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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하회마을-문화재청-

영국신사77 2011. 3. 9. 16:47

 

                                           마을소개

 





         낙동강이 큰 S자 모양으로 마을 주변을 휘돌아 간다. 그래서 하회(河回)라 했다.

                           오른편 안동시에서 흘러나와 왼 편으로 흘러간다.

 


              하회마을을 찍은 항공사진  

안동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와가

(기와집)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

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 주민 및 가옥
하회마을은 현재에도 주민이 살고 있는 자연부락이다. 한말까지 350여 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150여 호가 살아가고 있다. 마을 내에는 총127가옥이 있으며 437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7개 가옥 중 12개 가옥이 보물 및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풍수지리(風水地理)적 지형(地形)
 태백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화산(花山)과 북애(北厓)를 이루고, 일월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남산과 부용대(芙蓉臺)를 이루어 서로 만난 곳을 낙동강이 S자형으로 감싸 돌아가므로, 하회마을을「山太極 水太極 - 산과 물이 태극 모양」또는「蓮花浮水形-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 부른다. 풍수지리에 따른 마을의 주산(主山)을 화산(花山)이라 부르고, 부용대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화천(花川)이라 함은 연화(蓮花)에서 비롯한 이름이라 한다.

 


하회마을에는 지금도 강에 나룻배가 운행된다(관광용)

세거(世居)한 성씨(姓氏)들
하회마을의 풍산류씨의 세거 이전에는 허씨(許氏)와 안씨(安氏)가 먼저 세거하였다고 한다. 하회마을에는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란 말이 전래되고 있으며, 하회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었다는 구전(口傳) 및 강 건너 광덕동의 건짓골에 허정승(許政丞)의 묘가 있어 지금도 해마다 류씨들이 벌초를 하고 있으며, 숭정(崇禎)15년(1642)의 동원록(洞員錄)에는 류씨 이외에도 극히 적은 가구의 허씨와 안씨(安氏)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풍산류씨(豊山柳氏)의 입향(入鄕)에 관한 전설(傳說)
풍산류씨(豊山柳氏)는 본래 풍산 상리에 살았으므로 본향(本鄕)이 풍산(豊山)이지만, 제7세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공이 화산에 여러 번(가뭄, 홍수, 평상시) 올라가서 물의 흐름이나 산세며 기후조건 등을 몸소 관찰한 후에 이곳으로 터를 결정했다고 한다.

입향에 관하여「나눔」의 전설이 있는데, 집을 건축하려 하였으나 기둥이 3번이나 넘어져 크게 낭패를 당하던 중 꿈에 신령이 현몽하기를 여기에 터를 얻으려면 3년 동안 활만인(活萬人)을 하라는 계시를 받고 큰 고개 밖에다 초막을 짓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음식과 노자 및 짚신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참외를 심어 인근에 나누어주기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활인(活人)을 하고서야 하회마을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향 후 풍산류씨들은 계속된 후손들의 중앙관계에의 진출로 점점 성장하였으며, 입암(立巖) 류중영(柳仲영), 귀촌(龜村) 류경심(柳景深),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등의 조선중기에 배출한 명신들로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1999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가 하회마을을 다녀갔다.  

 

 

하회마을의 전래 놀이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을 위한 놀이와 선비들을 위한 놀이가 병존하였다.
   하회별신굿탈놀이 ------ 굿을 겸한 탈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선유줄불놀이 ------ 시회(詩會)를 겸한 선유(船遊) 놀이

 

 

                  인사말





(사)안동하회마을보존회
회장 류충하

하회마을보존회 공식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안동하회마을은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豊山柳氏)부락으로, 초가(草家)와가(瓦家)로  형성된 전통적인 유교문화 생활 양식을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해 온 가장 한국적인 곳입니다.

1984년 국가중요민속자료 제 122호로 지정된 안동하회마을은 600여년  전통유교 문화가 살아숨쉬는 곳으로, 현재에도 130여 가구가 집성촌으로 이루어져,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치가 있습니다. 하회마을은 조선중엽 대유학자인 겸암 류운룡 선생과 영의정을 지내신 서애 류성룡 선생을 비롯하여 불천위 제사로 모시는 분이 5位이나 될 정도로 빼어난 유학자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에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런 훌륭 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회마을의 하드웨어적인 보존만이 아닌 삶과 문화가 공존하며 역사와 전통 먹거리 등에 대해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회마을이 한국 고유의 전통마을이요,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전통만 있을 뿐 사람들이 전통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충(忠), 효(孝) 등의 유교적 이념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과 소프트웨어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외형적 원형보존과 그 안에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체험공간을 마련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고 하회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체험을 통해 무언가 얻고 마음에 담아갈 수 있는 마을로 만들어 가는데 보존회 회원과 마을 주민이 한 마음으로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사)안동하회마을보존회
회장 류 충 하 

