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新約]강해/메시아 계보 대장정
두 왕의 배도와 결과 (메시아계보대장정31)
바탕본문: 왕들A(왕상) 14:21-24, 연대기B(역대하) 11:13-12:16
우리가 성경에서 봐 온 대로 하나님은 당초 왕정제를 싫어 하셨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의 소원대로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왕정제를 탐하는 것은 곧 참 임금이신 주/야웨님을 저버리는 것으로 해석하셨습니다(슈무엘A=삼상 8:7,8).
이에 따라 판관(사사)시대를 종결하는 동시에 샤울을 초대 임금으로 하는 왕국 시대를 여는 데 중재 역할을 한 슈무엘 자신도, 사실 왕제를 싫어했건만 백성들이 조르고 하나님도 허용하셨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슘A 8장 참조).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는 온전하신 뜻 말고도 허용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성경 도처에서 그런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의 이 메카니즘을 우리는 잘 이해할 필요가 있지요.
야로브암의 배도(背道)
하나님이 아끼시던 슐로모의 후기 배도로 인해 히브리 통일왕국이 불과 3 왕대만에 남/북으로 갈라진 데다 남/북의 왕들이 각각 슐로모의 전철을 밟아 주/야웨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악한 타락상을 보여 충격을 안겨 줍니다.
특히 북국 이스라엘의 야로브암(1세)은 하나님이 일찍이, 특별히 왕으로 배려하여 선임해 주셨건만,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더니 결국 하나님 대신 이교 신을 택해 완전히 정반대로 나가는 철저한 타락상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왕정제가 시작된 지 불과 몇 대 만에 그 옛날 하나님이 미리 경고하신 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슈무엘A=삼상 8:7).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간의 배신이 너무나도 극적인 대비를 이루지요.
성경은 북국 이스라엘의 야로브암 왕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음을 우리는 눈여겨 보게 됩니다.
금송아지를 올려 놓았던 곳으로 보이는 제단
여기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주/야웨 하나님이 다윋과는 달리 후기에 크게 타락한 슐로모 탓에 왕국을 갈라, 본래 정통 왕손도 아닌 일개 건축감독이던 야로브암에게 주시면서 주/야웨님을 바로 섬기는 경건한 군주를 기대하셨다는 점.
그러나 야로브암은 하나님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립니다. 그 역시 옛 전철을 밟아 이교 신 숭상으로써 졸속 왕정을 펼쳐 나갑니다. 오히려 슐로모의 아들인 남국의 레호보암 못지 않게 아니 더 철저히 자진해서 우상숭배를 합니다. (지난 회에서 이미 다룬) 왕들 12:25-33 말고도 13:1-14:20에서 야로브암의 우상숭배와 그 결과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각에서 주창해 온 소위 '열린신학'(open theism)처럼, 주/야웨님의 무능과 앞을 못 내다 보시는 선견지명 '탓'일까요..? 아니지요. 철저히 싸탄의 장난과 인간의 배신이지요. 이렇기에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허용하신 뜻의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세상의 온갖 악을 자아내는 싸탄을 없애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지만 택하신 사람들을 다 구원하시기 까진 당분간은 허용하신 주님이십니다.
여기서..하나님이 앞으로 오가는 세대에 우상숭배와 그 엄정한 결과로써 길이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삼으시려고 기자들로 하여금 야로브암 케이스를 면밀히 해설하게 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의 배도
이것을 오늘날 교계 현실에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점차 캄캄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현대교계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긴커녕 비성경적인 온갖 이상한 영성들을 뒤쫓아 다닌다는 것을 여실히 목격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대로의 기도가 아닌 심리적/이교적인 관상기도(향심기도/호흡기도)를 중심한 영성, 성령님의 이끄심이 아닌 모종의 지구촌적 목적에 휘몰려 가는 '목적'영성,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들 속에 본래 신/하느님이 있다는 범신론적 뉴에이지 영성, 성령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비슷하게 흉내 내어 교계를 크게 오도해 가고 있는 신사도영성, 말인 즉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듯하면서 실상은 비밀집단과 손을 잡고 땅에다 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주권운동(dominionism) 등이 그것입니다.
