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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시인 전세원, 그녀가 택한 문학의 길

영국신사77 2012. 4. 22. 23:25

 

늦깎이 시인 전세원, 그녀가 택한 문학의 길

남들에게 희망과 기쁨 주는 글로 삶의 보람 느껴....

 

                                                      기사입력: 2008/03/27 [10:35]  최종편집: ⓒ 문화저널21

 

 

환갑나이에 시작한 새로운 삶

젊음은 인생의 어느 한철이 아니다.
나이 20에 60대의 늙음이 있고
나이 60에 20대의 젊음이 있다.
늙음이란 이상과 정렬을 버림에 있다.
세월은 인간의 얼굴에 주름살을 긋지만
진정 늙음은 마음 속의 영혼을 버림에 있는 것


사무엘 울맨의 <청춘>

©최재원기자
생전에 다글러스 맥아더가 가장 좋아했다는 시의 귀절과 같이 사는 인생이 있다. 전세원, 얼핏 보면 남자 이름같지만 여자, 그것도 올해 나이 67세인 할머니, 그녀에게 할머니란 소리를 하게 되면 아직도 젊은 기운이 감도는 그녀가 화를 낼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스스로를 하하 할머니라고 내 세우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안과 밖이 멋쟁이인 시인이자 수필가, 그래서 그녀를 알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터놓고 귀여운 여인이라고 호칭한다. 러시아 소설가 안톤 체홉의 소설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인 올렝까 같은 분이라면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항상 얼굴에 웃음을 달고 다니는 그녀에게 67년이란 세월이 반드시 행복한 시간만을 안겨준 것만은 아니다. 인생의 희로애락 가운데 애(哀)를 가졌던 시간이 유독 많았던 지난날들이지만 애써 외면하고 남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주려고 웃음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다가가는 여인, 그래서인지 그녀를 만나는데는 아무런 장벽이 있을 수가 없다.이제 그녀는 남들이 갖지 못하는 제 2의 인생을 기꺼히 받아드리고 있다. 그것은 지금부터 늦깎이로 시작한 시와 수필이다.

"환갑을 맞으면서 뭔가 쓰고 싶더라구요.문학이란 엄숙한 명제에 가두어 두는 글이 아니라 살아온 세월 속에서 추출할 수 있는 삶의 애환같은 것을 그냥 쓰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정도의 세월을 살아왔다면 누구나 자서전 한권정도는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것이 넋두리라도 좋고 제 글을 읽는 분들의 생각여하에 따라 다르겠지만서도..."
그녀는 지금 웃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녀 나름대로 지난날들은 울고 싶어도 내놓고 울지 못하는 참담한 세월 10여년을 보내야만 했다. 그것은 그녀가 아직도 젊고 행복한 시간만 남아있다고 생각할 때쯤 닥친 부군의 죽음이었다. 기억하기도 싫은 순간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하루는 애들 아버지가 골프를 치러 갓는데 오전 8시쯤 전화가 왔어요." 그 불길한 전화의 내용은 부군의 급사를 알리는 메시지였다.

3남 2녀의 아버지이기도 한 부군의 부재는 그녀를 기쁨의 시간 대신 생활 전선의 한가운데로 앉힌 것이다. 그녀는 그 전화를 받고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다. 앞이 안보였던 것이다. 병원을 오가면서 과거의 시간을 지우는 작업은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기를 반복한 그녀의 병명은 우울증, 그러나 그녀를 가만히 있게 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시집 장가를 보내지 못한 여러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틈틈히 글도 쓰고 아이들 건사도 하고, 그래서 나온 책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란 수필집이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모든 잡다한 이야기와 그녀의 가정사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한 삶의 이야기를 합친 것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해 친지들을 초대해서 조촐하게 환갑잔치겸 출판 기념회를 했다. 먼저 하늘 나라로 떠난 그이에게 보내는 선물이기도 하고 자식들에게는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했다. 그 후 세상 밖으로 나와서 어둠의 그늘을 몰아내고 새로운 삶의 활성화를 위해 스스로가 명랑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시인으로서의 출발


©최재원기자
그녀는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수학한후 그 대학의 정책대학원을 수료, 92년도에 정치외교학과의 동문회 회장을 맡았고 지금은 고문으로 앉아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정치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많았다.특히 학생시절에는 정치에 유독 관심이 더했다. 그의 외조부뻘인 분이 장면 부통령이자 총리였다. 장면 부통령은 자유당 정권하에서 투쟁하던 야당의 상징 인물로서 남아있고 총리는 책임 내각제였던 민주당 정권하에서 실세를 의미했다. 그러나 이 두가지를 모두 잃어버린 장면 총리 집안은 서서히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남은 것은 그녀의 친가와 외가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라는 것, 장면 총리의 아들이자 그녀의 외숙부인 장익은 지금 춘천교구의 주교로서 세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철저한 신앙으로 단련된 그녀의 삶의 자세는 그래서 남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모든 몸짓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화려한 것같지만 그녀의 내면을 사로잡는 아픔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방패라기 보다 그렇게 함으로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가장 겸손한 자세를 취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번 정권 인수위원장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이 동창이기도 한 그녀는 지금도 불의를 보면 가만히 있지못하는 불같은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거리에 나서면 젊은 남녀가 어깨를 부둥켜 안고 가는 것을 쫓아가 갈라놓고 "그렇게 하면 안돼! 집에가서 해" 하면서 일갈하는 조금 특이한 할머니 역할을 담당하고있다.

