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rael 성지순례[성화사랑]/북부 이스라엘

다볼산(Mount Tabor), 변화산, 주 변모 대성전, 승천전 사명주신 산

영국신사77 2015. 4. 17. 21:55


다볼산(Mount Tabor), 변화산, 주 변모 대성전.....,승천전 사명주신 산

성화사랑 2014.01.01 11:01

 

다볼산 (Mount Tabor)(출처-http://www.stad.com/index.php?city_id=295223#photos ) 

 

다볼산(Mt. Tabor)은 이즈르엘 골짜기에 위치한 해발 588m의 종모양을 한 산이다.  

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이전에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이 있었고(마가 8:27-30과 그 병행) 

이어서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마가 8:31-33)가 뒤따른다. 


마가복음 8:31-33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후 

거룩한 변모의 산에 이르기까지 

마가와 마태복음에 따르면 ‘엿새’가 걸렸고, 

누가복음에 따르면 ‘여드레’가 걸렸다(마가 9:2; 마태 17,1; 누가 9:28). 


그러니까 북쪽 가이샤라에서 도보로 

6일 내지 8일간 내려오셨다는 것이 된다. 


마태와 마가복음은 ‘높은 산’이라고 했고 

누가복음은 그냥 ‘산’이라고 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느 산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갈릴리 지방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산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그 산의 이름을 몰랐거나, 

아니면 그 산을 구체적으로 거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거룩한 변모 후에 

“그들은 거기서 떠나 갈릴리를 지나서”(9:30), 

가버나움으로 갔다(마가 9:33; 마태 17:24). 


아마 그들은 그 산을 떠나 갈릴리 지방으로 되돌아 간 것 같다. 

반면 누가는 거룩한 변모 후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고 전한다(9:51). 


이렇게 볼 때 

다볼산은 갈릴리 바다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 

나사렛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평지에 우뚝 솟아있는 산으로, 

그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어느 방향으로든 아름다운 풍경을 잘 볼 수 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다볼산은 ‘하르 타볼’ 즉, ‘높은 산’이란 뜻이다. 


동쪽으로는 요르단 강 계곡과 골란 지방, 

남쪽으로는 넓고 탁 트인 이즈르엘 평야와 사마리아 산악지대, 

서쪽으로는 나사렛과 갈멜산, 

북쪽으로는 눈 덮인 하얀 헬몬 산을 중심으로 한 갈릴리 산악지대를 볼 수 있다. 


다볼산 정상에는 1921년에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서기 4세기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에 세운 예수님의 변화(마태복음 17장의) 기념교회가 있으며,

또한 그리스 정교회의 엘리아 기념교회도 위치하고 있다. 

또한 주위에는 십자군 시대의 성벽과 건물의 유적이 있다. 

특히 개신교에서는 이 산을 변화산이라고 통칭해 부르기도 한다.


베드로후서 1:16~18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Sacred Mountain)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다볼산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사진 왼쪽이 다부리야(Daburiyya) 마을이며, 다볼산을 중심으로 그 위쪽은 쉬브리-움 마을이다.(오른쪽 능선 아래를 따라)

 

다볼산(출처- http://bibleatlas.org/full/mount_tabor.htm)

 

다볼산(출처- http://www.openbible.info/geo/photos/en-dor)

 

다볼산(출처-http://www.stad.com/index.php?city_id=295223#photos )

 

마태복음 17:1∼4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다볼산(출처-http://www.stad.com/index.php?city_id=295223#photos )

 

다볼산(출처-http://www.stad.com/index.php?city_id=295223#photos ) 

 

다볼산(출처-http://www.stad.com/index.php?city_id=295223#photos )

 

다볼산(출처-http://www.stad.com/index.php?city_id=295223#photos )

 

다볼산(출처-http://www.stad.com/index.php?city_id=295223#photos )

 

다볼산(출처-http://www.stad.com/index.php?city_id=295223#photos )

 

다볼산(Mount Tabor) 주 변모 대성전(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79) 

 

다볼산(Mount Tabor) 주 변모 대성전(출처-http://www.panoramio.com/photo/64514901 ) 

 

타보르 산은 높은 산과 주위 평야지대로 이루어진 지형때문에 

행글라이더들이 선호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쉬브리-움 베두인 마을


산 아래에는 두 개의 아랍 마을이 있는데 

북동쪽에는 쉬브리-움(Shibli-Umm)과 서쪽으로는 다부리야(Daburiyya)가 위치해 있다. 

