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2. 시온산 지역

시온산

영국신사77 2009. 6. 22. 00:50
시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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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의 다락방-

시온산은 예루살렘 서쪽 산등성이로 예루살렘 성 밖에 위치해 있다 힌놈계곡에 의해 서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으로는 중앙 계곡에 의해서 삼면이 경사를 이루고 있는 해발 765m의 등성이 산지이다. 성경에 의하면 여러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이곳 시온산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성경에 언급된 처음 시온산은 모리아산의 성전산을 의미했다. 오늘날의 시온산은 구약시대에 부르던 곳 과는 다른 곳에 있다. 왜 현재의 장소가 시온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주후 4세기경에 지형학적인 실수로 인해 현재까지 시온산으로 불려지고 있는 듯하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의해서 잘못된 것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2000년 가까이 시온산이라고 불러 왔기에 지금도 유대인은 물론 회교도와 기독교도 시온산으로 부르고 있다. 시온산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예루살렘과 성지 전체를 대표하는 시적인 이름으로 쓰여 왔다. 또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온산은 그들의 정신적인 고향이요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온주의의 “시온으로”라고 하는 것은 이들을 강력하게 결속시킬 수 있는 표어가 되어왔다. 1267년 람반(Ramban)이 시온산에 회당을 세움으로서 이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에서의 유대인 공동체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근거는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다윗무덤이 이곳에 생겼고 유대인들의 다윗무덤 순례는 12세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주후 15세기에 기독교인들은 다윗무덤 윗층에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이 건물의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시온산에서 추방되었고 건물은 회교도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시온산을 방문했다. 이때 그의 방문을 위해 시온산으로 오르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고 ''''교황의 길''''이라 이름을 붙였다. 시온산 지역에는 마가의 다락방, 마리아 무덤 교회,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베드로 통곡 교회 등이 있다.

●가야바의 집(House of Caiaphas)
시온문을 나서면 앞에 웅장하게 서 있는 건물이 가야바의 집이다. 1971년 고고학 발굴에 의해서 제1,2성전 때의 유물들과 비잔틴 시대의 도로 흔적이 발견됐다. 아르메니안의 전승에 따르면 이곳이 예수께서 잡히신 후 갇이셨던 당시 대 제사장 가야바의 집이라고 한다. “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마26:57). 건물 앞뜰에는 12세기부터 1948년까지 아르메니안교회의 주교들의 무덤들이 있다.

●마리아 영면교회(Dormition of the Virgin)
1906에서 1910년 사이에 세워진 비교적 현대적인 교회이다. 이 교회는 터어키 왕 슐탄 압둘 하미드 2세(Sultan Abdul Hamin Ⅱ)가 독일 왕 빌헬름 2세(Kaiser Wihelm Ⅱ)가 1898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선물로 준 땅에 세워져 있다. 빌헬름 2세는 선물로 받은 해에 주춧돌을 놓고 성지의 독일 천주교 연합회에 인계했다. 그후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가 잠들어 있다는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래서 마리아 영면교회라 한다. 시온산 정상에 있는 이 교회는 원추형의 잿빛 둥근 지붕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4개의 작은 탑으로 인해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의 커피숖에는 교회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 중앙에는 벚나무와 상아로 만든 집들이 있는 마리아의 상이 있다. 이 동상 위의 돔 가운데에 예수님의 사진이 모자이크 되어 있고 둘레에는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여섯 여인들이 있다. 또한 지하굴 주위에는 여섯 개의 예배실이 있는데 이 중 세 개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그리고 교회에 자금을 헌금한 사람에게 봉헌된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Cenacle. Room of the Last Supper)
다윗왕의 무덤이 있는 건물의 윗층이 마가의 다락방이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유월절 전날 저녁만찬을 이곳에서 가졌다(마 26:17-29). 이곳은 또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이곳에 나타나셨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셔서 방언을 말하던 오순절 역사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행 2:1-4). 주후 15세기에 건물 밑에 층에 다윗왕의 무덤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이 건물을 매입하려 했다. 이것 때문에 분쟁하던 프란치스카교회는 결국 이 시온산에서 쫓겨났다. 이 건물은 회교도의 재산이 되었고, 이들은 이를 회교사원으로 만들어 버렸고 남쪽벽에 기도실을 만들었다. 근처에 두개의 아랍어 문구가 있는데 하나는 다윗왕에게, 다른 하나는 슐레이만 대제에게 쓰여진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을 들어가는 조그마한 방안의 흰벽 사면에는 왔다갔음을 기념하는 낙서로 꽉차 있는데 대부분 한국인이 낙서한 것이다.

●다윗 무덤(Tomb of David)
마가의 다락방 아래층이 다윗 무덤이다. 처음 이곳을 언급한 이는 985년 회교도 예루살렘사람 역사가인 알무콰다시(AlMuqadassi)에 의해서 였다. 이것은 1100년 십자가군 역사가 아구일러 (Raymond Aguillers)와 1165년 유명한 유대인 여행가인 벤자민(Benjamin)에 의해서 언급되어졌다. 이때 이후 이곳은 유대인과 회교도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믿음에 의해서 성지화 되었고 유대인 순례자의 핵심이 되어있다. 무덤돌은 부드러운 천으로 덮여있고 이 위에는 유대인 대 학살 때 파괴되었던 유대인 공동체 회당에서 가져온 토라(율법)관이 있다. 천으로 덮여 있는 무덤돌은 고딕 양식으로 아칸더스 잎으로 둘러싸인 릴리꽃이 새겨져 있다. 아직도 벽에는 주후 614년에 페르시아에 의해 방화된 흔적이 검게 그슬린 채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유대인들의 엄숙한 곳이므로 단정한 옷차림과 입구에 준비해 놓은 킵파라고 하는 조그만 모자를 머리에 써야 한다. 이 장소 밑에는 굴로 통하는 입구가 1859년에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다윗왕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는 전승의 근거를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베드로 통곡교회(Church of St. Peter in Gallicantu)
시온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교회로서 베드로의 예수님 세 번 부인과 그의 회개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름 붙여진 교회이다. “오늘밤 닭 울기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26:34). “오늘 닭 울기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더라”(죽22:60-61) 이 교회는 비잔틴과 십자군 시대 때의 교회 잔재위에 지워진 것이다. 교회를 들어가기 전에 베란다에서 동쪽 중앙 계곡, 실완동네, 다윗도시, 성전산, 기드론 계곡 그리고 감람산의 좋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교회 건물 북쪽으로는 아래 마을로 내려가는 돌 계단이 있는데 비잔틴 시대의 것으로 실로암 연못까지 연결된다. 교회 안 지하에는 바위를 뚫어 만든 굴이 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께서 갇히셨던 곳이다. 또한 천장에 예수님을 매달아 놓고 고문했다는 장소도 있다.

[자료제공 : 이강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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