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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 야고보의 무덤 교회

영국신사77 2010. 5. 15. 18:53

 

                                               예루살렘 아르메니아 지구에 있는 야곱의 무덤 교회

주님의 흔적을 찾아 성지 순례를 처음 한 사람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모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삶을 현장을 찾아  성지를 순례자사람들  중에는 아르메니아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대 땅에    수도원 공동체를 이룬 최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왕국은  사도 다대오에 의하여 복음이 전하여 졌고  그리고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예루살렘에 관심을 쏟아부었던 국가입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의 성지순례는 온 국민의 관심사였고, 성지순례를 다녀오면 팔에 그 연도를 문신으로 새겨넣어 평생 기념일로 삼았을 정도였습니다. 아마 이것이 오늘날 작은 교파이면서도 현재 예루살렘의 25%를 아르메니아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르메니아인들의 지구에는 2개의 큰 성지가 있는데 하나는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추정하는 곳이고, 또 하나는 야고보의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곳에 세워진 야고보 교회입니다. 이곳이 바로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린 곳이라고 추정되는 곳입니다. 야고보교회는  2명의 야고보를 기념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초대 주교였던 성야고보와 예수님의 제자 요한의 형인 야고보로 이들 2명의 시신이 이 교회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동생이며 초대 주교였던 야고보의 무덤은 교회 안 강단 밑에 그리고 참수형을 당한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무덤은 교회 당 좌측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렇듯 중요하고 영성에 가득찬 야고보의무덤이 성지 순례 일정에서 빠진 것은 아만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야고보교회 안은 아름다운 타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초기 아르메니아인 수도사들이 자비량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부업으로 시작한 타일 제작이 이제는 성지 최고의 타일 기술과 작품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성야고보교회는 6세기께 당시 비잔틴 시대    교회 잔재 위에 11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바실리카 양식이 후기 구조물에 보존돼 있습니다. 중앙 홀의 오른쪽에 작은 예배실이 있는데, 그 안에는 3개의 돌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돌들은 요단강과 타바와 시내산에서 각각 갖고 온 것이라고 합니다.그러나 교회는 매일 오후 3시부터 3시30분까지 30분간만 공개되기 때문에 이 시간을 맟추어 순례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의 제자 중 야고보는 두 명이기 때문에 세배대의 아들은 대(大)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은 소(小) 야고보라고 불러 구분을 합니다. 복음서의 여러 기록들을 종합해 살펴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주 예수의 사촌 형제였던 듯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못합니다.

야고보가 정식으로 주 예수의 부름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된 것은 갈릴리 호반에서 였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막 1:19~20).

예수는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기에 앞서 같은 갈릴리 호반에서 시몬과 안드레 형제도 제자로 택하셨습니다. 이들 네 명은 주 예수의 제자 중 핵심이 되었고, 사도의 명단에도 첫머리에 올라 있습니다(막 3:17).
야고보는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예수의 전적인 신임을 받았던 사도입니다.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를 고칠 때,변화산에서  주의 모습이 변할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들 세 제자는 예수와 함께 있었습니다.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어머니도 예수를 따르던 여인 중 한 명이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마 27:56).

세베대 일가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고(요 18:15), 예루살렘에도 집이 있었던 듯합니다(요 19:27).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는 예루살렘 세베대의 집 부지에 최초의 교회가 서게 되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젊은 시절에 성격이 무척 사납고 성질이 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가는 예수의 제자들을 적으며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천둥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막 3:17)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들의 성격을 추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가다가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에서는 예수 일행의 행선지가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마을에서 머무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

야고보와 요한에게 엘리야와 같이 하늘의 불을 불러 내리는 능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은 주님의 명하시면 자신들도 엘리야 처럼 하늘에서 불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이 말은  이들 형제가 불이 타는 것 같은 화를 낸 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또 그만큼 뜨겁게 예수를 사랑한 것도 틀림없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하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눅 9:55~56).

   
 
예수의 변모(유채화, 1520년쯤 / 바티칸 소장), 작자:라 파엘로. 예수 아래 엎드려 있는 세 제자 중 왼쪽 인물이 야고보이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던 때 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십자가의 고난이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께 와서 절하며 자기 아들들을 위해 청탁하는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1).

이 기사를 통하여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데 대해 모든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위력을 발휘하여 다윗시대보다 더 강대한 왕국을 세우고,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기대 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간청에는 두 가지 점에서 잘못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메시아와 그가 이룩할 나라의 성질을 잘못 알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들 형제의 이기심과 허영심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막 10:38).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한 목소리로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막 10:39-40).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화를 내면서 분을 참지 못합니다. 이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섬김'을 가르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열두 제자들은 주 예수의 말씀을 그 즉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로부터 한 주간 후 그들은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섬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우편과 좌편에 두 흉악범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였다. 다른 한 명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하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주 예수의 우편과 좌편, 그 무척 가까운 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자들은 비로소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온정이 넘치는 단절과 거부는 결국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아 초월하여 자기 속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제자들은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승천 한 후  주후 44년 봄, 무교절 축제의 시기였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헤롯은 맨 먼저 예수의 제자 야고보를 칼로 목 베어 죽였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박해의 첫 대상이 된 이유는 여러가지 전승에 의하여 분명하여 집니다. 그가 여느 사도들보다 더 열심이고 활동적이며 또 다른 사람에 대한 감화력이 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수제자 베드로조차도 헤롯의 박해 리스트에서 야고보 다음이었다고 합니다.사도행전에는 헤롯 왕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행 12:2)라고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에우세비오스는 그의 '교회사'에서 야고보의 순교를 다루고 있는데,에우세비오스는 믿을 수 있는 전설이라고 하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를 재판소에 연행한 사람은 야고보의 신앙 간증을 듣고 감격한 나머지 자기도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였다. 때문에 두 사람은 다 사형 언도를 받았다. 형장으로 끌려 가며 그는 야고보의 축복을 간절히 원했다. 야고보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샬롬, 당신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하며 그에게 입맞추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목이 잘렸다".

야고보는 주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주의 잔을 마시며 주의 세례를 받겠다고 말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주 예수의 고난의 잔을 마셨고 피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첫 순교자의 면류관을 쓰게 된 것입니다.오랜 전설에 따르면 대야고보의 유해는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에 옮겨졌으며, 10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서는 세계적인 순례지로 유명하였졌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야고보 기사수도회, 야고보 수도원, 야고보 신앙동지회, 야고보 구호소, 야고보 성가 등이 생겨났고, 오늘날에도 야고보는 스페인 순례자의 수호 성인으로 우러러 모셔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야고보의 시신이 스페인으로 옮겨지게 되었는지는 수수께끼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그의 형제 요한과 더불어 '천둥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주어질 만큼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이고,그는 또한 주 예수의 우편이나 좌편에 앉게 되기를 원하는 야심가이기도 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갈릴리의 어부 출신이었으나, 주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성령으로 성결해짐에 따라서 능력 있는 신앙의 증인이 된 표본입니다.

즉 야고보의 신앙은 여느 사람의 신앙이나 마찬가지로 은혜의 체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참된 현실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참으로 죽으셨고 또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확신에 찬 믿음입니다. 야고보는 이 예수의 증인이 되어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또 싸우다가 영광스러운 순교를 하였습니다. 아마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 크게 처음으로 기록되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령천 교회 선교 목사 김용규 제공


출처 : 성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글쓴이 : 데비드 김 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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