쉬브리-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 군을 도와 싸운 베두인 출신 사람들이다. 

1948년 골라니 여단(Golani Brigade)이 다볼산을 점령했을 때 

다른 부족들은 모두 시리아와 요르단으로 도망쳐갔지만 

쉬브리-움 부족은 그대로 남아 이스라엘 군을 도왔고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 정부는 

다볼산 아래에 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마을을 만들어 주었다. 

다볼산에 오르기 위해서 순례자들은 쉬브리-움에서 작은 승합차로 갈아타야만 한다. 

다볼산으로 오르는 도로는 폭이 좁고 굴곡이 심해서 대형 차량은 올라갈 수 없다. 

일반 승용차는 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버스가 올라가기엔 길이 너무 좁고 굴곡이 심하다.

                                (이하 글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이즈르엘 평원(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정상에 오르면 확 트인 이즈르엘 평원의 화려한 경관을 볼 수 있다. 

멀리 남동쪽으로는 사울 왕의 비극적인 최후를 간직한 길보아산이 보이며, 

아풀라로 향하는 도로 왼쪽 ‘모레산’(Har More) 자락에는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기적을 베푼 ‘나인’(루카 7,11-17) 마을이 있으며 

아풀라 너머로 이즈르엘 평원과 카르멜 산 능선이 만나는 곳에는 므기또 언덕(2열왕 23,29 등)이 있고

멀리 갈멜산 능선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서북쪽으로는 나자렛 언덕 능선이 바라보인다.

 

다볼산에 오르는 길(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다볼산에 오르는 길(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다볼산(타보르 산) 정상 요새 성벽과 도면(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왼쪽 화살표는 다볼산 아래 마을로 이어진 도로이며 

1.바람의 문  

2.하산 경당  

3.그리스 정교회 엘리야 성당  

4.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순례자 숙소/몬도 엑스 공동체  

5.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유적지(베네딕도회 수도원)  

6. 거룩한 변모 대성전  

 


다볼산 전경, 왼쪽이 프란치스칸 소유 대성당, 오른쪽은 그리스정교회 소유

 

성당 근처에는 ‘멜키세덱의 동굴’이 있다. 

전승에 의하면 살렘 임금 멜키체덱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아브람은 조카 롯이 잡혀가자 다마스쿠스 북쪽에 있는 호바까지 쫓아가서 

빼앗긴 모든 것을 되찾아 돌아올 때 

살렘 임금 멜키체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이곳에서 맞이하였다고 한다.(창세 14,17) 

 

다볼산은 또한 전통적으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 사명을 부여한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마태 28:16-20).  


 제자들에게 할 일을 분부하시다

 마태복음 28:16-20 (막 16:14-18눅 24:36-49요 20:19-23행 1:6-8)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바람의 문(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산 정상에 오르면 

13세기 무슬림들에 의해 지어진 육중한 성곽의 흔적인 “바람의 문” ’이 우뚝 솟아 있다. 

바람의 문을 들어서면 양옆으로 잘 가꾸어진 나무들 사이를 통과해서 쭉 들어가면 

다볼산 정상 주차장에 이르고, 

철문을 들어서면 넓은 수도원 마당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다볼산 

정상 수도원 입구까지는 대략 3.2km이다.



