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십자가의 길(Via Dolorosa)

비아 돌로로사 (The Via Dolorosa, 십자가의 길)<성화>제1-8지점

영국신사77 2014. 8. 1. 23:31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 , 체포에서 장사까지의 길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다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갈보리)까지 걸어간 길이다. 

사자문을 들어서면 성안나 교회가 있고, 바로 앞에 비아 돌로로사의 출발점인 '채찍질의 교회'가 있다. 

매를 맞으며 걸어가던 예수가 수난을 당한 14곳에, 십자가의 길이라는 예배소가 설치되어 있고, 

그 중 10~14번째는 성묘 교회(예수님 무덤성당) 안에 있다. 

 

십자가의 길 14처 지점 

 

제1지점 :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가 재판을 받은 곳.

제2지점 :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제3지점 :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제4지점 : 예수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제5지점 :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제6지점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7지점 : 예수가 두번째로 쓰러진 곳.

제8지점 : 예수가 여인들을 위로한 곳.

제9지점 : 예수가 세번째로 쓰러진 곳.

제10지점 : 예수가 옷 벗김을 당한 곳

제11지점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

제12지점 :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제13지점 : 예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14지점 : 예수가 묻힌 곳

 

십자가의 길 14처 지점 

 

비아 돌로로사 시작 지점 

 

1. 십자가의 길 제1처소-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가 재판을 받은 곳 

 

안토니아 요새(빌라도법정, 안토니아 성)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위 사진은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제2성전시대 예루살렘 대성전 모형이다. 

사각형 건물이 대성전이며 오른쪽 뒤쪽에 4개의 탑이 있는곳이 안토니아 요새이다. 

헤로데(기원전 37-4년 재위)는 기원전 37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한때 하스몬가의 요새가 있던 ‘바리스(성)’ 자리에 후원자 마르코스 안토니우스에게 경의를 표하여 

기원전 31년에 가장 전략적인 자리인 예루살렘 대성전(현 회교 대사원) 북서쪽 즉 성전 벽의 모퉁이에 요새를 세우고 

‘안토니우스’에게 헌정하였기 때문에 ‘안토니아 요새’라고 부른다. 

약 50m 높이의 암석 위에 세운 이 요새는 자연적인 방어 능력이 없는 성전 북쪽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하였고, 

헤로데 군사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성전 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도록 했다. 


안토니아 요새는 내부 폭이 약 120×45m였고 스파르타식 군대 막사는 없었다. 

군사용 부속건물 외에 호화스런 주거지와 목욕탕이 있었다. 

요세푸스는 ‘그 장엄함이 마치 왕궁처럼 보였다’(유다 전쟁사 5.5.8)라고 보고한다. 

이 성은 유다전쟁(66년)때 전소, 파괴 되었고, 70년 티투스 황제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 

이 안토니아 요새 자리에는 현재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고, 

바로 맞은편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엑체호모 시온 수녀원 

그리고 바로 그리스 정교회의 ‘예수님 감옥’ 수도원이 있다.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마태 27,27-28)” 

 

                                                안토니아 요새(빌라도법정, 안토니아 성)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 장로들과 의논하여 결국 죽이기로 결정하고 

사형 선고의 권한이 있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갔고(마27:1-2), 

빌라도는 망설이다가 군중들의 함성에 못이겨 사형 선고를 내리게 되었다. 


빌라도의 법정이 어느 곳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상반된 주장들이 있다.  

그 중 당시 헤롯의 궁에 빌라도가 머물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여 법정도 그 안에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당시 총독관저로 사용하던 하스모니아 궁전에 법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학자들에겐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의외로 공식적인 순례지로 정해진 곳은 예루살렘 성전 북서쪽 모퉁이 외곽에 위치해 있던 

로마군 주둔지인 안토니오 요새이다.  

이것은 1540년경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서

 안토니오 요새로부터 골고다까지 약 340m의 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 '슬픔의 길'이란 뜻)로 정하여 성지로 삼은 것이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 온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채찍을 맞으며 가셨던 그 길을 기념하기 위해 

지금도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가 되면 

빌라도 법정 자리였던 엘 오마리오 학교 마당에서부터 십자가 행진이 시작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제들이 주관하여 진행되는 이 행진 가운데는 

종종 큰 십자가를 손수 메고 따라가는 순례자들도 눈에 띄인다.  


