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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차 여수 손양원 목사 순교유적지 답사-1<애양(愛養)병원· 토풀 하우스>

영국신사77 2011. 10. 9. 16:00

 

 

여수 애양(愛養)병원

 

한국 최초의 나병원인 광주나병원은 1925년 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에 터를 마련하고 1928년 한센병자 600여 명이 옮겨와 지금의 애양원을 이루게 되었다. 이어 1936년 여수 애양원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여수 애양원 시대가 시작되었다.  

 

 

애양원은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으로 부터 비롯되었다.

 

1904년 2월 목포 선교부에서 광주 선교부를 개설하기로 하고 벨 목사와 오웬목사를 파송하여 광주 선교부를 만드면서 1904.12.25. 성탄절 예배와 함께 광주 선교가 시작되었다. 오웬목사는 이 후 전남 동부지역의 능주, 남평, 화순, 장흥 등지를 맡아 선교하였다. 오웬은 1909.4.3. 급성 폐럼으로 순교하게 되는데, 당시 오웬을 치료하기위해 목포에서 활동중이던 의사 포사이트(Wiley H. Forsythe) 는 급히 광주로 떠났다.

 

광주로 오던 포사이트는 남평 부근에서 길가에 버려진 여자 한센병 환자를 발견하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말에 태우고 광주까지 걸어왔다. 이 한센병 여인은 1908.3. 에 부임하여 선교활동을 하던 윌슨(Robert M. Wilson) 과 선교사들에 의해 치료받게 되었다.

 

윌슨과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사택 건축을 위해 사용하던 벽돌 가마터를 단장하고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것이 서양의학으로 한센병을 치료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일이다. 그러나 정성된 치료에도 불구하고 여 한센병 환자는 주님을 영접하고 수 주일 후 소천하였다.

 

이일을 시작으로 1909년 여름 인근 봉선리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집을 짓고 20여 명을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한국 최초 나병원인 광주나병원의 시작이었고, 1928년 여수로 터를 옮긴 후 1936년 여수 애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의 애양병원은 정형외과, 피부과, 마취통증과, 내과 진료를 하고있다. 애양원은 한센병 환자와 일반 장애인들에게 의료적, 직업적, 정신적으로 재활을 도모하고 영적 구원을 위해 설립되었다.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은 애양병원 이외에 애양평안요양소, 애양재활직업보도소 등도 함께 운영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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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풀 하우스

                                              -前한성신학교, 기독교인 수양관-

 

1955.4.12 애양원은 나환자를 위한 대학과정 한성신학교를 설립하였다가 1962년에 폐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