 

바람의 문 안쪽(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1213년 다마스쿠스(Damasco) 술탄의 아들 말릭 엘-무아잠(Malik 디-Muàzzam)은 

산 정상을 요새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먼저 그리스도교의 잔여물인 성전과 수도원을 말끔히 없애고 

산 정상에 서쪽으로 향해서 길이 580m, 남북으로 너비 250m나 되는 육중한 요새를 건설하였다. 

두 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산 정상을 올라서면서 만나는 ‘바람의 문’이 그 중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대성당 뒤쪽에 도랑만 남아있다. 

동쪽에 있는 성문은 깊은 도랑을 판 후 물이 채워진 도랑 위에 닫고 열 수 있는 다리를 만들었고, 

서쪽에는 20 × 15m나 되는 거대한 망루가 있는 성문을 만들었다. 

이 성문은 지금도 다볼산 정상을 거의 올라서서 다볼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바람의 문’(Gate of the Wind, 아: bab al-Hawa)이라고 부른다.

 

바람의 문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수도원 입구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순례자 숙소/몬도 엑스 공동체           (이하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순례자 숙소/몬도 엑스 공동체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순례자 숙소/몬도 엑스 공동체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순례자 숙소/몬도 엑스 공동체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순례자 숙소/몬도 엑스 공동체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순례자 숙소/몬도 엑스 공동체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순례자 숙소/몬도 엑스 공동체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유적지(베네딕도회 수도원)>

 

 

주 변모 대성전 입구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구석기 시대       (이하 사진, 글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타보르 산은 오트만 터기 제국이 통치하기 이전에는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우거진 숲이었지만 터키 제국 시기 동안 대부분의 나무들은 잘려 수탈되었다. 

오늘날의 타보르 산 모습은 이스라엘 건국 후 유대인 기금에 의해서 가꾸어진 것으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 등 풍부한 식물군과 동물군으로 뒤덮여진 타보르 산은 

태고적부터 거룩한 산으로 알려져 왔다. 

타보르 산 동쪽의 경사진 면에서 1925년에 고고학 발굴 작업이 수행되어 

초기 구석기시대와 구석기 시대 중기(8만-4만 년 전)의 도구들이 발견 되었다. 

안정된 주거 환경을 이룬 것은 구석기 이후 즉 중석기 시대(3만 5천년-1만5천년)이다. 

 

구약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처음 도착하기 이전에 산 정상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의 성소가 위치해 있었다. 이 성소의 흔적은 변모 대성전 중앙 제대 아래에 있는 경당의 바닥에서 볼 수 있도록 발굴해 놓았다. 현재 대성당 중앙 제대 아래 아름답게 모자이크화 되어 있는 경당은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기념 경당이 있던 자리인데 한쪽에 가나안 시대에 제사를 지내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유리 바닥을 통해서 들여다 볼 수 있다. 

대성전에 들어서면 바로 바닥에 격자모양의 쇠창살을 볼 수 있는데 이 계단을 통해서 고고학 발굴을 해 놓은 중앙 제대 아래의 발굴 장소로 들어갈 수 있다. 

타보르 산이 성경에서 처음 언급되는 것은 

여호수아에 의해 열두 지파에게 땅이 분배될 때이며 

즈불룬 지파(여호 19,12), 이사카르 지파(여호 19,22) 그리고 납탈리 지파(여호 19,34)의 경계였다. 

그리고 판관기에 언급되는데 ‘판관 드보라와 그의 장수 바락’(판관 4,1-16 참조)의 이야기 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자 

주님께서는 하초르를 다스리는 가나안 임금 야빈의 손에 스무 해 동안 이스라엘을 억압하게 하였다. 

