세는 어릴 때부터 체력 단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들을 보면 그가 운동에 몰입하고 있는 부조 상을 많이 발견할수 있다.
50년이 넘는 장기 통치를 하면서 이집트 영토의 국경 변방을 확장한 투트모세 3세가 1450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아시아의 여러 도시 국가들이 여기저기에서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투트모세 3세의 뒤를 이은 아멘호텝 2세는 재위 2년 4월 육로를 통하여 민첩하게 지중해변을 따라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북부로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였으며 마주치는 적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제압하여 나갔다. 시리아 오론테스강을 건너 아버지 투트모세 3세가 정복한 땅을 이집트 국경지역으로 확고하게 만드는 신속함을 재위 초기에 보여 주었다. 아마 이 지역 반란의 중심지는 두로 지역이었던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James Bakie A. History of Egypt. NY:Macmillan Company (1929) 236).
강력한 통치자로서 지도력을 보여 주었던 아멘호텝 2세는 반란 세력들을 신속하게 제압한 후 속주지역의 반란 주모자들을 철저하게 응징하였으며 반군의 수장들을 처형하고 이들 시신들을 테베의 성벽에 전시하였다. 그리고 7번째 수장의 시신은 누비아 지방의 나파타(Napata)로 가져가 성벽 위에 전시하였는데 이는 남부지역이 국경지대였으므로 만약 누구든지 이집트에 대항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렇게 처참하게 처단한다는 경고였을 것이다.
아멘호텝 2세는 선왕을 본받아 테베에 많은 신전들을 건축하였다. 특별히 카르낙 신전(Temple of Karnak)과 나일 서쪽의 장제 신전을 아름답게 건축하였다. 그는 34년 간 이집트를 통치하였다. 그의 무덤은 일찍 도굴 당한 흔적이 있으나, 그의 미이라는 왕의 석관에 그대로 보존되었다(KV35호).
성경에서는 모세를 추방한 바로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에 미디안에서 목동생활을 하던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장면을 보여준다(출 2:23). 이 시기는 투트모세 3세가 세상을 떠났을 때로 모세 역시 미디안 40년의 망명생활을 끝낼 무렵이었다. 이때 모세는 떨기나무에서 불에 타지 않는 신비한 불꽃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는다(출 3:3-22).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왔을 때 모세와 그의 형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가기 위한 협상의 대상자였던 당시의 바로 아멘호텝 2세와 대면을 시작한다.
당시의 아멘호텝 2세는 전차를 동원한 전술의 명수로 군인 정신이 투철한 통치자였다(ML; Bierbrier. The Tomb-builders of the pharaohs. British Museum Press:London(1989)).
무인형의 군주 아멘호텝 2세(일명:Amenopis)는 기원전 1450년경 1차 원정을 아시아로 떠났으며 통치 제7년경(1446 BC)에는 2차 원정을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출정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해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한 해였다. 그렇다면 이 출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기 위한 성경 외의 기록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E.H Merrill, ibid., 76)
아멘호텝 2세를 출애굽 당시의 바로로 추측할 수 있는 상당한 근거는 제18왕조 시대의 대부분 제왕들이 모두 하이집트 델타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테베에 거주하였지만, 특별히 아멘호텝 2세는 하이집트지역 종교수도인 멤피스(Memphis)에 왕도를 정하고 오랫동안 이곳에서 이집트를 통치하였다는 점이다(Hayes, ‘Internal Affairs’ in Cambridge Ancient History, 2.1, 333-34). 이 지역은 고센 땅에 가까운 지역이었으며 모세와 아론은 이 지역에서 통치하고 있던 아멘호텝 2세를 쉽게 찾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출애굽시대를 제18왕조 시대로 보는 또 하나의 증거는 모세가 미디안에서 이집트로 돌아온 사실이다. 모세는 40세가 되었을 때 미디안으로 이주하였고(1486 BC) 목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훈련을 40년 간 받았다. 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의 지도력에 항거하는 10명의 지파 대표자와 대부분의 백성들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온유한 지도자 상은 미디안에서 자신을 버리는 훈련과정을 통하여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출 14:5-19).
아브라함이 말년에 그두라를 통해 낳은 자손(창 25:2)의 후손인 미디안 족속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목민으로 살았다. 이곳에서 모세는 이드로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두 아들인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얻는다(출 18:3-4).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40년 유목생활을 끝낼 즈음 애굽의 새 왕 아멘호텝 2세가 즉위했을 때 그를 이집트로 인도하였다. 강퍅한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이주를 허락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은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을 예비하시고 장자를 죽이는 심판을 내리신다.
이 10가지 재앙은 이집트인들이 섬겼던 다양한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다(첫째 재앙 : 나일강의 피는 나일강의 신 하피(Hapi)에 대한 징계; 둘째 재앙 : 개구리 머리를 한 신 헤크드(Hagt)에 대한 징계; 셋째 재앙 : 이는 공중의 여신 하돌(Hadol)에 대한 징계; 넷째 재앙 : 파리는 공기의 신 슈(Shu)에 대한 징계; 다섯째 재앙 : 가축의 질병은 소의 신 아피스(Apis)에 대한 징계; 여섯째 재앙 :독종은 온역진압의 신 세크멧(Sekhmet)에 대한 징계; 일곱째 재앙 : 우박은 땅의 신 셉(Sep)에 대한 징계; 여덟째 재앙 : 메뚜기 재앙은 메뚜기 재앙을 정복하는 신 세라피스(Serapis)에 대한 징계; 아홉 번째 재앙 : 흑암은 태양의 신 라(Ra)에 대한 징계; 열 번째 재앙 : 장자 심판은 수호신 아몬(Amom)에 대한 징계). 이것은 우상을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었다(출 7:14-11: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선포하시고 홍해를 도강하여 인도하실 그 시기 즈음(1446 BC) 아멘호텝 2세는 네게브 사막을 가로질러 갈릴리 바다 지역까지 출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의 재위 9년째였다(Peter A.Clayton, ibid., 145). 아마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추격하려했던 집념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