더구나 이런 이상한 운동과 영성들을 대표하는 소위 '복음주의권'의 교계 명사들이 활개치면서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나 사실은 뉴에이지가 내 건 목표처럼 스스로 신격화 해 가고 있음을 우리는 느낍니다. 특히 요즘 플로리다 부흥의 타드 벤틀리에게서 그런 것을 느끼지요.
이 모두는 확실히 싸탄과 그 졸개인 악령들의 작용이며 결코 성령님의 역사는 아닙니다. 따라서 현대의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모든 영적 활동이 곧 우상숭배이지요. 뿐만 아니라 나날이 하나님보다 가족과 돈, 성 등을 더 사랑하는 풍토도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미국 교계의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돈이나 섹스 탓에 쉽게 타락하여 넘어져 가는 이유도 우상숭배의 일환이고.
이상한 현대 영성들의 배후엔..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인 동시에 인자이시며 유일한 구주/구속자, 참 메시아인 예수 크리스토가 아니라, 온 땅을 하나로 통일하여 다스려 줄 또 다른 '우주적' 메시아, 즉 성경이 예언한 짐승-최고의 적 크리스토-를 기다리는 음모가 도사려 있음을 놓쳐선 안됩니다. 물론, 참 메시아 아닌 거짓 메시아를 향한 우상숭배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오직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 크리스토 외에는 우리에게 참 메시아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라도 거짓 메시아를 받아 들이면 안됩니다.
아무튼..
본 시리즈는 당초 계획 대로 메시아 계보 중심으로 펼쳐 나가야겠기에 직접은 메시아와 무관한 야로브암 왕에 대해선 간략히 다루고 메시아 선대의 한 명인 레호보암을 주로 다룹니다.
짧아진 통치기간
샤울/다윋/슐로모 등은 평균 40여년씩 비교적 장기간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슐로모의 아들인 레호보암은 현저히 짧아진 17년을, 또 "영구적인 나라"를 약속 받았지만 기대에 어긋난 야로브암은 22년간을 각각 통치합니다.
그 주된 요인을 우리는 넉넉히 짐작합니다. 더욱이 통치기간만으로도 큰 교훈을 삼게 됩니다. 그 결과 레호보암을 이어 왕이 된 슐로모의 손자 아비얌(=아비야)은 아버지보다 선한 군주였지만 아버지 탓에 불과 3년을 통치합니다!
그런데도 이후 지속된 분열왕국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시 장기집권하게 되는 왕이 없진 않습니다. 예컨대 선조 다윋처럼 주/야웨님만 섬기고 선정을 베푼 유다 왕 아사(41년)는 조부 레호보암보다 훨씬 더 오래 왕위를 지킵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말기의 불순종을 제외하곤 비교적 선했던 유다왕 우씨야(52년)가 그렇지요.
왕국시대를 통틀어 최장기 집권한 왕은 유다의 마나쎄 왕(55년)입니다. 이것은 마나쎄가 좋은 왕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히즈키야(히스기야)가 훌륭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나쎄는 아버지와는 달리 긴 통치기간 내내 우상숭배를 지속하더니 그 아들 아몬왕의 집정은 2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왕국시대 동안 통치기간이 가장 짧았던 왕은 기껏 1주일을 왕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지므리 왕이었습니다.
참고로..분열왕국 시대 군주들의 수는 남/북 각 19명씩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통일왕국은 112년, 분열 후 먼저 망한 북 이스라엘은 209년, 남 유다는 북 이스라엘보다 136년을 더 지탱해 왕국시대의 전체 길이는 457년입니다.