그러나 여예언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있을 때 ‘바락’으로 하여금 야빈의 장수 시스라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장면이다. 판관 4,6ㄷ-7 “자, 납탈리의 자손들과 즈불룬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만 명을 데리고 타보르 산으로 행군하여라. 그러면 내가 야빈의 군대 장수 시스라와 그의 병거대와 그의 무리를 키손천으로 끌어내어 네 손에 넘겨주겠다.” 예레미야는 이집트 땅을 치려고 하는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위용을 산들 중에서 타보르 산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고 바닷가에서는 카르멜과 같은 자라고 언급하고 있다. 예레 46,18 내가 살아 있는 한 ─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신 임금님의 말씀이다. ─ 산들 가운데에서는 타보르 같고 바닷가에서는 카르멜 같은 자가 반드시 쳐들어온다. 그 외 타보르의 참나무(1사무 10,3), 타보르에 펼친 그물(호세 5,1)과 시편에서는 타보르 산이 헤르몬산과 견주어 하느님의 이름을 환호하는 내용으로 언급된다. 시편 89,13 북녘과 남녘을 당신께서 만드시니 타보르와 헤르몬이 당신 이름에 환호합니다.

 

신약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구약성경에서는 여러 곳에서 타보르 산이 언급되고 있지만 신약성경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사도 앞에서 거룩한 변모를 하셨는데 당신의 거룩한 신성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옷을 입고 모세와 엘리야 예언자와 이야기를 나누셨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산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다만 ‘높은 산’(마태 17,1 ; 마가 9,2)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루카복음에서는 ‘산’(루카 9,28)이라고 간단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마태 17,1-9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사도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그러나 사도시대에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전승에 의하면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3, 알렉산드리아의 성서학자이며 주석가. 교부. 알레고리 해석의 대가. 하늘나라 때문에 고자가 된 사람들에 관한 말-마태 19,12-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스스로 고자가 됨) ‘타보르 산이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하신 산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공경하는 장소’라고 언급하고 있다. 오리게네스와 체사리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339. 최초의 그리스도 교회사가. 주교)는 시편 88,13을 주해하면서 언급 하였고, 예루살렘의 치릴루스 주교(Cyrillus Hierosolymitanus, 315?∼397. 성인.주교.교회학자)는 그의 대표작인 '교리문답서'에서  “주님께서는 타보르 산에서 거룩하게 변모 하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 곁에 나타났다”고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유다 항쟁 동안 타보르 산은 갈릴래아의 유대인 저항군의 교두보였다. 제1차 유다 독립항쟁(66-70년) 때 요세푸스 플라비우스(Josephus Flavius, 37/38 예루살렘-100경 로마. 예루살렘의 귀족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유대인 제사장·학자·역사가)는 갈릴래아 군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로마군이 제일 먼저 갈릴래아를 공격할 것임을 예견하고 타보르 산 정상을 비롯하여 갈릴래아 주변 19개 지역에 성벽을 구축하였고 갈릴래아 지역 혁명군들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훗날 로마의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9-79, 69부터 79까지 황제가 되어 통치) 총사령관은 그들보다 더 훌륭한 책략가였다. 유다 항쟁군들이 산에서 내려가 항복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로마군을 치려는 책략에 속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쫓기는 것처럼 이즈르엘 평원으로 유인 하여 유다 항쟁군 대부분을 진압하였다. 그들 일부는 다시 타보르 산으로 피신해 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파괴 되었다. 후에 결사대의 거점이 된 요타파타로 피신한 요세푸스는 요새를 지키려고 애썼지만 47일 만에 함락되자 40명의 결사대원은 항복하기보다 자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유대 율법에 의하여 자살할 수 없었으므로 제비를 뽑아 순서대로 곁에 있는 동료를 죽이기로 하였는데 요세푸스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남았을 때 상대방을 설득하여 로마군에 항복했다. 갈릴래아는 67년에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포로가 된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아누스가 곧 황제가 될거라는 예언을 하였고,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된 후 자유의 몸이 되어 역사 편찬 작업을 시작한다.

 

비잔틴 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기념하는 첫 번째 건물은 비잔틴 시대인 4세기 말경에 세워졌다. 이태리의 한 익명의 순례자는 570년에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에게 봉헌된 3개의 경당이 타보르 산 정상에 세워져 있다고 전하고 있다. 실지로 670년 경 성지순례를 한 아르쿨포(Arculfo) 주교는 많은 수의 수도자들이 경당에서 전례를 거행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성당은 670년 이후 아랍 군대에 의해 파괴 되었다. 

