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십자가의 길(Via Dolorosa)

★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김상원 신부>

영국신사77 2014. 8. 4. 05:40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김상원 신부-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은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이것은 초대 교회시대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골고다까지 걸으면서 

기도드렸던데서 유래한다.


이 기도는 특히 작은형제회[Ordo Fratrum Minorum,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는데, 

1688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11세

(B. Innocentius XI, 코모, 1676.9.21;10.4-1689.8.12​)는 

이 수도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했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이 기도를 바치는 자에게 전대사(全大赦)를 허락하였다.


*프란치스꼬회의 공식명칭은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이다.

 이 명칭은 바로 프란치스칸 영성을 요약해 주고 있다.

 작음(minoritas)과 형제애(fraternitas)를 바탕으로해서 복음적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1694년 교황 인노첸시오 12세(Innocentius XII, 베노사, 1691.7.12;7.15-1700.9.27) ​는 

이 특전을 확증했으며, 

1762[1726년,?]년 교황 베네딕토 13세(Benedictus XIII, 그라비나, 1724.5.29;6.4-1730.2.21) ​는 

모든 신자들이 이 특전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1731년 교황 글레멘스 12세(Clemens XII, 피렌체, 1730.7.12;7.16-1740.2.6)​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14처로 고정시켰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신심은 전세계에 퍼져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기도로 

특별히 사순절에 널리 행해지고 있다. 

성당이나 그 밖의 공적(公的)인 기도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사제와 함께 단체로 행해진다.

 

각 처를 순례하듯 옮겨가는 것이 원칙이나 

단체로 할 때는 대표만 움직이고 

다른 분들은 움직이지 않고해도 무방하다. 

각 처마다 정해진 기도문과 함께 

주의 기도·성모송·영광송을 외며 묵상한다.


십자가의 길은 

5-7세기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드론 계곡을 지나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을 거쳐 

골고다로 이르는 길을,

 

이후 이슬람이 통치하는 8-12세기에는 

지리적이고 정치적인 제약을 받게 되자, 

시온산에서 골고다의 길을,

 

그리고 오늘날 순례자들이 행하고 있는 십자가의 길은 

1294년 그 위치가 대충 설정되었다.

 

그 후 1540년경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에 의해 

오늘날 십자가의 길이 확정되었다. 

즉, 안토니아 요새(제 1,2처)에서부터 골고다(제10처-14처)까지 

그 사이에 일곱 개의 장소(제3처-9처)를 적절하게 만들어,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게 했다.


 

십자가의 길 중에서 복음서에 근거를 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처(마태 27:22-26), 

제2처(요한 19:16-17), 

제5처(마태 27:32), 

제8처(누가 23:28-31), 

제10처(요한 19:23-24), 

제11처(요한 19:18), 

제12처(마태 27:50), 

제14처(마태 27:58-60)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회)가 관리하고 있는 경당은 2처, 5처, 7처이다.


십자가의 길을 알리는 벽의 안내판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하신 교회.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채칙질 당하신 교회[Flagellation(채칙질),

현재 작은형제회의 성서대학)의 담벽에 붙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하신 교회(Flagellation, 교회 왼쪽은 작은형제회 성서대학)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하신 교회 맞은편(현재는 아랍 학교)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십자가의 길을 시작한다.

 

 

       제 1처 : 예수님께서 사형선고 받으심




십자가의 길을 하고 있는 순례객들...2처를 지나고...

오른쪽이  리토스트로토스. 석판으로 깔린 포장도로가 있는 수녀원.

저 멀리 사진 중간부분에 교회 탑이 보이는데, 이것이 작은형제회 성지관구 관구본부 수도원 종탑임.



멀리 성지관구 종탑이 보임.십자가의 길은 좌회전해야 되고, 꺽이는 부분에 3처가 있음.

제 3처 :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


3처는 아르메니안 가톨릭 소유로 작은 경당이 있는데, 
이곳에서 매일 성체조배와 강복이 있음


3처 경당 내부


3처에서 4처로 가는 길.바로 왼쪽에 4처가 있음.

 

                제 4처 :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



제 5처 :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

왼쪽 길로 곧장 가면 통곡의 벽이 나오고, 십자가의 길은 오른쪽길로 간다.



5처의 작은 경당. 작은형제회에서 관리.

5처 제대.

5처에서 6처로 향하는 언덕길.

 

            제 6처 :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림






  6처는 예수의 작은 자매회에서 관리.

 베로니카의 수건에 찍혀진 예수님의 얼굴이 최초의 이콘이라고 하는데, 

여기 수녀님들은 이콘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6처.

6처의 담벽

6처 경당 내부

교황 바오로 6세의 방문 기념

 

 

          제 7처 :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번째 넘어지심



6처에서 쭉 올라가면 바로 T자 형의 도로가 나오는데, 바로 직진하면서 맞은편이 7처.

7처:작은형제회에서 관리하는 작은 경당

7처 내부의 제대.

7처 제대.

7처 경당.

제 8처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심

7처에서 왼쪽길로 향해서 바로 오른쪽 언덕길로 올라가면 8처가 나옴.

 8처에서 쭉 올라가면 작은형제회 성지관구 관구본부가 나옴.

9처는 올라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

7처에서 왼쪽 방향의 길로 조금 더 가면 9처로 가는 길이 나옴.


  9처로 들어 가는 길. 앞의 십자가 있는 지붕은 성묘교회.

 

 

 제 9처 :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



9처는 콥틱 정교회 앞에 있다. 

콥틱 정교회 성당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이디오피아 정교회 마당이 나온다.



콥틱 정교회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

콥틱 정교회 현판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소박함이 물씬 풍겨오는 에디오피아 정교회의 수도원 마당이 나온다. 


이 마당 오른쪽에 성묘교회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가 나온다.

가난하고 소박한 에디오피아 정교회의 교회.

성묘교회 광장으로 나오는 출구.에디오피아 정교회 교회로 들어가는 문...

성묘교회 정면 오른쪽에 있다.


순례객들이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십자가.

 

 

 

  제 10처 :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신 곳



10처부터 13처까지는 골고다 언덕에 있음.

 

 

            제 11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제 12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제 13처 :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심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염한 곳. 

 

 제 14처 :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제 15처 : 예수님께서 부활하심

 

 

 

혹자는 "인간 존재는 버림받고 내던져진 존재"라고 한다. 

짖눌려 오는 삶의 무게 속에서 좌절하고 있는 인간 실존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이 지고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은 남의 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인간 존재가 버림받고 내던져진 존재일지라도 

그 외롭고 고독한 인생길에서 우리는 어머니 품같이 따뜻한 성모님과 같은 이웃들을 만나고, 

짐을 대신 짊어져주는 시몬을 만나며, 

내 가련한 처지를 동정하는 예루살렘의 부인들과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길은 외롭지만은 않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미 부활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출처 원문: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