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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 자천교회 ◇

영국신사77 2011. 2. 23. 23:58

 

◇ 영천 자천교회 ◇



자천교회의 설립자는 권헌중이다. 그는 경주 작은 고을 선비로 서당 훈장으로 생활하다가, 거처를 청송군 헌서면 수락으로 옮겼다. 그 뒤 다시 대구로 이사하기 위해 청소에서 영천으로 넘어오는 노귀재를 향했다. 그곳에서 휴식하던 중 영천을 거쳐 청송으로 선교 여행을 하고 있던 안의와 선교사와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자천교회 이야기」에서는 1897년 4월로 기록되어 있다. 노귀재에서 권헌중은 안의와 선교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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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헌중 장로

 권헌중은 대구로의 이사를 포기하고, 영천의 보현산 자락의 신촌면(현재의 화북면) 자천리에 초가를 구입하여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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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듬해 4월 안의와 선교사의 권유로 예배당을 건립을 결정 추진하던 중 유교적 의식에 젖어있던 지역 주민의 반대로 이를 중단하였다. 그는 주재소(지금의 지서)와 신촌 면사무소를 건축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교회당을 세우게 되었다.

 이 교회는 1903년 미국인 선교사 어드만(Erdman)이 신자들과 합심하여 지은 것으로 전국에서 보기 드문 한옥교회이다.

 

구조는 나지막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절충식 지붕틀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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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당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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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입구에서 자천교회로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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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출입구는 양 측면에 두었다. 이 출입문은 남녀를 구분하여 출입문을 설치한 것이다. 이것은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유교윤리가 지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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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 자천교회 반사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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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자천교회 간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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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여름성경학교

 * 중앙부는 칸막이를 설치하여 남 · 녀석을 구분한 예배공간을 마련하여 구한말의 남녀칠세 부동석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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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대상에서 본 남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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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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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붕은 위에 비교적 넓고 평평한 공간이 있어

6.25 전쟁 때 미군의 공중 폭격을 피하기 위해

성도들이 지붕에 횟가루로 ‘CHURCH'라는 글자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제 452호로 지정되어있다.  

   자천교회는 이 지역 초대 교회로, 인근에 많은 교회를 분립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자천교회 건물은 선교 초기에 서양 선교사들이 지은 한 · 양 절충식으로, 개신교사와 건축사 연구의 자료적 가치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주소: 경북 영천군 화북면 자천3리 773번지

 

 

                                                                                    출처:한국기독교회사(http://photohs.co.kr/xe/2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