유다 왕 레호보암이 북 이스라엘의 야로브암과 거의 같은 시기에 즉위했으면서도 오히려 야로브암보다 통치기간이 짧은 것은 아버지 슐로모와 그 자신의 죄 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부모의 죄악은 후대와 무관하다고들 생각하지만 성경을 잘 읽어 보면 이것은 늘 반드시 그렇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레호보암의 배도
지난 회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성경 기자들은 레호보암의 어머니 나아마가 암몬 출신임을 재차 강조합니다(연대기B 12:1, 13). 암몬족이 우상숭배의 중요한 한 근원임을 암시합니다. 슐로모가 우상숭배를 하던 주된 요인이 이방 여성들을 대거 아내로 맞아 들인 탓이며 나아마는 그 한 사람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왕들'A/B 서(왕상/하)는 이스라엘의 야로브암왕에 비해서는 유다의 레호보암 왕에 대해 그다지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왕들'의 기록자가 이스라엘 중심으로 기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언뜻 갖게 합니다. 거기 비하면 비슷한 내용인 연대기는 레호보암에 관해 퍽 상세히 기록해 놨습니다(특히 연대기B 11:13-12:14). 즉 '왕들'과 중복된 내용이 많으면서도 유다 왕국 중심입니다.
즉, 마치 4권의 복음서들처럼 '왕들', 연대기 두 책이 서로 합해 균형을 이룬다는 점을 느낍니다.]
1. 슐로모의 전철을 밟은 레호보암
레호보암 왕 통치 17년간을 보면, 흡사 아버지 슐로모의 40년 치적의 축소판 같은 느낌입니다.
초기 약3년간은 그런 대로 괜찮았습니다. 특히 야로브암의 우상숭배와 제멋대로의 사제 선임에 질려버린 북쪽 거주 사제들과 성전 사역자들, 그리고 그들을 따라 오로지 야웨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들이 아예 남하하여 예루샬렘에서 거주했을 동안 이들이 유대 나라를 도와 레호보암을 강성하게 해 줬지요.
그래서 유다 백성들이 믿음과 평화 가운데 지냈습니다(연대기B 11:13-17).
그러나 나라가 견고해지자 레호보함은 이내 슐로모의 후반기처럼 주/야웨님의 율법을 버립니다. 왕만 그런 게 아니라 온 백성이 왕을 본땁니다. 여기서 주목해 볼 사실은 레호보암이 이렇게 되자, 유다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도 이를 본받았다는 점입니다(12:2). 한 군주의 범죄는 이렇게도 영향력이 컸습니다.
레호보암은 줄곧 100% 악했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회개하고 스스로 겸허해지기도 합니다. 비록 잠시 뿐이었습니다만.
2. 레호보암 왕가의 면모
우리 레호보암의 삶을 좀 더 상세히 살펴 봅시다.
슐로모의 독자(?)여서 외로웠던 탓인지, 레호보암은 짧은 기간에 많은 아내와 자녀들을 두었습니다. 왕비 18명, 후궁 60명을 얻어 그들로부터 아들 28, 딸 60명을 낳습니다. 레호보암이 언제부터 결혼했는지는 성경이 밝히지 않으나 아마도 즉위 초기 3년간도 결혼하느라 바쁘지 않았나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는 우선 할아버지인 다윋의 후손인 마할랕과 짝을 이룹니다. 매우 가까운 근친간 결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마할랕은 다윋의 손녀인 동시에 다윋의 형 엘리압의 외손녀였습니다.
그러나 레호보암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는 훗날 결혼한, 압샬롬의 딸 마아카였습니다. 역시 다윋의 후손이지요. 결국 28명의 왕자들 가운데 마아카가 낳은 아비얌(아비야)이 왕세자가 됩니다. 레호보암의 아내들은 왕의 처신과 우상숭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렴풋이 짐작 가는 것은 왕의 주변엔 슬기로운 옛 은퇴 신복들의 충고도 없지 않았을 것이기에 슐로모처럼 이방 여인을 많이 구하진 않았으리라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내 하나님과 율법을 저버립니다.
레호보암은 자녀들을 비교적 슬기롭게 다룹니다. 즉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벤야민의 모든 주요 도시에 보내어 흩어 살게 하고 풍부한 양식과 함께 아내들을 많이 얻게 합니다. 이것은 조부인 다윋 왕대에 여러 왕자의 난이 일어났던 역사적 불행과 야로브암의 배신 등의 전철을 피하려는 계산도 있었겠지만, 그 옛날 아브라함이 서자들을 적절히 처우했던 것도 연상시킵니다(창 25:1-6).
