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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商高 나온 세계적 테너, 인생을 노래하다/테너 박기천

영국신사77 2011. 4. 8. 01:45


商高 나온 세계적 테너, 인생을 노래하다

獨 슈투트가르트 주역 테너 박기천,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 무대에
라면 공장서 일하며 성악가 꿈 키워… 돈 300만원 들고 독일 유학길
동양인 첫 스포레토 콩쿠르 심사위원

독일 슈투트가르트국립극장 전속 주역 테너인 박기천(56·서울장신대 교수)에게는 '한국인 성악가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90년대 초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로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아이다'의 주역 '라다메스'역(役)을 소화했고, 2008~2009년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스포레토 국제성악콩쿠르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가 21~24일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토스카' 무대에 주역으로 선다. 94년 이후 70번도 더 했던 역할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사실 박기천의 학력은 그 명성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아버지가 철도공무원이었던 집 6남매 중 넷째, 살림은 어려웠고 초등학교 입학 전 다리에 3도 화상을 입어 3년을 입원해 있었다. 병실에서 어른들 화투 점수를 계산하다가 셈을 익혔다. 취직 잘되는 경기상고에 진학했고, 주산반 선배들한테 야구방망이로 맞는 게 싫어 음악반에 들어갔을 뿐이다. 그런데 변성기를 거치면서 거짓말처럼 목이 탁 트였다. '산타루치아'나 '돌아오라 소렌토여' 같은 LP판을 틀어놓고 따라 불렀는데, 음정에 맞게 소리가 쑥 올라갔다.

고교 졸업 뒤 라면공장에 취직했지만 노래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서울 신문로 새문안교회에 있던 야간 서울장로회신학교(지금의 서울장신대)에 입학했다. 오후 6시까지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 10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당시 그의 월급은 2만원, 고교 음악교사에게 레슨받는 비용이 시간당 5000원이었다. 레슨을 한 달에 한 번만 받고, 공장에서 주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노래했다.

봉제공장, 여행사, 연탄공장을 옮겨 다니며 모은 돈 300만원을 들고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27세 유학생은 항공료를 아끼려고 해외 입양아 '보모'를 자청, 아기 넷을 앵커리지, 파리, 프랑크푸르트에 내려줬다. 품에 안겨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보고 그도 엉엉 울었다.

어렵게 떠난 유학은 보람 있었다. 프라이부르크 음대 전문연주자(석사) 과정과 칼스루헤 음대 최고연주자(박사) 과정을 마친 뒤 함부르크 극장에 합창단원으로 취직, 7년간 '유일한 한국인'으로 합창단 생활을 했다. 도밍고, 파바로티 같은 거장(巨匠)들의 무대를 눈앞에서 보고 배웠다.

                          오스트리아 빈 극장에서 레하르의 오페레타‘미소의 나라’에 
                              남자 주인공‘수홍’으로 열연 중인 모습. /비트원컴 제공

1991년 한국 국립오페라단의 '일 트로바토레'에서 주역 '만리코'를 맡으며 국내 성악계에 데뷔했다. 본격적인 기회는 이듬해 찾아왔다.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마르첼로 비오티의 추천으로 브레멘국립극장에 주역 테너로 데뷔한 후, 만하임국립극장, 하노버국립극장을 거치며 테너로서 자리를 굳혔다.

이탈리아어·프랑스어 가사를 현지인처럼 발음하기 위해 아침에 눈 떠 밤에 잠들 때까지 가사만 줄줄 읊은 날도 부지기수였다. 배역에 빠져 살다가 연출자들이 "(동양인인) 너 때문에 그림이 안 나와"라고 투덜대면 그제야 '내가 한국인이지'를 실감했다. 


2009년 모교에서 교수가 된 그는 요즘 오페라 가수로서 절정을 누리고 있다. 70번 훈련한 그의 카바라도시('토스카'주인공)는 이번엔 어떤 모습일까.


◆토스카 그리고 박기천의 노래는?

밝고 따뜻한 중음이 매력적인 박기천은 높은 소리를 유연하면서도 힘차게 낸다. 19세기 로마를 배경으로 화가 카바라도시가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연인 토스카를 잃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과정을 그린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서 박씨는 남자 주인공 카바라도시를 맡는다. 


"노래 자체에 무게를 실어야 하는 무거운 작품이에요. 그걸 '호흡'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물리적 '호흡'을 넘어서서 인간이 느끼는 환희, 고통, 절망, 좌절을 나타내는 거지요. 그걸로 제가 연기하는 카바라도시와 관객이 보는 카바라도시가 하나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서울시오페라단 오페라 토스카=2011.4.21~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399-17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