 

아랍-십자군-아랍 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아랍-십자군-아랍이 지배하는 긴 세월 동안 타보르 산은 그의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번갈아가며 정복되고 요새화 되고 파괴되는 곳이었다. 1099년 십자군들은 거대한 대성당과 부속 건물로 베네딕도 수도원을 건설하였다. 갈릴래아의 왕자인 탄크레디(Tancredi)는 막대한 수입을 제공하였고 거룩한 성소를 수도자들에게 맡겼다. 문헌 자료에 의하면 타보르 산에 나자렛의 보좌주교가 살았다고 전한다. 타보르 산은 순례의 목적지이기도 했지만 번창하는 그리스도 문화와 영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성전과 수도원은 요새화된 성곽으로 보호 되었다. 1113년 아랍군은 타보르 산 정상을 기습 공격하였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모두 학살당하였고 성전과 수도원은 파괴되었다. 그 후 수도자들은 성전과 수도원을 재건하기 위하여 되돌아왔다. 1183년 살라딘(Saladin, 1137/1138-1193, 이집트·시리아·예멘과 팔레스티나에 강력한 왕국을 세운 쿠르디스탄 술탄)의 지휘 하에 공격을 받았지만 파괴에서 모면하였고, 오히려 근처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의 성 엘리아 성당과 수도원은 보호받지 못하고 파괴 되었다. 그러나 1187년 십자군들이 티베리아 근처 ‘하틴의 뿔’(The Horns of Hattin) 전투에서 대패를 당한 후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위험 속에 노출되었고 결국은 타보르 산을 포기하고 떠나야만 했다. 1213년 다마스쿠스(Damasco) 술탄의 아들 말릭 엘-무아잠(Malik 디-Muàzzam)은 산 정상을 요새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먼저 그리스도교의 잔여물인 성전과 수도원을 말끔히 없애고 산 정상에 서쪽으로 향해서 길이 580m, 남북으로 너비 250m나 되는 육중한 요새를 건설하였다. 두 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산 정상을 올라서면서 만나는 ‘바람의 문’이 그 중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대성당 뒤쪽에 도랑만 남아있다. 동쪽에 있는 성문은 깊은 도랑을 판 후 물이 채워진 도랑 위에 닫고 열 수 있는 다리를 만들었고, 서쪽에는 20 × 15m나 되는 거대한 망루가 있는 성문을 만들었다. 이 성문은 지금도 타보르 산 정상을 거의 올라서서 타보르 산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바람의 문’(Gate of the Wind, 아: bab al-Hawa)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장소에 요새를 건설하는 것은 유럽 그리스도교 지배자들을 격노하게 하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 의한 제5차 십자군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타보르 산을 수복하는 것이었다. 인노첸시오 3세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라센인들이(무슬림들)이 타보르 산 위 대성전 터 위에 요새를 건설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치욕”이라고 표현하면서 성전수복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헝가리아의 왕 안드레아 2세는 1217년 11월 십자군을 파견하여 타보르 산을 포위하고 12월에 수많은 사다리를 이용하여 공격하였다. 그렇지만 타보르 산을 수복하지는 못하였다. 무슬림들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그토록 소중한 성지 위에 요새를 짓고 차지한다는 것은 마찰과 자극의 요인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 계기가 되어 결국 요새를 해체하기로 결정하였다. 10년간의 휴전(1229-1239) 후 독일의 페데리코 2세(Federico II)는 협상 끝에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타보르 산을 소유할 수 있도록 협상을 이끌어내었다. 타보르 산에 다시 그리스도인들이 돌아왔지만 파괴된 엄청난 잔여물들로 뒤덮여진 십자군들의 성역을 복구하기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작은 기도소를 건설하였지만 이것도 짧은 기간 동안만 유지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263년 중동지역을 다시 장악한 맘룩 왕조(Mamluk dynasty)의 바이바르스 1세(Baybars I, 1223-1277)가 그리스도인들이 지은 모든 성전을 파괴할 것을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타보르 산 위에는 거의 4세기 동안 건물이 파괴된 잔여물들만이 뒤덮여 있게 되었고 몇몇 극소수의 용감한 순례자들만이 찾는 곳이 되었다.