               마을의 문화유산




종 목

분 류

명 칭

국보 제121호

민속 공예류

하회탈 및 병산탈

국보 제132호

원고본

징비록

보물 제160호

활자본류기타

서애류성룡 종가 문적11종 22점

보물 제460호

고문서류기타

서애류성룡 유물 3종 27점

보물 제306호

고가

양진당

보물 제414호

충효당

사적 제260호

서원(사적)

병산서원

중요민속자료 제84호

정사 / 가옥

화경당(북촌)

중요민속자료 제85호

원지정사

중요민속자료 제86호

빈연정사

중요민속자료 제87호

작천고택

중요민속자료 제88호

옥연정사

중요민속자료 제89호

겸암정사

중요민속자료 제90호

염행당(남촌)

중요민속자료 제91호

양오당(주일재)

중요민속자료 제177호

하동고택

중요민속자료 제122호

민속마을

하회마을(1984)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연극

하회 별신굿탈놀이

경북도민속자료

서원(사적)

화천서원

 

                마을이해




하회마을은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인공적으로 조성된 관광지가 아닙니다. 하회마을은 자연마을입니다.  약 600 여 년간 대대로 주민이 생활의 터전으로 살아온 마을입니다. 현재에도 150여 호가 하회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는 마을 본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기 위하여  1984년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하여 한국 고유의 전통마을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하회마을이 국가의 민속자료로 지정된 이후 주민은 생활에 큰 불편과 제약을 겪고 있습니다.  마을의 원형을 보존 해야 하기 때문에 사유 재산임에도 증축이나 개축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회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은  건축물과 그것에 담겨 있는 모든 부분까지도 원형보존을 희망하고 있는데 반하여, 현지 주민들은 능률적인 물질문명사회의 각종 도구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냉장고, 경운기, 자동차, 전기밥솥....). 일부 관광객은 주방에 있는 산뜻한 부엌가구를 보고서 “도시 아파트와 다름없다”고 불평하고 “가마솥은 전기 밥솥에 밀려 장식품이나 다름이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지금 나무로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밥을 해 먹을 수 없는 현실이지요.

  하회마을에는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주민들로서는 관광객이 보고자 하는 것이 ‘전통 마을의 이상적인 모습’ 임을 잘 알기에 전통 보존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회마을을 방문하시는 분들께 하회마을의 이러한 현실을 이해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사람이 살지 않은 텅 빈 마을은 의미가 없습니다. 주민들이 있기에 가치 있는 마을이 아닐까요?  마을에 주민들이 살고 있기에 그들과 교감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마을 주민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마을연대기




 

고려 중엽 허도령이 하회탈을 제작

 

고려 중엽 김해 허씨 웃골(거먹실) 정착

 

고려 중엽 광주 안씨 향교골에 정착

 

고려 말기 풍산류씨 공조전서 류종혜 선생이 입향

1572년

서애선생이 풍악서당을 옮겨 병산이라 함

1587년

서애선생 45세 옥연정사 창건과 「징비록」집필

1592년

임진왜란

1613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병산서원 중창

1647년

「징비록」16권 7책으로 간행

1928년

조선총독부 하회별신굿 중지 조치

1930년

가구수(유씨158호, 각성132호, 주택300여채)

1934년

낙동강 대홍수

1963년

총가구 266호, 인구1,507명

1964년

국보제121호 하회탈 및 병산탈 지정

1969년

「징비록」국보 132 호 (지정일 : 1969-11-07)

1979년 11월

「하회마을조사보고서」간행

1982년

제방축조

1983년 12월

「하회마을 민속 조사보고서」간행

1984년 01월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하회마을 지정(1.10)

1992년 11월

「사단법인 하회마을보존회」인가

1999년 04월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 방문(4.21)

2006년

미국 전 대통령 조시 부시 방문

2009년

엘리자베스2세 방문 10주년 기념 행사

2009년 08월

미국 전 대통령 조시 w 부시 방문

2010년 8월1일    유네스크(UNESCO) 세계유산 등재 - 제34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브라질)

 

 

            하회마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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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안동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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