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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회장 "미국 시민권 버리고 오라는 건 한국이 손해"

영국신사77 2012. 6. 23. 00:22

 

남문기 회장 "미국 시민권 버리고 오라는 건 한국이 손해"
제3회 월드코리안 리더스 포럼서 특강
2011년 03월 22일 (화) 12:24:38 이재경기자 wk@worldkorean.net

 

 

 

 

 

"미국 대학에 다니는 한인학생들이 11-12만명에 이릅니다. 아이비리그에 해당하는 명문대학에만 1만3천명입니다. 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인 교수들만 3500명입니다.”

 

남문기 미주총연 회장이 강연에서 “미국내 한인 실력이 막강하다”고 설명한다.


“비즈니스 실력도 대단합니다. 미국에 16만개의 한인 기업이 있습니다. 중국계 기업이 23만개인데 비하면 대단하지 않나요”

 

이렇게 소개하는 그는 이 모두가 1902년 인천 월미도에서 불과 100여명이 이민을 떠난 이래 불과 100여년 사이에 이뤄진 성과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고종황제가 가장 잘 한 일이 미국에 이민을 보낸 것이라고 말이지요”

 

남문기회장은 21일 본지가 주최한 ‘제3회 월드코리안 리더스포럼’에 강사로 초빙돼 강연을 했다.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3차 포럼에는 설증혁 미주총연 부회장, 유주열 전 나고야 총영사, 고찬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서종환 한반도선진화재단 글로벌네트워크 위원장 등 40여명이 참여했다.

 

남문기 회장의 얘기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성공하기까지의 고생담으로 이어졌다.


“LA공항에 내렸을 때 수중에 300불이 있었습니다. 미국이민자들은 미국시장을 개척한 첨병역할을 했지만, 이처럼 미국에 올 때는 돈 없이 무장해제 당한 채 왔어요.”

그는 청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메인티넌스라고 해서 뭔지 모르고 갔어요. 가 봤더니 청소더라고요. 건국대 법대와 대학원을 마치고 와서 청소를 하자니 부끄러웠지만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 같은 노력끝에 지금 미국에서 한인 최대의 부동산 중개업 체인점인 뉴스타부동산을 만들고, 다양한 관련 기업을 설립한 그룹사로 발돋움시켰다는 것이다.


“저는 돈을 정말 벌려거든 머리를 깎고 화장을 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마니 옷에 뉴스타 브랜드를 새리라고 합니다. 그 정도 투자를 해야 제대로 일한다는 각오가 되는 거지요”

 

그는 미국에 한인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하고, 나아가 대통령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한국계 대통령이 나와야 된다고 강조한다.

 

“미주동포가 한국에서 국회의원 하자니까, 한국에서는 미국 시민권을 버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한국만 손해입니다. 미국이 해야 하는 걱정을 한국이 하는 거지요”


이날 남회장은 강연 후 “나는 아직 성공에 목마르다” 등 자신의 저서들을 참석자들에게 선물했다.

 

 

About...

 


 

월드코리안신문이 주최하는 월드코리안리더스 포럼 제3회 행사가 3월21일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3층 백두회의실에서 열린다. 동아일보 건물 인근에 있는 건물이다.

 

강사로 초빙된 남문기 미주총연 회장은 미국 LA 한인회장과 상공인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250만 미주한인을 대표하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건국대 법대와 대학원을 마치면서 1982년 도미한 그는 현지에서 청소부로 시작해 한인최대 뉴스타 부동산 그룹을 만들어낸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이다.

 

“솔직히 청소일 하면서 창피하게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요”

 

그는 건대 법대시절 학생회장을 지냈다.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경영학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힘든 일에 부닥칠수록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한 게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청소 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공부했다. 그래서 1987년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1988년 9월 캘리포니아 가든그로브의 뉴스타 부동산 회사.

 

그는 하루에 30명의 고객을 만났다고 한다. 하루 일정은 출근하는 차 안에서 설계했다. 우선 발로 지역을 익혔다. 고객의 관심사에 따라 집을 소개했다. 고객에게 집 보는 요령도 알려줬다.

 

쾌활한 성격의 그에게는 부동산 일은 천직이었다. 한번 만난 고객은 친척과 친구를 소개했다. 함께 하겠다는 부동산 중개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캘리포니아에만 지사가 20여개로 늘었다. 워싱턴과 뉴욕 등 동부지역에도 진출했다. 현지 이들 지역의 뉴스타 부동산에서 일하는 에이전트만 900여명에 이른다. 여기에 직원까지 합하면 뉴스타 부동산의 우산아래 일하는 한인들이 1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부동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들도 여러개 세웠다. 에스크로회사만 5개에, 부동산 학교는 6개를 두고 있다. 뉴스타 부동산 학교를 통해 배출된 한인에이전트는 1만여명에 달한다.

 

인터넷 마케팅을 담당하는 정보통신회사(www.newstarrealty.com) 을 비롯해 광고기획사, 보험, 경매회사, 투자그룹, 장학재단도 운영하고 있다.

 

에이전트중 연간 백만달러 이상 버는 사람도 수두룩하다는 게 남회장의 자랑. 에이전트들이 몰고 다니는 벤츠만 100여대에 이른다고 한다.

 

남 회장은 양복에도, 와이셔츠에도 뉴스타 부동산의 마크가 붙어 있다. 그자신이 전화번호도 끝ㅇ디 4989로 돼 있다. 그는 움직이는 광고판이자, 세일즈맨이다.

 

미국에서 새로운 입지전을 쓴 남문기 회장이 21일 본지 주최 월드코리안 리더스 포럼에서 강연한다. 그는 이날 미국에서 성공한 비결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