 

베네딕도회 수도원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유적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타보르 산 위의 프란치스칸들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자렛과 예루살렘의 프란치스칸들은 가능한 한 주님의 거룩한 변모의 산에 오르곤 하였다. 그러나 타보르 산에서 전례를 거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적으로 산 아래에 살고 있는 ‘다부리아’(Daburyah) 무슬림 주민들에게 달려 있었다. 특별히 통치자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반감의 정도에 따라 크게 달랐지만 허락을 받았을 경우에도 프란치스칸들은 호의적으로 통행세를 지불해야 했다. 1631년 이슬람의 통치자(Fakhr ed-Din)는 이태리 토스카나 지방의 시돈 영사인 프란치스코의 배려와 함께 성지관구장의 탄원을 받아들여 타보르 산 정상을 프란치스칸들에게 증여하였다. 이러한 증여에도 불구하고 지역 무슬림 주민들의 적대감은 지속 되었다. 1634년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 베르니에로(P.Verniero)의 연대기에 “프란치스칸들은 타보르 산에 거주하고 또 순례자들이 쉬어갈 작은 숙소를 짓기를 희망 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무슬림 주민들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적대감을 표출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644년 지역 주민들은 프란치스칸들과 순례자들이 타보르 산 위에서 전례를 거행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타보르 산의 입구를 막고 차단하기까지 하였다. 서서히 적대감은 완화되었고 프란치스칸들은 그들의 타보르 산 정상에서 자유롭게 순례자들과 함께 다양한 전례를 거행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1854년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 산 정상의 파괴된 잔해물 위에서 고고학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스 정교회 지역과 프란치스칸 지역에서 발굴 작업이 진행 되었는데 그리스 정교회 지역에서는 4-5세기의 경당을 발굴하였다. 1858년 8월 6일 예수님 변모 대축일을 계기로 하여 첫 번째 프란치스칸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경당과 부속 건물을 짓기로 결정을 했지만 지역 무슬림들의 반대 투쟁 때문에 그 후 오랜 세월동안 소유권을 행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더구나 전염병이 돌아 공사는 중단되었고 그 후 더 이상 재개되지 못하였다. 1875년 파괴된 무슬림들의 요새를 비롯하여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굴 작업이 재개되었고 베네딕도 수도원의 잔해와 십자군의 대성전, 무슬림들이 만든 동쪽 성문 등이 확인되었다. 1924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이 산의 정상에다가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기념성당을 건립했다. 주님변화교회는 경이로운 산과 특색 있는 교회의 조화로 성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중의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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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0) 

 

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0) 

 

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0) 

 

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0) 

 

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1858년 8월 6일 예수님 변모 대축일을 계기로 하여 첫 번째 프란치스칸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경당과 부속 건물을 짓기로 결정을 했지만 지역 무슬림들의 반대 투쟁 때문에 그 후 오랜 세월동안 소유권을 행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더구나 전염병이 돌아 공사는 중단되었고 그 후 더 이상 재개되지 못하였다. 1875년 파괴된 무슬림들의 요새를 비롯하여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굴 작업이 재개되었고 베네딕도 수도원의 잔해와 십자군의 대성전, 무슬림들이 만든 동쪽 성문 등이 확인되었다. 1924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산의 정상에다가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기념성당을 건립했다.  이즈르엘 평야에서도 타보르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대성전을 볼 수 있는데 현재의 대성전은 1919년 10월에 짓기 시작하여 1924년 비오 11세 교황의 사절로 온 지오르지(Giorgi) 추기경에 의하여 축성되었다. 대성당은 바를루찌(Barluzzi)에 의해 완공되었다.  

