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아 요새(안토니아 성)
마태 27: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마가 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헤롯(기원전 37-4년 재위)은 기원전 37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한때 하스몬가의 요새가 있던 ‘바리스(성)’ 자리에 후원자 마르코스 안토니우스에게 경의를 표하여, 기원전 31년에 가장 전략적인 자리인 예루살렘 대성전(현 회교 대사원) 북서쪽 즉 성전 벽의 모퉁이에 요새를 세우고, ‘안토니우스’에게 헌정하였기 때문에 ‘안토니아 요새’라고 부른다.
약 50m 높이의 암석 위에 세운 이 요새는 자연적인 방어 능력이 없는 성전 북쪽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하였고, 헤롯 군사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성전 뜰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도록 했다.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제2성전시대 예루살렘 대성전 모형.
중앙의 사각형 건물이 대성전이며, 성벽 오른쪽 뒤쪽에 4개의 탑이 있는 곳이 안토니아 요새임.
중앙 4개의 탑이 안토니아 요새
안토니아 요새가 있고, 아래쪽 중간지점에 있는 것이 베데스다 연못
사도 바울이 성전 뜰에서 연설하다가 군중들에게 붙잡혀 죽게 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그를 체포했던 로마군은 안토니아 요새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이었다. 로마군 수비대장은 사도 바울이 폭동을 일으켰다가 사천여명의 자객을 이끌고 광야로 나간 이집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사도행전 21:27-40 참조) 천인대장이 바울을 진지 안으로 끌고 가 채찍질을 하여 심문하려고 하자,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여 위기에서 모면한 곳이기도 하다. 천인대장은 바울을 풀어주고 유다인들이 왜 그를 죽이려는지 알아보려고 최고의회를 소집 하였고(사도 22:22-30 참조), 급기야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자 천인대장은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펠릭스 총독에게 호송시켰다.(사도행전 23:12-35참조)
안토니아 요새는 내부 폭이 약 120×45m였고 스파르타식 군대 막사는 없었다. 군사용 부속건물 외에 호화스런 주거지와 목욕탕이 있었다. 요세푸스는 ‘그 장엄함이 마치 왕궁처럼 보였다’(유다 전쟁사 5.5.8)라고 보고한다. 이 성은 유다전쟁(66년)때 전소, 파괴 되었고, 70년 티투스 장군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
이 안토니아 요새 자리에는 현재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고, 바로 맞은편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엑체호모 시온 수녀원, 그리고 바로 그리스 정교회의 ‘예수님 감옥’ 수도원이 있다.
* 큐폴라(cupola)는 작은 건물의 돔과 같은 양식의 둥근 천장을 뜻한다. 왕관을 씌운 듯한 큰 지붕이나 돔 모양의 큐폴라는 실내에서의 전망을 좋게 하기 위해서, 또는 햇볓이 잘들고 공기의 순환을 좋게 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위키 백과>
아치 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왼쪽이 작은형제회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오른쪽 아치가 연결된 부분이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로 들어가는 문이다.
엘 오마리에 초등학교로 오르는 계단에서 찍은 사진.
가까운 쪽에 보이는 쿠폴라는 '예수님 사형선고 성당'이고
안쪽 끝부분에 보이는 검정 쿠폴라는 '엑체호모' 수녀원의 대성당 쿠폴라.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
철책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이 공식적인 십자가의 길을 시작할 때 1처가 시작되는 곳.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
사진에서 보이는 탑은 작은형제회 수도원에서 바라본 '엘 오마리에' 초등학교와 붙어 있는 이슬람 사원
겟세마네 동산에서 성 스데반 게이트(사자 게이트)를 통과해서 조금 걷다보면, 오른쪽에 작은형제회 수도원이 나온다. 이곳은 현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감옥’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곳인데, 수도원 안에는 ‘채찍성당’과 ‘사형선고 성당’이 있고, 1927년에 설립된 ‘프란치스칸 성서대학’과 박물관이 있다.
(현재 ‘그리스도의 감옥’이라고 부르는 곳은 조금 더 지나 시온 수녀원 건물과 맞닿아 있는 곳에 그리스 정교회에서 기념 성당을 가지고 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원 입구
입구를 들어서며.
앞쪽 흰건물이 '사형선고 성당'의 쿠폴라
수도원 회랑. 왼쪽이 박물관
오른쪽 건물이 수도원
프란치스칸 성서대학으로 들어가는 입구
프란치스칸 성서 대학 입구
박물관...단체 예약 필요
작은형제회 정문 맞은편에 있는 이스라엘 초소.
이스라엘 정부는 통곡의 벽에서부터 서쪽벽을 따라 이곳까지 고고학 발굴을 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이쪽이 출구...항상 사복 경찰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곳...
채찍 성당
마태 27: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가 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요한 19: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채찍 성당’은 예수님께서 채찍을 맞으셨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곳 위에 지어졌다.
중요한 유적들이 남아 있는 이 중세풍의 성당 자리는 마구간(1618년), 직물점을 거쳐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38년 이집트 출신 작은형제회원인 이브라힘 파샤(Ibrahim Pasha)가 ‘바비에른’의 공작인 ‘막시밀리안’(Maximilian, Duke of Bavaria)이 기증한 돈으로 이 땅을 구입하여, 다음해인 1839년에 예배의 장소로 복원하였다. 그 후 1927-29년에 12세기 풍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단장하였다.