또 가장 총애하던 마아카 왕비와 함께 마아카의 아버지 압샬롬 등 다윋 시대 '왕자의 난' 이야기도 나누면서 자문을 받았을 법 합니다.
전쟁시대 재개
레호보암의 배도의 결과 이내 평화가 깨지고 전쟁과 패배가 옵니다.
슐로모 집정기 40년간 전무후무한 평화시대를 이뤘던 이스라엘은 이제 다시 수시로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아버지의 처가 격이었던 미쯔라임(에집트) 왕가의 쉬샼이 예루샬렘을 침공해 들어 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레호보암-아비얌, 북쪽의 야로브암 대에 계속 남/북 간 전쟁이 잦아집니다.
미쯔라임(에집트) 후기 왕조 시대의 파라오 의장 행렬
주/야웨님은 과거로부터 전쟁이란 시련을 통해 신앙을 연단하시면서 아울러 당신께서 전쟁에 능하신 승리의 신이심을 입증하시곤 합니다. 지금도 주/야웨님은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미리 이기셨을 뿐더러 늘 하나님의 온몸무장(전신갑주), 하나님의 말씀, 예수 크리스토의 이름과 보혈, 성도의 기도, 간증들을 통해 우리에게 안보와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레호보암 왕이 범죄하자 불과 즉위 5년만에 미쯔라임 대군이 쳐들어 옵니다. 그 규모는 전마차(병거) 1200대, 기마병 60,000이 기본이고 미쯔라임에서 따라 나온 리비야/수콭/쿠쉬 족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았습니다.
미쯔라임 왕 쉬샼은 슐로모 당시 구축했고 레호보암 대에 재강화한 15개 요새를 비롯한 유다의 여러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면서 마침내 수도 예루샬렘을 포위했습니다.
미쯔라임 군을 이끈 파라오 쉬샼은 과거 북쪽 이스라엘의 왕 야로브암이 슐로모의 칼날을 피해 망명 생활을 할 때 보호해 준 사람이기도 합니다(왕들A 11:40).
주/야웨님의 사랑과 유보적 보호
그러나 하나님은 레호보암과 유다를 멸망시키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다윋에게 언약하신 굳은 약속이 있는 데다 레호보암 자신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선대의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수도가 포위된 위기 가운데 왕과 유다족 지도자들이 모이자, 하나님은 대언자 쉐마야를 통해 미쯔라임 군대의 침공 이유를 매우 분명하고도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 복잡한 긴 설명을 달지 않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버렸기에 나도 너희를 버려 쉬샼의 손에 붙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버리면 하나님은 싸탄과 그 졸개들의 손에 일시 붙이실 수 있습니다. 늘/영원히 우리를 버리시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유의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하신 말씀이었지만, 레호보암과 귀족들은 새삼 놀라움과 두려움에 심장이 덜컹하는 듯한 심경으로 즉각 깨닫고 뉘우치는 마음을 갖습니다.
"주/야웨님은 의로우십니다."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시 인자하십니다!
왕과 귀족들의 이 한 마디에 한때나마 진노하셨던 님의 마음은 다시 따스해져서 모두 멸망시키시지 않고 어느 정도 유보하시기로 하십니다. 특히 예루샬렘을 다 망하게는 하지 않고 일시 미쯔라임에 종이 되게 하여 일부 손상을 허용하십니다. 시샄의 종들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열국을 섬기는 것이 어떤지를 맛보게 하시기 위함이지요.
파라오 시샄은 예루샬렘을 침공해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몽땅 앗아 가면서 슐로모가 만들어 놓은 빛난 금 방패들도 죄다 빼앗습니다. 아깝지요! 그래서 레호보암은 나중에 의전용 놋 방패로 대체합니다.