 

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0) 

 

 

베네딕도회 수도원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유적지

 

베네딕도회 수도원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유적지

 

베네딕도회 수도원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유적지

 

베네딕도회 수도원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유적지

 

< 거룩한 변모 대성전- 프란치스칸 소속 > 

 

주 변모 대성전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거룩한 변모 대성전 동쪽편의 모습

 

거룩한 변모 대성전 동쪽편의 모습

 

대성전 입구 위쪽에 씌여진 마태오 복음에 의한 거룩한 변모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중앙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비잔틴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뒷면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1) 

 

대성전 좌편 마리아 소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대성전 좌편 마리아 소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대성전 우편 프란치스코 소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대성전 우편 프란치스코 소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대성전 우편 프란치스코 소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대성전 우편 프란치스코 소제대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82) 

 

거룩한 변모 대성전 내부

 

중앙제대와 지하경당

 

중앙제대

성당 정문을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성당 정면 중앙에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하시고 양 옆에 모세와 엘리야가 구름을 타고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는 것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보고서 깜짝 놀라는 화려하게 수놓은 모자이크가 들어온다.  대성당은 아치형으로 만든 두 줄의 기둥으로 삼등분 되어 있는데 중앙제대를 바라보고 왼쪽은 성모님께 봉헌한 제대가 있고 오른쪽은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봉헌한 제대가 있다. 중앙 제대 바로 아래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아담한 경당이 있다.

 

주 변모 모자이크화

 

성모 제대

대성당은 아치형으로 만든 두 줄의 기둥으로 삼등분 되어 있는데 중앙제대를 바라보고 왼쪽은 성모님께 봉헌한 제대가 있고 오른쪽은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봉헌한 제대가 있다. 중앙 제대 바로 아래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아담한 경당이 있다.

 

성모 제대

 

성모 제대

 

중앙 제대 바로 아래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아담한 경당이 있다. 

 

지하 경당

 

대성당 중앙에서 12계단을 내려가면 중앙제대 바로 아래에 동굴처럼 되어 있는 경당이 나오는데 이곳은 비잔틴 시대에 3번째 경당이 있었던 곳이며 이후 십자군 시대의 경당이 지어졌지만 무슬림들에 의해 파괴된 곳이다. 경당의 바닥에는 십자군 시대의 경당이 있었던 흔적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제대는 십자군 시대의 성당 잔해물들로 만들었다.

 

지하 경당 모자이크화

 

중앙 제대 아래에 있는 이 경당에서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제대 위 원통형 천장에 만들어 놓은 모자이크이다. 대성당 중앙 제대 위쪽에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신비를 모자이크화 하였다면 이 작은 경당에는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 생애에서 주요 신비의 모습을 네 가지로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다.

 

지하 경당 모자이크화

제대를 중심으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중앙에는 예수님과 그리고 좌우로 모세와 엘리야를 천사의 모습으로 표현하여 탄생에서부터 부활까지의 신비를 거룩한 변모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신비를 천사의 모습으로 표현하면서 변모를 목격하고 있는 세 제자를 모자이크에 넣지 않은것은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우리들이 하느님의 신비를 목격하고 있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뵐 수 없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거룩한 성사를 통해서 주님의 집에서 영원히 함께 머물고 있음을 네 개의 모자이크는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성탄의 신비와 성체성사의 신비

 

성탄의 신비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는 아기 예수의 성탄의 신비를 표현하고 있다.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체성사의 신비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하여 당신 몸을 내어주시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표현하고 있다. 중앙에 있는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계신다.

