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택(성악가·여의도순복음교회) |
클래식 통해 복음 전하는 음악 전도사 |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루치아노 파바로티 서거 3주년 기념 공연’. 테너 하만택은 파바로티가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가슴에 한 아름 꽃을 달고 무대로 나왔다. 소프라노 문혜원과 함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이것을 받으세요’를 연이어 부르자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소리가 울렸다. 하만택은 무대를 나서며 관객들을 향해 90도 각도로 인사했다. 그를 향한 찬사가 이어졌다. 곧 그는 가슴에 달았던 꽃을 떼어 관객에게 선사하고 무대를 퇴장했다.
하만택은 어떤 공연이든 관객을 중요시하며 매번 최선을 다한다. 자신이 무대에 서는 공연은 반드시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생각에서다.
“내가 관객을 향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관객을 향한 선물이고, 소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너와 내가’ 같이한다는 마음에서 보면 목회자와 한 마음이라 할 수 있죠”
그는 항상 음악을 즐긴다. 성악가라서가 아니라 노래가 그의 삶이자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적 성악가가 되기 위해 공부한 적이 없다. 신앙심이 깊은 부모님을 따라 시골 교회에서 찬양을 부른 게 전부였다. 가끔 성악 경연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목소리는 탁월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그저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길 뿐이었다. 성악가를 꿈꾸기 시작한 건 고 3때다. 하지만 경희대 음대 진학 후 그는 줄곧 우수한 성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졸업 후 국립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그가 돌연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한 건 1996년이었다. “세계적인 바리톤 피에로 카푸칠리가 진행하는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했다가 이탈리아에서 공부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를 받았죠. 그리고 바로 유학을 결정하게 됐어요”
갓 결혼하고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로 떠난 그의 유학 생활은 생각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듬해 터진 IMF로 그는 집세 내는 것이 힘겨웠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집 주인 덕에 집세 걱정은 안했어도 그즈음 태어난 딸의 분유 살 돈이 없어 쩔쩔맸다. 집 주인은 정부 기관에 가면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고 알려줬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통사정 끝에 경우 6개월 간 분유와 기저귀를 지원받았고 아끼고 아껴 기저귀를 1년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고 그는 말했다.
어려운 중에도 이탈리아 푸치니음악원과 깔리(Cagli)극장에서 오페라 아카데미, 쾰른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 유럽권에서 열리는 콩쿨에 출전해 21번이나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 가운데 기적 같은 일도 경험했다.
“2000년 독일에서 열린 콩쿨이었는데 1차에서 떨어진 겁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 의외라며 쳐다보는데 고개를 들 수 없었어요. 호텔로 돌아와 밤새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죠. 그리고 집에 돌아가려고 새벽에 호텔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는 겁니다”
퀼른 극장 측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퀼른 극장은 독일에서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뮌헨, 함부르크와 함께 5대 극장에 속했다. 그를 어떻게 알고 전화했는지, 뜻밖의 일이었다.
“한 콩쿨에 출전해 노래했던 저를 극장 관계자가 기억한거죠. 23일 후 오페라 공연이 있는데, 대역을 맡아달라는 겁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 거절했죠. 그러자 언제든 원한다면 극장에서 활동할 수 있으니 연락을 달라는 겁니다”
그는 독일 콩쿨에서 낙방한 것이, 쾰른 극장에서 전화 온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나중에 깨달았다고 한다. 퀼른 극장 가수로 활동한 그는 그 뒤 클레펠트-묀헬블라드바흐 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7년동안 테너 주역가수로 수많은 무대에 올랐다. “화려한 고음과 탄탄한 호흡을 가진 테너” “테너 베냐미노 질리(세계적 테너 가수)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나를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릴 적 보아왔던 아버지의 신앙 모습과 성실함이 제게 많은 영향력을 끼친 탓이겠죠”
그의 부친은 전북 임실에서 신망이 두텁기로 소문난 장로였다. 일제시대 때 문 닫은 교회를 복원하고 그 뒤 4개 교회를 개척했던 부친을 보며 자란 10남매 중 셋째와 여섯째, 일곱 번째 형은 목사가 됐다. 일곱 번째 형 하경택 목사는 현재 서울장신대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막내인 하만택이 독일 생활 중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이끌어준 것은 독일 에센 지역에서 사역하는 셋째 형 최문규 목사였다. 하만택은 형이 시무하는 엣센갈보리교회에서 집사 안수를 받았다.
유럽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다 2008년부터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정열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그는 지난해부터 모교인 경희대에서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또 ‘우리 곁의 클래식’이라는 모토로 자신이 사는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클래식 공연도 진행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남들과 함께 누리기 위해서라는데 바로 성경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그는 공연 때마다 은근히 복음도 전한다. 10월 초에는 전북대학교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창작 오페라 ‘흥부와 놀부’의 흥부로 열연할 예정이다.
서울과 전북, 독일을 오가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가 즐겁게 살아가길 원하신다. 즐겁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현재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들레헴성가대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그는 음악인으로, 신앙인으로 사람들에게 모델이 되고 싶단다. 검허했던 부친의 뒷모습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2010.9.26. 순복음신문 <초대석> 글·오정선 / 사진·김용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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