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인터넷망으로 촘촘하게 잇기 시작했던 1998년, 미디어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아주 작은 균열이 나타났다. 지금은 미국 AOL타임워너사에 매각된 널소프트사의 음원플레이어 윈앰프의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 샤우트캐스트였다. MP3 음원 파일을 순차적으로 재생해 청취자에게 들려주는 수준이었지만 당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람들은 인터넷 서핑, 게임, 채팅을 하면서 윈앰프 너머에 있는 아마추어 제작자들의 방송을 들었다. 이전까지 제작자와 소비자 사이에 뚜렷했던 미디어의 경계는 그렇게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마저 받지 않는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방송을 제작하고 시청하면서 미디어 혁명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수감동.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특위 위원으로 이곳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바른정당 김성태 의원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구치소 직원들이 위원들을 가로막은 현장 상황을 외부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구치소 직원들은 황토색 나무문 앞에서 위원들과 대치했다. 그 안쪽엔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가 있었다.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속기사는 위원들과의 수감동 동행이 허락되지 않았다. 국회TV 방송용 카메라 1대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당시 특위 위원장이던 김 의원의 스마트폰이 외부와 연결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위원들에겐 카메라와 송신안테나 같은 방송장비가 필요했다. 광장의 촛불이 가장 크게 타올랐던 당시 국민들은 ‘구치소 청문회’에 이목을 집중하고 국회TV 생방송만 기다리고 있었다. 김 의원의 작은 스마트폰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박 의원이 이 스마트폰을 켜기 전까지는 그랬다.
박 의원은 김 의원의 스마트폰에서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한 뒤 ‘라이브’ 버튼을 누르고 수감동 곳곳을 돌아다녔다. 위원들을 가로막은 구치소 직원들, 문 안쪽에 있는 최씨를 향해 “신문에 응하라”고 요구하는 위원들을 촬영했다. 그렇게 3분34초짜리 페이스북 생방송이 시작됐다.
페이스북 생방송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김 의원의 페이스북 계정으로 구치소 현장을 생방송한다는 소식이 타임라인을 타고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200초를 조금 넘긴 짧은 방송시간 동안 10만명 안팎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지켜봤다. 그렇게 누적 시청자 수 78만명을 기록했다.
손바닥 크기의 스마트폰 한 대와 SNS의 인터넷모바일방송 기능을 활용한 결과였다. 박 의원의 페이스북 생방송은 최씨 신문 현장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법 뒤로 교묘하게 숨은 국정농단 세력을 향해 언제 어디서든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인터넷모바일방송이 네티즌의 ‘B급 코드’와 결합한 문화현상을 넘어 사회 모든 분야를 움직이는 미디어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방송은 콘텐츠의 보고다. 최근 지상파 방송까지 장악한 ‘먹방’(먹거리방송), ‘쿡방’(요리방송), ‘겜방’(게임방송), ‘음방’(음악방송)을 이미 10년 전부터 생산하고 있었다. 지금은 정치평론, 인생 상담, 인문학 등 진지한 주제들까지 인기를 끌면서 콘텐츠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컴퓨터 중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인터넷모바일방송을 제작하고 시청할 수 있다. 콘텐츠와 아이디어까지 있으면 유명세를 타고 상업적 성공을 이룰 수도 있다. 유아용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 EBS 어린이 프로그램 보니하니 진행자 이수민양에 이어 새로운 ‘초통령’(초등학생들의 대통령)으로 등극한 도티(본명 나희선)와 잠뜰(본명 박슬기)이 대표적이다.
도티는 2013년 10월 국내 인터넷모바일방송 선두주자 아프리카TV에서, 잠뜰은 2014년 6월 글로벌 IT 기업 구글의 유튜브 라이브에서 각각 인기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즐기고 그 과정을 말로 설명하는 콘텐츠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두 사람은 애니메이션 케이블 채널로까지 진출했다.
특히 도티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스튜디오를 세워 20명 이상의 크루를 거느린 샌드박스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인형과 서적 등 캐릭터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한 경영인으로도 성공했다.