 

지하경당 제대 유리화 

 

제대 뒤편은 색유리와 창살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공작새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다. 성전 중앙 제대는 구원의 방향인 동쪽을 향해 나 있으며(에제 47,1) 아침 햇살이 떠오르면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불멸을 상징하는 공작새 너머로 구원의 신비를 표현하고 있는 모자이크를 눈부시게 비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초막을 지어 주님과 함께 머무르고 싶어 했던 베드로 사도의 마음으로 타보르 산 수도원 숙소에서 머물고 이른 아침 이 경당에 조용히 앉아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맞이할 수 있다면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주님의 곁에 있는 느낌을 더욱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하경당 제대 유리화 

 

구원의 신비, 부활의 신비 (제대 오른쪽)

 

구원의 신비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희생양이 되신 수난과 죽음의 신비를 세 천사들 앞에 피를 흘리고 죽어있는 어린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활의 신비


예수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심을 관을 딛고 선 예수님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모세 경당, 엘리야 경당- 대성전 양쪽 두 종탑>

 

거룩한 변모 대성전 두 종탑 ,  성당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좌우로 모세의 경당과 엘리야 경당이 있다.

 

모세 경당

 

성당 입구 정면 양쪽은 두 개의 종탑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모세와 엘리야에게 봉헌한 경당이 있는데 이곳은 비잔틴 시대에 모세와 엘리야에게 봉헌한 경당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이다.

 

모세 경당 

 

모세 경당의 제대 위에는 모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프레스코화로 표현하고 있다.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 산(탈출 20장)이 뒤에 보이고,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을 보여주신 불타는 떨기(탈출 3,1-6), 그리고 왼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하며 주님을 시험하였다. 그러자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한 ‘마싸와 므리바의 물’(탈출 17,1-7)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엘리야 경당

 

엘리야의 경당도 비잔틴 시대에 있었던 경당 자리위에 지은 것으로 경당 바닥과 벽면에서는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제대 위쪽에 있는 프레스코화에는 엘리야가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1열왕 18,20-40참조). 엘리야는 홀로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과 대결을 하는데 황소 한 마리씩 각각 잡아 기도 하여 불로 대답하는 신이 있으면 바로 그분이 하느님이 되는 것이었다. 바알의 사제들은 한낮이 지나도록 아무런 대답이 없어 번제물이 그냥 남아 있다. 반면 엘리야는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열두 개의 돌을 가져다가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고 그 둘레에는 깊은 도랑을 팠다. 엘리야는 번제물 위에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 세 번씩 부어 도랑에 물이 넘쳐흐를 정도로 적시고 나서 하느님께 기도하자마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을 사르는 장면이다.

 

엘리야 경당

 

<하산 경당>

 

하산(下山) 경당


거룩한 변모 대성당에서 ‘바람의 문’을 향하여 내리막길에 들어서기 전에 바람의 문 조금 못미처 왼쪽으로 프란치스칸 소유의 작은 경당이 하나 있다. 이것은 ‘하산(라-discendentivus) 경당’이라고 부르는데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실 때에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목격한 제자들에게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분부를 기념하는 경당이다.

“마가 9,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하산(下山) 경당

 

하산(下山) 경당

 

<그리스 정교회 소속 엘리야 성당> 

 

그리스 정교회 성당


타보르 산 정상에 이르러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1911년 엘리야 성인에게 봉헌한 그리스 정교회의 성당과 수도원이 나온다. 가파르나움(공생활의 중심지)과 카파르 카나(혼인잔치의 첫 기적)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처럼 이곳의 성당도 붉은 둥근 지붕 모습을 하고 있다. 1183년 십자군들이 하틴의 뿔 전투에서 패한 후 살라딘은 타보르 산을 공격하였다. 이때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성곽 안에 있었기 때문에 정복할 수 없었지만 성곽 밖에 있었던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은 모두 파괴되고 수도자들은 학살되었다. 현재의 성당은 살라딘에 의해 파괴된 자리 위에 1862년에 다시 지어진것이다.

 

그리스 정교회 성당

 

그리스 정교회 성당 주 변모 화

 

그리스 정교회 성당 입구 

 

성당 내부

 

내부 천장화

 

 

 

  

 

 

 

내부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