십자가의 길에는 모두 14곳의 장소가 정해져 있는데 

각 장소에 이를 때마다 잠시 머물러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  

제 1, 2 장소는 츨발점이 빌라도 법정이고, 

제 10 - 14 장소는 골고다에 있는데 이곳엔 현재 성묘 교회가 위치해 있다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 (빌라도법정), 

              철책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이 공식적인 십자가의 길을 할때 1처가 시작되는 곳이다.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 (빌라도법정),

(출처- http://www.palestineremembered.com/GeoPoints/Jerusalem_5175/Picture_12025.html)

 

2.  십자가의 길 제2처소(선고교회) -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가시관을 쓰고, 채찍에 받으시며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2 처

 

2처  

 

                     엑체호모(에케호모) 아치,  “자, 이 사람이오”(라틴어로 Ecce Homo) "


1855년 예루살렘에 온 라티스본 신부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게 하는 ‘엑체호모 아치’를 보고 크게 매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 ‘엑체호모’ 아치가 

그리스도께서 빌라도의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나서 

가시나무 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끌려 나왔고’(요한 19,1-5참조), 

이 때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예수님을 보이며

 “자, 이 사람이오”(라틴어로 Ecce Homo) 라고 말하였던 곳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2년후인 1857년 아치와 폐허가 된 북쪽의 땅을 시온 수녀회의 부지로 구입하였고, 

11년후인 1868년 수도원과 성당을 완공하였다. 


시온 수도회에서는 1931-33년과 1934-37년 두 차례에 걸쳐 고고학 발굴을 하였는데, 

‘아치’(요한 19,5)와 석판으로 깔린 포장도로인 ‘리토스트로토스’(요한 19,13)를 발굴 하였고,

이곳이 바로 안토니아 요새가 있었던 빌라도 총독의 법정자리(마태 27,2)라고 확신 하였다.  

 

에케호모수도원 지하실 입구 '리토스트로토스' 안내판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아무런 죄목을 찾지 못하였지만 

성난 군중들의 성화에 못 이기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재판석에서 예수님을 넘겨 주었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로토스는 히브리 말로 가바다(가빠타)라고 한다.(요한19:13)”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


 '돌 판'이란 뜻으로 로마시대에 도로나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바닥에 깔았던 큰 돌판을 말한다.  

요한복음 19장 13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할 때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다고 했는데, 

이 박석이 곧 리토스 트로토스이다.  


오늘날 빌라도 법정 자리에 위치해 있는 시온 수녀원 지하에는

 발굴된 돌판 바닥의 일부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사람이나 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을 파놓은 것과 

로마군인들이 장난으로 새겨놓은 장기판 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 , 예수님 십자가 성화 

 

                     작은형제회 수도원(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겟세마니 동산에서 성 스테파노 게이트(사자 게이트)를 통과해서 조금 걷다보면 

오른쪽에 작은형제회 수도원이 나온다.

 이곳은 현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감옥’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곳인데 

수도원 안에는 ‘채찍성당’과 ‘사형선고 성당’이 있고 

1927년에 설립된 ‘프란치스칸 성서대학’과 박물관이 있다.

(현재 ‘그리스도의 감옥’이라고 부르는 곳은 

조금 더 지나 시온 수녀원 건물과 맞닿아 있는 곳에 그리스 정교회에서 기념 성당을 가지고 있다.)  

 

                                                                                 채찍성당        

 

작은형제회 수도원을 들어가서 오른쪽 작은 건물이 '채찍성당' 이다. 

‘채찍 성당’은 예수님께서 채찍을 맞으셨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곳 위에 지어졌다. 

중요한 유적들이 남아 있는 이 중세풍의 성당은 한때 마구간(1618년)이었고 직물점이기도 했다가 

그 후에는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38년 이집트 출신 작은형제회원인 이브라힘 파샤(Ibrahim Pasha)가 

‘바비에른’의 공작인 ‘막시밀리안’(Maximilian, Duke of Bavaria)이 기증한 돈으로 이 땅을 구입하였고, 

1839년 예배의 장소로 복원 하였다. 


그 후 1927-29년에 12세기 풍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단장 하였다. 

채찍 성당에서 두드러진 것은 제대를 중심으로 3개의 창문이 있는데 

‘채찍질을 당하는 예수님’(마태 27,26), ‘손을 씻는 빌라도’(마태 27,24) 

그리고 바라빠의 승리’(마태 27,21)가 색유리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마태 27,26)” 

 

                                                                채찍성당 출입문, 채찍

 

                                                                    채찍 성당 내부 

 

                                                    채찍 성당내부  제대 위 중앙 쿠뽈라 

 

                                                 채찍 성당내부 감실,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채찍성당 제단 중앙의 유리화


돌기둥에 묶여 채찍질을 당하는 예수님’(마태 27,26),  

이 돌기둥의 일부는 현재 무덤성당 발현경당 오른쪽에 모셔져 있다 

 

                        사형선고 성당(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채찍 성당’을 나와 회랑을 조금 걷다보면 

왼쪽에 있는 것이 ‘사형선고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리토스트로토스’가 시작되는 곳으로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곳이다. 

