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그야말로 찬양의 일가견이 있는 사람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래서 다윗이 언약궤를 가져오면서 그 언약궤를 놓아둔 장막에서
섬길 레위인 찬양대를 세우고 어떻게 할 것을 명한 역대상16장7절부터의
말씀을 살펴봄으로 다윗 찬양의 노하우를 배우고자 한다.
역대상16:7상
그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우선 다윗의 찬양대의 리더는 아삽이었다.(16:5)
그는 레위인이었고 제금을 힘있게 치는 자였다.
레위인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구별되어서 하나님앞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삽과 그 찬양팀은 노래하는 레위인으로 따로 세워졌다.
또 그중에서도 헤만은 '노래하는 자'였고, 아삽과 함께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자였고,
스가랴, 아시엘, 스미라못, 여히엘, 운니, 엘리압, 마아세야, 브나야는 비파를 타는 자였고,
맛디디야, 엘리블레후, 믹네야, 오벧에돔, 여이엘,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는 사람이었고,
특별히 레위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해서 노래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팔을 부는 자는 제사장 스바냐, 요사밧,느다넬, 아미새, 스가랴, 브나야, 엘리에셀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자손들이 계속 그 직무를 담당하였다.
역대상25장에는 아삽과 여두둔과 헤만의 계보와 찬양팀 운영의 규칙들이 나온다.
다윗의 찬양대는 이백팔십팔인이었고, 그들은 모두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아삽의 아들들이 제비뽑아 24명이 돌아가며 리더를 했으며, 거기에는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상관하지 않고 제비뽑은 순번대로 하게 하였다.
사실 찬양팀의 구성원들은 지금도 구별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구별된 마음과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거룩함이 요구되었다.
하나님앞에서 봉사하는 자로서의 구별된 삶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구별되었다는 것은 하나니앞에서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쉬운일이 결코 아니다.
자신을 절제해야하고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많다.
우리가 찬양팀을 뽑을 때나 하려고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심지어 어느 성가대의 지휘자는 주일마다 입에서 술냄새를 풍겨 앞쪽의 소프라노 집사님들이
도저히 못참겠다고 들고일어나 결국 그만두었다는 얘기도 들은적이 있다.
아주 단편적인 예이지만 크고작은 부분에서 찬양팀 구성원의 삶이 구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찬양팀은 거룩한 하나님앞에서 섬기는 일이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해야 하며,
그런 각오와 헌신이 요구되는 자리이다.
또한 그들은 각기 다른 파트에서 전문가들이었다.
비파와 수금으로 그리고 제금과 나팔로 또, 노래를 하되 공교히 연주하며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들이었다.
처음부터가 아니라 연구하고 배워서 그렇게 된 사람들이었다.
찬양팀가운데 끊임없는 자기개발과 음악적인 소양을 갖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찬양팀원으로서 날마다 찬양을 많이 부르고 듣고, 악기를 연마하는 노력은 필수다.
직임을 돌아가면서 하는것은 매우 성경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리더와 팀이 많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전에는 나도 우리교회에 팀과 리더가 많은것 아닌가 하는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대상25:8에는 큰자나 작은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무론하고...라는 말씀이 있다.
리더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구조는 결단코 잘못되어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리더 본인에게도 분명 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전부 리더가 된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오해가 없어야 하겠다.
찬양팀은 결코 누구 한 사람에 의한 것도 아니고 어느 한 사람이 주장할 수 있는 모임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에 의한 것이고, 성령님이 주장하시는 모임이다.
그래서 다윗이 언약궤를 가져오면서 그 언약궤를 놓아둔 장막에서
섬길 레위인 찬양대를 세우고 어떻게 할 것을 명한 역대상16장7절부터의
말씀을 살펴봄으로 다윗 찬양의 노하우를 배우고자 한다.
역대상16:7상
그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우선 다윗의 찬양대의 리더는 아삽이었다.(16:5)
그는 레위인이었고 제금을 힘있게 치는 자였다.
레위인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구별되어서 하나님앞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삽과 그 찬양팀은 노래하는 레위인으로 따로 세워졌다.
또 그중에서도 헤만은 '노래하는 자'였고, 아삽과 함께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자였고,
스가랴, 아시엘, 스미라못, 여히엘, 운니, 엘리압, 마아세야, 브나야는 비파를 타는 자였고,
맛디디야, 엘리블레후, 믹네야, 오벧에돔, 여이엘,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는 사람이었고,
특별히 레위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해서 노래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팔을 부는 자는 제사장 스바냐, 요사밧,느다넬, 아미새, 스가랴, 브나야, 엘리에셀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자손들이 계속 그 직무를 담당하였다.
역대상25장에는 아삽과 여두둔과 헤만의 계보와 찬양팀 운영의 규칙들이 나온다.
다윗의 찬양대는 이백팔십팔인이었고, 그들은 모두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아삽의 아들들이 제비뽑아 24명이 돌아가며 리더를 했으며, 거기에는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상관하지 않고 제비뽑은 순번대로 하게 하였다.
사실 찬양팀의 구성원들은 지금도 구별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구별된 마음과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거룩함이 요구되었다.
하나님앞에서 봉사하는 자로서의 구별된 삶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구별되었다는 것은 하나니앞에서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쉬운일이 결코 아니다.
자신을 절제해야하고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많다.
우리가 찬양팀을 뽑을 때나 하려고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심지어 어느 성가대의 지휘자는 주일마다 입에서 술냄새를 풍겨 앞쪽의 소프라노 집사님들이
도저히 못참겠다고 들고일어나 결국 그만두었다는 얘기도 들은적이 있다.
아주 단편적인 예이지만 크고작은 부분에서 찬양팀 구성원의 삶이 구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찬양팀은 거룩한 하나님앞에서 섬기는 일이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해야 하며,
그런 각오와 헌신이 요구되는 자리이다.
또한 그들은 각기 다른 파트에서 전문가들이었다.
비파와 수금으로 그리고 제금과 나팔로 또, 노래를 하되 공교히 연주하며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들이었다.
처음부터가 아니라 연구하고 배워서 그렇게 된 사람들이었다.
찬양팀가운데 끊임없는 자기개발과 음악적인 소양을 갖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찬양팀원으로서 날마다 찬양을 많이 부르고 듣고, 악기를 연마하는 노력은 필수다.
직임을 돌아가면서 하는것은 매우 성경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리더와 팀이 많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전에는 나도 우리교회에 팀과 리더가 많은것 아닌가 하는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대상25:8에는 큰자나 작은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무론하고...라는 말씀이 있다.
리더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구조는 결단코 잘못되어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리더 본인에게도 분명 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전부 리더가 된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오해가 없어야 하겠다.
찬양팀은 결코 누구 한 사람에 의한 것도 아니고 어느 한 사람이 주장할 수 있는 모임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에 의한 것이고, 성령님이 주장하시는 모임이다.
출처 : 은혜의 서랍
글쓴이 : 하여내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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