[이 금방패는 슐로모가 세입금으로 받아 들인 금 666탈렌트의 일부로 큰 방패 200개,작은 방패 300개를 제작했습니다(왕들 10:16-17). 큰 방패 하나의 제작엔 금 600쉐켈(약1370kg), 작은 방패는 그 절반 규모가 들어 갔습니다. 이 방패는 전쟁용이기보다 시위용(노래들의노래=아가 4:4) 또는 의전용(왕들A 14:27-28)이었다고 추정됩니다. 한 영화에서는 이 방패가 반사하는 빛으로 적을 막는 것으로 연출되기도 합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유보적인 태도는 성경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다른 예로, 오가는 역사에 사특하기로 유명한 북국 이스라엘의 왕후 예제벨(이세벨)의 남편인 아하브 왕이 하나님 앞에 모처럼 겸허해 질 때 하나님이 인자를 베푸시기도 합니다(왕들A 21:27-29).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가 회개할 때도 큰 인자를 베푸십니다.
말씀에 신실하시기 때문이지요(미출 34:6).
참고 자료:
쉬샼(Shishak)은 누구?
지금도 에집트엔 유다/이스라엘을 침공한 흔적인 듯한 벽화 등 몇몇 고대 문서가 남아 있다. 쉬샼이라고 추정되는 파라오는 에짚트 제22왕조를 세운 쇼셍크 1세, 라메세스 2세, 또는 투트모세 3세라는 등 다양한 학설이 있다.
1. 쇼셍크 1세?
쉬샼이 쇼셍크(세숑크/샤샹크 등 발음이 다양함) 1세라는 학설로 가장 유력한 설. 1828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샹포이옹이 이탈리아의 이폴리토 로셀리니 교수와 함께 에집트를 방문, 테베에 있는 카르낰 신전의 부바스테 벽에 그려진 파라오 헤즈케페레 세테펜레 쇼셍크 1세의 전승기념 부조(릴리프)를 연구했다.
왕이 적을 치는 모습의 주변엔 작은 사람 모양의 170개 타원형 속에 그의 즉위 제20년에 정복한 여러 도시 이름들이 있다.
샹포이옹은 제29번째 고리 속 이름을 y-w-d-h-m-l-k 즉 '예후다하말렠'(유다왕국)으로 읽었다. 또 106번 고리는 '다윋 고원지대'(시온?)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때부터 [쉬샼=쇼셍크]란 공식이 굳어져 갔다.
그러나 W. 맥스-뮐러는 1888년 고리 29번의 이름은 '야 하멜렠' 즉 '왕의 손'-기념비/석비로 읽어야 한다고 풀이했다. 무명의 통치자가 세운 유다왕의 기념비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 실제로 '야드하멜렠'이란 곳이 남 유다가 아닌 북 이스라엘에 있다.
에집트 제22왕조를 세운 쇼셍크는 동부 삼각지대인 리비야-부바스테 계열 출신. 그후 약200년 미쯔라임을 다스린다. 선왕 프세우센네 2세의 사위가 되어 미쯔라임 전군 사령관으로 힘을 길렀다. 강한 통치자인 그는 테베/타니까지 모두 통합해 단합된 에집트를 만든다.
만약 그가 정말 쉬샼이라면 아마도 당대 최강급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이룩한 슐로모의 부국강병(富國强兵) 정책에 자극 받았을지도 모른다. [슐로모가 죽자 호시탐탐 유다를 엿보던 그가 마침내 분열 왕국이 되고 나서 북상/침공하게 됐고 과거 야로브암을 보호하고 키워 준 것도 이런 호기를 노리고였는지도 모른다는 추정.]
그러나 쉬샼이 쇼셍크 1세라면 몇 가지 중요한 의문이 떠오른다. 학자들에 따르면, 쇼셍크는 당시 유다 왕국으로 진입하지 않고 북쪽 국경으로 에둘러 갔다. 쇼셍크의 진짜 침공 목표는 예즈레엘/요르단 계곡이었다. 즉 야로브암의 이스라엘을 친 셈이 된다.
만약 그가 쉬샼이라면 왜 유다를 침공하지 않고 자신이 보호자가 되어 주고 자기와 사돈 간이기도 한 야로브암의 나라를 쳤을까? (야로브암은 파라오의 아내의 여동생과 결혼함) 어불성설이다. 바로 이 점에서 쇼셍크 1세설은 힘을 잃고 있다.
