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 : 17 ~ 21)
◆ 민병석 |
성경 본문 / 요한계시록 22 : 17 - 21
요절 :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 : 21, 21).
서론 : 어느 듯 오늘 공과로 요한계시록 공부는 마감하게 되었다.
창세기 1장이 인류의 알파라면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오메가인 셈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형성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류가,
영원한 천국에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의 시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제한된 역사의 이 지구상에서 소망을 가지고 그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공부하면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는
간절한 믿음을 심어야 하겠다.
1. 성령과 신부의 초청
17절에 있는 성령과 신부의 초청은 매우 감격적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말씀해 준다.
(1) 이 천국에의 초청자는 성령과 신부라고 했다 :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이끄시는
진리의 영,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을 의미한다.
신약 시대가
성령 시대로 불리우는 이유는,
성령이 초청자가 되시어
듣는 자들과 목마른 자들과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른 또 하나의 초청자가 나오는데,
그 이름이 신부로 나와 있다.
신부란 그리스도의 신부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밝혀 주는 신부는 교회를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성도들의 모임이며,
이 교회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그의 소유된 신부이다.
그 신부가 초청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이 종말의 복된 계시의 말씀을 전파하는 모습이다.
교회에는 주님의 약속과 그의 엄위가 있다.
그의 신랑이 오시는 날까지,
신부가 되는 교회는 신랑을 대신하여
그의 성도들에게 이 초청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것이다.
(2) 초청의 대상자는 다양하다 :
먼저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초청의 말씀은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전파될 것이다.
신랑의 초청은 먼저 듣는 자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종말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는 것이다(계 1:3).
다음 목마른 자들도 올 것이라고 하셨다.
목마른 자란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간절한 심령을 의미한다.
세상 것으로 해갈하려는 자들은 이 초청에서 제외된다.
이들은 노아 시대 사람들처럼
세속적인 생활 가운데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노아의 경종에 외면했던 것처럼
이 초청에 귀를 기우리지 아니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선물을
원하는 자에게 주신다.
원치 않는 자는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2. 예언의 가감죄
18,19절에 나오는 말씀은
*계 22:18,19절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에게
중대한 경종으로 들려주신다.
(1) 요한은 “내가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다 :
증거란 틀림없는 확증을 의미하는 말이다.
요한이 증거한 경종이 두 가지로 나온다.
그 첫 번째가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실 터이요”라고 밝혀 주신다.
그러면 이것들 외에 더한다는
“이것들”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요한이 이 계시를 받아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이 편지의 전 내용을 의미한다.
이것들 외에 더한다는 말씀은
요한이 계시를 받지 아니한 다른 내용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종말적인 계시는
요한에게 보이신 이 계시외 다른 계시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계시는 원래가 종말에 되어질 모든 징조와 사건을
요한에게 미리 보이신 것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종말에 이르기까지
이 계시외 더 보여 주실 계시가 하나님께는 없는 것이다.
누가 “더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단의 계시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계시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더 할 것이 없다”고 못박으셨기 때문이다.
요한은 우리에게 “다 증거 했다”고 말해 준다.
하나님께서 이제후로는 주의 재림이 있기까지,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더 증거할 종말적 증거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요한이 받은 증거외 다른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 증거는 성경과 배치되는 것임으로
“다른 계시”로 배척받아야 마땅하다(갈1:7,8).
(2) 다음 두 번째의 경종이 19절에 나와 있다 :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는 경종이시다.
“제하여 버리신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분명한 계시의 내용을 임의로 변경시키는 일”을 의미한다.
만약 누가 이 계시의 말씀을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서
이탈한 다른 방향으로 오도한다면,
하나님의 계시를 고의적으로 변경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또 한가지는 예언의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있는 종말적 계시를
엉뚱한 시대의 사건으로 따돌려,
하나님의 말씀을 애매 모호하게 만드는 일이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같은 일을 아무 두려움도 없이 임의로 자행한다.
세 번째는 분명한 종말적 계시의 표현을
상징적 사건으로 엄버무리는 일이다.
“요한이 다 증거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하나님의 말씀”인 요한계시록의 증거를,
상징으로 돌려버리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 문장에 혹 상징적 표현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시 자체를 상징적으로 돌려버리는 일은
“이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결론 : 요한이 이처럼 요한계시록의 끝 마무리에 와서
이 같은 경종을 준 일에 대하여,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의 해석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 모든 계시를 요한에게 보이신 주님은,
이제 결론적으로 자신이 속히 오실 일에 대하여 다시 강조하신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우리의 신앙적인 자세가 어떠해야 하느냐에 대한 해답이 된다.
이 말씀은 그가 어느 시대에 살아가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간구가
우리들 신앙생활의 절실한 현실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 드려야 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복 습 문 제
① 천국에 초청하는 분이 누구로 나오고 있는가?
계 22 : 17
② 이것들 외에 더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계 22 : 18
③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린다는 뜻은 무엇인가?
계 22 : 19
연구과제
\* 요한계시록의 문장적 해석(文章的解釋) /
요한계시록은 반드시 문장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읽을 수 있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이 곧 하나의 문장이다.
문장은 하나의 작문, 곧 문학작품이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되어질 징조와 사건에 대하여
미리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문학작품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계시 문학”이라고 부른다.
문장은 언제나 전체적으로 맥(脈)이 이어져야 한다.
맥이 통하지 않는 문장은 횡설수설일 뿐 글로서의 아무런 가치도 없다.
다음에 이해(理解)가 되어야 한다.
특벌한 교리에 발이 묶인 신학자들만 이해하는 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문장에는 일관성(一貫性)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이 합리적(合理的)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그의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을 통해서
이 같은 관점에서 기록하게 하셨다.
그러나 과거적 해석 방법이나 상징적 해석 방법이나 세대주의적 해석은,
이 모든 것들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신학적으로가 아니라,
문장적으로 이해해야 바른 해석이 나온다.
출처: 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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