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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란 이야기 6 (페르세폴리스.라크세로스탐.파사르가데.)

영국신사77 2010. 6. 1. 10:37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5세기 다리우스 1세 대왕 이후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제국은 동으로는 인도까지 서로는 그리스, 남으로는 이집트,에디오피아까지 그 세력을 넓혀 갔었다.각기 다른 30여 부족을 하나로 만든 거대한 제국이었다. 다리우스 왕은 해마다 노루즈 기간 동안 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공물을 전하러 오는 다른 부족의 사절단들에게 제국의 위용을 과시할 목적으로 도시를 짓기로 했다.

 

 페리스폴리스로 들어 가는 입구는 높은 계단으로 되어 있다. 당시 페르세폴리스는 18m의 높은 벽면에 둘러싸여 있었고, 외국의 사신들이 찾아 오면 나팔을 불어서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계단 하나의 높이를 10cm의 낮은 높이로 만든 것은 말을 타고 들어 가도 불편함이 없게 하게 위해서라고 한다. 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만국의 문이 그 위용을 자랑하면 우뚝 솟아 있다. 만국의 문에 조각 되어 있는 인간 머리를 가진 두마리의 황소는 라마수라고 부른다. 이 만국의 문을 건축한 사람은 크세르크세스였다.  그는 사트라피의 사절 행렬이 들어오는 거대한 현관에 아시리아 양식의 라마수를 버티고 서 있게 만들었다. 그것은 제국의 모든 대표자들을 단합 시키려고 국제적인 다양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기둥 머리는 이집트 양식의 꽃무늬로 끝내고, 석괴를 파서 만든 궁전 창의 쇠시리는 이집트 건축에서 따 온것이라고 한다. 기둥축과 동물 형태의 기둥머리들 사이에 있는 둥근 천장은 이오니아식 건축이다. 그만큼 페르세폴리스에서는 다양한 인종의 건축술이 합해져서 아케메데스 양식을 구성한 독창적인 예술작품이 탄생 한것이다.

 

 페르세폴리스를 다니다 보면 계단이나 건물에 새겨진  기나긴 사절단의 행렬을 많이 볼 수 있다. 왕이 단검으로 거대한 짐승과 싸우는 장면도 자주 본다. 국왕이란 만인과 만물위에 군림한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하는 작품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페리스폴리스의 저부조에 자주 보이는 황소나 말을 공격하는 사자가 있는데 그것은 아케메네스 왕의 힘과 지배권을 상징 한다고 한다.

 

 페르세폴리스 뒤쪽으로 우쑥 솟은 '자비의 산'(쿠헤라흐마트) 이 보인다. 그곳 중턱으로 올라가면 아케메데스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들의 무덤이 있다.이 무덤들은 라크쉐 로스탐의 무덤들을 모방 했다고 한다. 그곳에 올라보면 페르세 폴리스가 한눈에 들어 온다. 관람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 모습이 개미들 같아 보였다.  그 거대한 성터에서 우리가 상상할수 있는 한계는 영화의 장면들 뿐일 것이다. 약 150여년에 걸쳐 지어진 그 찬란했던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 무참히 불태워졌다. 그나마 이렇게 라도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고대 도시들이 수세기 동안 모래와 먼지에 의해 묻혀져 잊혀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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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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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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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다나의 원기둥과 뒤에 보이는 다리우스 1세 겨울 궁전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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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다나로 올라가는 북쪽 계단의 부조(-창과 방패로 무장한 페르시아 친위대들의 행진-기원전 6세기~5세기)

 

 

나크쉐 로스탐은 높은 절벽에 있는 왕들의 무덤으로 다리우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1세,크세르크세스1세,다리우스 2세의 무덤이다. 바위를 십자가 모양으로 파서 만든 각각의 무덤에 조장을 하여 독수리가 먹고 남은 뼈들을 보관하는 방이 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이 암굴무덤의 기둥들이 지탱하는 지붕으로 보호된 출입구의 형식이 메디아인들이 바위에 새긴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다리우스의 무덤에 있는 저부조 중 하나는 3층의 단에 활을 잡고 서 있는 다리우스가 묘사 되어 있다고 한다. 그 앞에 불의 제단이 묘사되어 있고 그 위로 아후라 마다즈를 상징하는 날개와 수염이 달린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 암굴 무덤의 비유적인 상징과 비문들은 다리우스의 위대함과 여러부족을 정복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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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크쉐 로스탐에서

 

파사르가데는 건조하고 나무 한그루 없는 낮은 언덕과 넓게 펼쳐진 불모지의 땅에 있었다.  원래 파사르가데는 통치자 키루스의 호화로운 거주지였다고 한다. 이곳 벽돌 건축 기술은 리디아의 그리스인들이 즐겨 쓰던 기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파사르가데는 건조하고 경작이 불가능 하지만 아케메데스  제국 시절에는 왕궁 터가 거대한 공원으로 둘러 싸여져 있었다고 한다. 이곳 유적지를 발굴 하면서 수로를 표시하는 돌과  왕궁을 둘러싸고 있는 분수들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역대 아케메데스 황제들의 즉위식이 거행된 장소였다고 한다. 하지만 다리우스가 다른 도시를 개발하면서 더 이상 제국의 중심 역활을 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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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르가데

 

파사르가데 근처엔 고레스왕의 무덤이 있다. 고레스 왕은 페르시아인들뿐만  아니라 그리스인들, 유태인들에게까지 존경받는

왕이었다. 고레스왕의 무덤에 사용 되어진 돌들은 이곳에서 70km나 떨어진 곳에서 운반하였다고 한다.  고레스왕은 페르시아를 비로소 세계를 통치하는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었고 세계정복을 위해 해외 원정중 전사 하게 되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커다란 석물로 묘를 만들고 그곳에 고레스 왕의 시신을 안치 시켰다.

 

 고레스왕의 묘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알렉산더 대제가 페르시아를 점령하여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우고 고레스 왕의 궁전도 불태운뒤 고레스왕의 석묘를 파손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한다. 그런데 고레스왕의 비문을 읽고 말에서 내려 자신이 입고 있던 왕복을 벗어 묘에 덮어 주고 그냥 돌아 섰다고 한다. 그 비문에는 "나 고레스는 한 때 세계를 지배 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이 다른 왕에 의해서 점령 당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점령자여 그대도 언젠가는 누구에겐가 점령을 당할 것이다. 그러니 내 묘를 건들지 말아 주시오."라고 써 있었다고 한다. 위대한 왕은 위대한 왕을 알아 본다. 그러나 위대한 대왕들도 모두 죽어 흙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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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왕의 석묘

 

 쉬라즈에서 야즈드까지는 5시간 30분을 버스를 타고 이동 했다. 그 도중에 아바쿠라는 지역에 45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향나무를 보러 달려 갔는데 햇살 사이로 나무 가지 사이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오래 살아서 정령이 있는 나무의 작은 요정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무의 수령도 수령이지만 하늘을 향해 곧게 죽 뻗은 모습이 위대한 자연의 신 같았다.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며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 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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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자빈
글쓴이 : 벼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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