아무튼 책을 내고 나서 여러군데서 본격적인 글 작업을 하기 위해서 등단을 하라고 권유를 해왔다. 그러나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아마도 그녀는 그 일을 인연으로생각한다. 시인인 이양우 선생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문예춘추"를 통해서 시인이 되었던 것이다. "등단도 안하고 글을 마구 올렸더니 대표께서 글을 보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보냈고 처음에는 등단 한 사실도 몰랐는데 나중에 신인 문학상에 당선이 됐다고 통보가 왔어요." 시와 육필에 시로 등단을 했다. 그후 "문예춘추"에서는 수필로 등단을 했다.

인생의 남은 시간을 이제는 문학인으로서 글도 쓰고 삶의 궤적같은 것을 남기기 위해서 그녀는 여러군데의 문학회에 가입을 해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충남 보령에 있는 육필시 공원에 관심을 가져서 시인들과 수필가들의 없어지는 육필들을 추스려서 한곳에 모으는 문화유산 살리기 작업의 이사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

                                           * 동경에서 태어나

© 최재원기자
일찌기 일본의 동경에서 태어난 그녀는 장면 총리와의 특별한 인연을 갖게 된다. 장면 총리가 그때 나이로 16세 할머니 나이 14세에 결혼을 했는데 장총리가 미국유학을 가있는동안에 그의 부인이 친정에 와 있었다고 한다.그때 부인의 올캐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전세원씨의 어머니였다는 것이다.그리고 그의 이모님이 우리나라 메리놀 수녀회 제 1호인 김말가라다 수녀이기도 하다.

"굳이 역사속의 인물을 거들 것은 없지만 장 총리 부인이 내게는 고모 할머니 뻘이지요. 그래서그냥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라고 부르지요. 할머니가 우리 어머니를 키웠으니까요. 우리 아이들 돌때도 그분들이 오셨고요. 나를 결혼식장에 데리고 간 분이 장총리의 큰아들인 장진 당시 서강대학장이었지요."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그녀는 그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군사혁명이 나고 나서 한 때 장총리는 영어 생활을 했다. 그때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남편을 꼭 우리 박사님이라고 했어요. 붙들려 가면서도 할머니는 우리 박사님 하면서 목놓아 우셨지요." 하면서 그녀는 당시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사실은 장면정부때 모두 계획한 것이라고 했다.

지금 그녀는 이북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보면서 공산주의가 얼마나 악착같고 무서운가를 젊은이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시와 연관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번 대통령 선거때는 박근혜를 열렬히 지지 하기도 한 정치 방면의 열열한 투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근혜가 대선 후보선정에 실패하자 정체성이 동일한 한나라당 이명박 캠프에서외교정책 분과의 부위원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그녀는 숙명여대 101주년 기념으로 2007년 이경숙 숙대 총장이 발표한 s리더십에 대한 실천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힘쓰고 있다. s리더십이란 봉사적인 성품, 건강한 심신, 창조적 지식, 미래형 기술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21세기가 반드시 필요한 인간적인 자질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인지 통해 문학활동을 하면서

동인지를 통해서 그녀는 많은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지난번엔 김성봉 작곡가겸 가수가 그녀가 쓴 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 그 하나는 소쩍새이고 다른 하나는 가을바람이다. 그녀는 상복도 많아서 지난번에는 독일의 유명한 작가의 이름을 딴 헤르만 헤세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의 인생의 마무리를 하게 될 여러 직책중 가장 아끼는 것이 시인,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한국 육필문학회 이사,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숙명여대 총동창회 이사, 국제 외교 안보 포럼 상임 이사 등인데 이것을 휴화산이 아닌 현재 활동중인 모든 작업의 전부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귀여운 여인"으로서의 삶속에 남들이 갖지 못한 개인적 능력을 발굴해서 메시지화하는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의 글은 김성복 작곡가가 가사를 붙여서 노래를 만든 시의 귀절들이다.

가을 바람

얼굴도 희미한 사진 속에 너일 뿐
사랑이란 말도 전해지지 않는데
추억은 꽃을 피워 노래 부르지만
구름 속에 떠도는 메아리
외로움에 떠는 들녘의 단풍
쌀쌀한 가을바람으로 스치네
그리움이란 사랑의 날들
그토록 사랑했던 너
다시 한 번만이라도
너의 품에 안기어 볼 수 있다면
아, 내 사랑하는 이어


소쩍새

1
우물가에 라일락 꽃다발로 엮어서
당신께 드리라고 내게 손짓하네
온몸을 떨리게 잦아드는 그 향기
소쩍새 울음으로 다가오고 있네


*소쩍새야 소쩍새야
빗나간 너의 운명이
타는 그리움으로 산천을 울리며
슬픈 내 마음 후려 내린다


2
그 눈빛 그 음성 라일락 향기에 실려
님 그리는 울음으로 내게 젖어드네
까맣게 타고 있는 가슴 속의 그리움
그대는 아실까 홀로 슬퍼하네

*소쩍새야 소쩍새야
빗나간 너의 운명이
타는 그리움으로 산천을 울리며
외로운 내 마음 후려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