2001학년도 대입 수능에서 상위 0.1%에 해당하는 396점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공부의 신’ 강성태씨 역시 인터넷모바일방송에서 유명세를 얻었다. 2008년 설립한 사회적기업 공신닷컴에서 인터넷 강의를 제작해 아프리카TV 생방송과 유튜브 영상을 무료로 제공한 재능기부로 수험생들의 지지를 얻었다. 먹방이나 겜방이 대부분인 인터넷모바일방송에서 교육과 상담을 콘텐츠로 성공시킨 사례다.
재능이나 흥밋거리만 콘텐츠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현안과 관심사를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콘텐츠다. 대통령 탄핵정국은 광장과 거리를 거대한 인터넷모바일방송 스튜디오로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생방송하며 도심을 활보했다. 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시민들은 채팅으로 토론하고 SNS로 배포해 더 많은 시청자를 불러 모았다. 스마트폰 한 대와 촛불 한 자루로 대통령 탄핵정국을 이끈 주인공들이다.
정계와 대중문화계는 미디어의 새로운 흐름에 발맞춰 변화를 시작했다. MBC는 인터넷모바일방송을 접목한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을 2014년 5월부터 토요일 심야 예능프로그램으로 편성해 4년째 유지하고 있다. SBS는 지난해 6월부터 개그맨 양세형이 유명인을 만나 10분 이내로 짧게 인터뷰하는 모바일 전용 콘텐츠 ‘숏터뷰’로 회당 조회 수 200만건 안팎의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달 11일 강씨의 아프리카TV 개인채널 ‘공부의 신’에 출연해 실시간 채팅으로 청년들을 만났다.
뜨거워지는 경쟁
아프리카TV, 1인 미디어 시대 열며 부동의 선두 지켜… 구글·트위터·페이스북·네이버까지 본격 서비스 나서
인터넷모바일방송은 올해 전국(戰國)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독주하던 국내 선두주자 아프리카TV에 구글과 카카오 등 ‘IT 공룡’들이 하나둘 도전장을 내밀어 판세를 흔들기 시작했다.
인터넷모바일방송의 강자는 여전히 아프리카TV다. 1인 미디어 시대를 열었던 2005년부터 10년 넘게 시장을 개척하며 주도권을 잡은 국내 1위 업체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채널을 돌릴 때마다 등장하는 ‘먹방’과 ‘쿡방’을 방송가의 대세로 만든 콘텐츠의 요람이다.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서 통칭되는 ‘BJ’(Broadcasting Jockey·인터넷모바일방송 진행자), 시청자들이 진행자를 후원하는 유료결제 시스템 ‘별풍선’의 개념을 세우고 수익 모델을 확립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연간 매출 798억원, 영업이익 160억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치다. 연간 순이익은 100억원으로 전년보다 142% 증가했다.
IT 기업들은 아프리카TV에서 검증된 수익 모델을 좇아 투자에 나섰다. 특히 유통망과 자본력을 모두 갖춘 ‘IT 공룡’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카카오는 포털 사이트 다음의 TV팟을 통합한 카카오TV를 18일 론칭한다. 아프리카TV의 ‘별풍선’과 마찬가지로 진행자를 후원하는 유료결제 시스템 ‘쿠키’를 도입한다. 인터넷모바일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실시간 채팅은 자사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과의 연동으로 해결했다.
구글은 지난 8일 자사 동영상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인 유튜브 라이브에 유료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슈퍼챗’을 출범했다. ‘별풍선’ ‘쿠키’처럼 생방송과 실시간 채팅에 유료결제 시스템을 접목했다. 게임방송 인기 진행자 대도서관(본명 나동현)이 ‘슈퍼챗’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네이버 V라이브와 판도라TV 등 국내 업체들 역시 기존 이용자들에게 생방송 서비스를 제공해 시장의 잠재력을 가늠하고 있다. 후발주자들까지 본격적으로 합류하면 인터넷모바일방송의 시장 규모와 경쟁력은 더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글=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모바일방송을 제작하고 시청할 수 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사진은 지난해 12월 26일 서울구치소에서 김성태 의원 페이스북 계정에서 진행된 생방송 화면. 왼쪽부터 박영선 의원, 최순실씨를 기다리는 국정조사특위 위원들, 구치소 직원에게 항의하는 안민석 의원. 김성태 의원 페이스북 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