전승기념 부조에 나타난 쇼셍크가 정복한 카나안 마을 이름들: 가자/마케다/루부티/아얄론/키랴타임(?)/벹호론/기베온/마하나임/샤우드/아도라임/하파라임/레홉/벹샨/슈넴/타낰/메기또/아다르/헤벨(?)/호님(?)/아루나/보림/야드하멜렠/같파달라/야마/벹아루마/케크리/소코/벹아푸아/예라자/아다르/아라드/아인파란.
여기 예루샬렘은 빠져 있지만, 기념비가 상한 부분도 있어 포함됐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다윋 고원'이 사실이라면 예루샬렘의 시온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지명은 후대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데이빋 롤 등 반대학자들은 쇼셍크의 이름의 'n' 발음은 근동 쉠족들 가운데서 생략되지 않고 소리내는 것이란 점을 지적한. 팔레스타인 여러 곳에서 'n' 발음이 들어 간 쇼셍크의 전승비가 발견됐다. 따라서 쇼셍크를 구태여 '쉬샼'으로 바꿔 부르기란 쉽지가 않다는 것. 일부 학자들은 쇼셍크를 왕들B 17:4에 나타난 파라오 '소'로 한다.
2. 라메세스 2세(?)
에집트학 학자 데이빋 롤의 학설.
훗날 피터 제임스도 따랐지만 다른 라메세스를 찾기도 했다.
제19왕조의 라메세스 2세는 예루샬렘을 침공한 적이 있다. 매우 큰 군대를 동원했다. 그의 통치령은 리비야와 쿠쉬의 땅을 포함했기에 연대기B 12:3 기록과 맞아 떨어진다.
바위에 깎아 새긴 신전 부조에 따르면, 라메세스는 즉위 제8년만에 유다의 산간도시를 대대적으로 침공한다. 목표물은 언덕 위에 있는 커다란 요새 도시(즉 예루샬렘). 그 시민들은 전형적인 카나안식 의상을 입었고 통치자(레호보암?)는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라메세스와의 화해를 상징하는 향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보다 3년전 라메세스는 북쪽의 옛 영토를 되찾기 위한 5년간의 전쟁을 시작한다. 이에 따라 쉬리아(아람)와 유다 등은 맞설 준비를 한다.
라메세스의 이름은 S+모음+S+모음의 형태로 자주 나타난다. 그래서 '시사'로 발음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에집트 인명/지명의 'S' 발음은 흔히 히브리어에 흔한 'Sh' 발음으로 철자된다. 예: 모세>모쉐. 그래서 '시샤'로 발음될 수 있다.
히브리 기자들은 흔히 외래어에다 히브리어 식으로 나름의 의미를 주느라 일부를 약간 바꾸기도 했다. 따라서 시샤 대신 쉬샼(=히브리어로 '침공자')으로 바꿨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 라메세스 설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전통적으로, '아부 심벨' 신전 건립자요 네페르타리의 남편인 라메세스 2세는 이스라엘의 미쯔라임 출국(출애급) 당시 파라오였다는 기존 학설이 있어 왔다. 그러나 고대 왕조의 정확한 연대는 계산하기란 쉽지 않다. 모세 때의 파라오로는 무려 13명의 후보가 있다!
또 한 가지는 왜 미쯔라임 출국기에서 '라메세스'(출1:11)라고 불렀는데 몇 세기 한참 뒤인 여기서는 '쉬샼'으로 불렀냐는 것. 그런 의문점을 남긴다.
3. 투트모세 3세?
신왕조들 중 제18왕조의 파라오 투트모세의 이름('Horus Name') 한 가지는 쉬샼이라는 추정이 있다.
[체세르카우라는 이름인데, 쉐세르카우-쉬세르카-쉬샼이라는 풀이.
아름다운 하쳎숱 여왕의 의붓아들이기도 한 투트모세 3세는 이른 바 '카데쉬(한글성경 가데스) 정벌'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과정은 레호보암 왕 때 쉬샼의 정벌과정과 거의 동일하다. 그의 도시 정벌 과정은 앞서 논한 쇼셍크 1세의 과정과도 흡사하다.
투트모세 3세
[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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