사방 10m의 정사각형의 구조인 성당은 

1903-4년에 작은형제회 고고학자인 벤데린 기에르릭(Br. Vendelin Gierlich of Mandel)이 발굴 작업을 하였는데 

성당 동쪽 끝에 내민 반원 부분에 비잔틴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폐허가 된 이곳에서 이슬람 사원의 미랍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데, 방향을 알려주는 움푹 파인 형태의 구조물)이 발견되어 

한때 이곳에 작은 이슬람 사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형선고 성당 중앙제대 


제대 중앙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주며 손을 씻는 장면이고, 

제대 왼쪽은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결박당한 채 끌려가는 모습이며, 

제대 오른쪽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이시다. 

성당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정면은 십자가의 길 4처에서 성모님과 예수님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다.  

제단 정면 양쪽에 있는 예수님 상 아래에는 비잔틴 시대의 성당 유물을 볼수있다.  

 

                        제대 중앙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주며 손을 씻는 장면

 

예수님께서 걸어 내려오고 있는 계단은 '거룩한 계단'(Santa Scala)라고 합니다. 

이 계단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에 의해서 로마로 옮겨갔고,

 현재는 라떼라노 대성전 옆에 위치한 '싼타 스칼라'(Santa Scala)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싼타 스칼라 성당을 순례할땐 아래 계단부터 28개가 되는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가는것이 순례 전통입니다.

“빌라도는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마태 27,24)

 

                                    제대 왼쪽,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결박당한 채 끌려가는 모습

 

                                  제대 오른쪽,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   

 

Via Dolorosa between the second and third Stations

(출처- http://www.palestineremembered.com/GeoPoints/Jerusalem_5175/Picture_12022.html)

 

 3. 십자가의 길 제3처소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3처  

 

3처  

 

3처    (출처- http://www.palestineremembered.com/GeoPoints/Jerusalem_5175/Picture_12094.html)

 

3처, 예수께서 첫번째로 쓰러지신곳

 

3처  

 

                                           제 3처소 기념 교회의 내부

 

밤새 심문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시고 쓰러지실 때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의 성화가 교회 정면에 그려져 있다. 

십자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우리들의 죄로 인한 무게였으리라                                    

 

  4. 십자가의 길 제4처소 - 예수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4처  

 

4처  

 

4처

 

4처  

 

4처 

 

이 곳은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81년에 교회를 만들었고 

입구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만남을 조각해 놓았다.                

 

   5. 십자가의 길 제5처 -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The Via Dolorosa 5처      (출처- http://www.palestineremembered.com/GeoPoints/Jerusalem_5175/Picture_12021.html)

 

5처   

 

5처

 

이 곳은 골고다를 향해 올라가는 시작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다(마 27:32, 눅 23:26). 

이 교회는 1895년 카톨릭에 의해 지어졌다.

 

 5처

 

5처 

 

회내부에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우리의 죄는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다 속량을 받았다. 

이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쁨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아야할 것이다.

 

6. 십자가의 길 제6처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 6처     (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이 곳은 예수님께서 피와 땀을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실 때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아 준 것을 기념하는 자리에 

1895년 비잔틴 시대의 수녀원이 세워졌다

 

6처

 

수녀원 안에 모습이다.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이 여인에 대해서는 그 이름이 밝혀지지 않지만 

열두 해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나음을 입은 여인(막5:25-34)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7. 십자가의 길 제 7처소 예수가 두번째로 쓰러진 곳

 

7처   

 

예수님은 이곳에서 두번때 쓰러지신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75년에 카톨릭에서 구입하여 Schoolof the Arts and Crafts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가 예수님시대에 예루살렘성의 서쪽 문이 있던 곳이다. 

이곳을 나가면 서쪽 영문밖이 된다. 

그 곳에 골고다 언덕이 있었다

 

7처소 교회안의 모습

 

이제 성밖으로 나가게 된다. 

여기서 다시 쓰러지심은 예수님을 성밖으로 내치는 상황이었을까? 

쓰러지신 예수님이 조각되어 있다.

 

  8. 십자가의 길 제8처소 예수가 얘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한 곳

 

8처,

 

이 지점은 돌벽에 라틴 십자가와 희랍어로 "NIKA = 예수님은 승리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슬피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곳을 기념하는 곳이다. 

지금은 희랍 정교회 벽으로 되어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