채찍 성당에서 두드러진 것은 제대를 중심으로 3개의 창문이 있는데, ‘채찍질을 당하는 예수님’(마태 27:26), ‘손을 씻는 빌라도’(마태 27:24) 그리고 바라바의 승리’(마태 27:21)가 색유리로 그려져 있다.
작은형제회 수도원을 들어가서 오른쪽 작은 건물이 '채찍성당'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한 18:37)
성당 출입문의 채찍
성당 내부
채찍성당 제대
채찍성당 감실
채찍성당 후면
채찍성당 제단 왼쪽의 유리화.'손을 씻는 빌라도’(마태 27:24)
채찍성당 제단 중앙의 유리화. 돌기둥에 묶여 채찍질을 당하는 예수님’(마태 27:26),
이 돌기둥의 일부는 현재 무덤성당 발현경당 오른쪽에 모셔져 있음.
채찍성당 제단 오른쪽의 유리화. '바라바의 승리’(마태 27:21)
채찍성당 제단 중앙의 쿠폴라
채찍성당 : 독서대
채찍성당에서 기억하고 있는 성인들 : 성모님
예수님을 모신 요한 사도
사도 바울. 사도 바울도 한때 안토니아 요새에 갇혔고, 이후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에게 호송됨
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코는 교회에서 제2의 그리스도라고 칭하는 성인.
‘채찍 성당’을 나와 회랑을 조금 걷다보면 왼쪽에 있는 것이 ‘사형선고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리토스트로토스’가 시작되는 곳으로,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곳이다.
사방 10m의 정사각형의 구조인 성당은 1903-4년에 작은형제회 고고학자인 벤데린 기에르릭(Br. Vendelin Gierlich of Mandel)이 발굴 작업을 하였는데, 성당 동쪽 끝에 내민 반원 부분에 비잔틴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폐허가 된 이곳에서 이슬람 사원의 미랍(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데, 방향을 알려주는 움푹 파인 형태의 구조물)이 발견되어, 한때 이곳에 작은 이슬람 사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당 천정은 다섯개의 쿠폴라로 성지관구의 십가가 모양으로 만들었다.
성당 중앙 쿠폴라
쿠폴라를 장식한 색유리. 천사들이 수난의 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
중앙의 대형 쿠폴라와 그 곁으로 네개의 작은 쿠폴라.
'사형선고 성당'의 중앙 제대
사형선고 성당 문을 들어서서.
제대 중앙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주며 손을 씻는 장면이다.
마태 27: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태 27: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누가 23: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예수님께서 걸어 내려오고 있는 계단은 '거룩한 계단'(Santa Scala)라고 합니다.
이 계단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에 의해서 로마로 옮겨갔고,
현재는 로마의 라떼라노 대성전 옆에 위치한 '싼타 스칼라'(Santa Scala)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싼타 스칼라 성당을 순례할 땐 아래 계단부터 28개가 되는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가는것이 순례 전통입니다.
그리고 제대 왼쪽은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결박당한 채 끌려가는 모습이며, 제대 오른쪽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이시다.
성당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정면은 십자가의 길 4처에서 성모님과 예수님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다.
제단 정면 양쪽에 있는 예수님 상 아래에는 비잔틴 시대의 성당 유물을 볼수있습니다.
‘사형선고 성당’ 입구에서 마주하는 벽면 아래쪽에는 로마 병사들의 ‘게임’이 그려진 '리토스트로토스' 바닥돌이 놓여 있다.
이곳은 ‘엑체호모’ 시온 수녀회의 지하에 있는 ‘리토스트로토스’로 연결된 도로의 시작점으로, 사형선고 성당과는 담벼락으로 막혀 있을 뿐이다.
왼쪽 사진 의자 발 아래에 그어져 있는게 로마 병사들의 게임입니다.
그리고 큰 돌들은 '리토스트로토스'로 연결되는 도로의 시작지점입니다.
성당 뒤쪽으로 해서 '엑체호모' 시온수녀회로 바닥이 연결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지키던 사람들은 그분을 조롱하고 때리며 그분 얼굴을 가리고 "알아 맞추어 봐라, 너를 후려친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그 밖에도 모독하면서 갖은 욕설을 그분에게 퍼부었다. (누가 22:63-65)
[이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사실 그들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그들은 그분의 겉옷을 나누고자 주사위를 던졌다. (누가 23:34)
또한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서 그분의 머리에 얹어 놓고 그분의 오른손에는 갈대를 들렸다. 그리고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조롱하며 "유대인들의 왕, 만세!" 하고 소리 질렀다. 또 그분에게 침을 뱉은 다음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쳤다. 그렇게 그분을 조롱하고 나서 망토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는 십자가형에 처하기 위해서 그분을 끌고 갔다. (마태 27:29-31)
'사형선고 성당' 밖에 있는 고고학 발굴 유물들
제2성전시대의 예루살렘
이곳에서부터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곳
임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라.
이 뒷날 임이 보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뒷날 나를 보시고 임닮았다 하소서.
이세상 다할 때 까지 당신만 따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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